진흙속의연꽃

일은 직(職)이 되고 글쓰기는 업(業)이 되는 이중생활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19. 09:20

일은 직(職)이 되고 글쓰기는 업(業)이 되는 이중생활을

 

 

어제는 하루종일 일만 했다. 일요임에도 아침 일찍 나와서 밤 늦게 까지 일터에서 보냈다. 일요일이라 냉방도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여 하루일과 대부분을 보낸 것이다.

 

오랜만에 일감을 받았다. 생각지도 않게 전화를 받았다. 다음에 키워드광고를 하고 있는데 광고를 보고서 전화했다고 한다. 마치 그물을 쳐 놓았는데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워드광고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그저 형식만 갖춘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키워드광고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화를 걸어오게 하기 위해서 미사여구와 사진을 곁들여 만든 것이다.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주말작업을 하게 되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주어야 한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갈 수 있다. 납기가 급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납기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밤낮없이,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하는 것이다.

 

일감 사이즈는 꽤 크다. 며칠 작업해서 반달 먹고 살 정도로 중작이상이 걸린 것이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더구나 키워드 광고로 단 한번에 일이 성사되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없는 일이다.

 

나에게 직업이 있다. 기판설계업을 말한다. 이를 업계에서는 아트워크(Artwork)라고 한다. 전자회로를 패턴설계 해 놓으면 마치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마땅히 벌어먹고 살 만한 것이 없다. 이 분야를 떠나면 모두 초보이기 때문에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아마추어는 배우는 자나 취미에 불과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이라 하지 않는다. 일을 해서 돈으로 만들어 낸 다면 누구나 프로페셔널이다. 반드시 교수만을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프로페셔널일까? 이 일을 해서 돈을 벌기 때문에 분명히 프로페셔널이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전문가인 것이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나도 프로페셔널인 것이다.

 

프로로서 나는 어떤 일도 해 내야 한다. 안되면 되게 해야 한다. 해 내지 못하면 프로가 아니다. 납기가 급하면 밤을 세워서라도 맞추어 주어야 한다. 주말에 작업하는 것은 프로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일이다. 나의 일이기 때문에 주말없이 일하는 것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밥벌이에 도움이 된다.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고객을 제외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고객이 맡긴 일감은 고객의 재산이다.

 

일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 최상이다. 취미도 되고 생계도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블로거는 영원한 아마추어가 된다. 돈 버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다.

 

작가는 프로페셔널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써서 돈을 번다면 프로페셔널이다. 더구나 글 쓰는 것이 취미이면서도 돈도 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극히 드문 일이다. 전업작가로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한다. 시를 써서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취미로서 글쓰기가 된다. 잘 써도 그만이고 못써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마치 본업처럼 글을 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은 마치 작가처럼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로서의 글쓰기를 말한다.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프로이다. 사업자등록을 하여 사업자로서 십수년을 살아 왔기 때문에 프로라 아니 할 수 없다. 더구나 기판설계는 직장 다닐 때부터 하던 것이다. 따져 보니 1986년부터 했었다. 지금까지 35년 동안 회로패턴설계를 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프로중의 프로이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는 제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프로가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부터이다. 올해로 만 15년 되었다. 그동안 쓴 글만 6천개가량 된다. 요즘은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 의뢰하여 두 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많은 글을 썼어도 한번도 프로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돈을 벌 목적으로 글쓰기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마치 부업과 본업이 뒤바뀐 것 같다. 돈이 되는 본업보다는 돈이 되지 않는 부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를 한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아니다.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 쓰고자 한다. 부처님의 전도선언에 있는 것처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글을 쓰고자 한다.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취하고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날자와 서명을 남긴다. 무한책임지겠다는 자세이다.

 

글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스스로 프로가 된 듯하다. 책을 내면 하나도 팔리지 않겠지만 이에 개의치 않는다. 블로그에 올린다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전자책이다. 더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십년전에 쓴 글이라도 키워드 검색만 하면 소환할 수 있다. 이것처럼 강력한 소통수단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나의 직업은 기판설계업이다. 무려 35년 동안 해 온 일이다. 이제 제2의 천성이 되었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면 마음이 차분하다. 일은 본래 하기 싫은 것이지만 단계별로 일을 추진하여 마침내 해 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나 오로지 고객 하나만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만을 위한 일이 된다.

 

가장 이상적인 일은 자신도 이익되고 타인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자타가 이익이 되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작가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작가는 배고프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의사가 좋을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직업은 의업이라고 생각한다. 의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 있다. 의사야말로 자타의 이익을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직업이 아닐까?

 

여기 치과의사가 있다. 좋아서 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자신도 이익되고 타인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평생 남의 입안만 바라보고 산다면 고역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환자만 접한다는 것은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남을 가르쳐서 먹고 사는 것도 좋은 직업에 속한다. 교사나 교수와 같은 직업이 대표적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자신도 이익되고 타인도 이익되기 때문에 성스럽고 고귀한 일이 된다. 그러나 가르치는 일이 노동이 되어 버린다면 교육노동자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다. 공통적으로 돈을 벌어먹고 산다는데 있다.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도 있고 의사도 있고 선생도 있다. 자타가 이익이 되는 직업이다. 이런 직업을 성스럽고 고귀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분명히 차별이 있다. 청소부와 교수와는 엄연히 차이와 차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고귀하고 성스러운 일이 된다. 거리의 청소부가 단지 생계를 위해서 쓴다고 생각하면 슬픈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쓴다면 고귀하고 성스러운 일이 된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일한다. 또 한편으로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을 한다. 여기서 살아간다는 것은 직()이고, 자아실현을 위한다는 것은 업()이라고 볼 수 있다. 직업의 출현이다. 이렇게 본다면 직업은 어느 것이든지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이 된다.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자신이 싫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류회사를 다녀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지옥이 된다. 그럼에도 단지 생계를 위해서 계속 다닌다면 직만 있고 업은 없는 것이 된다. 비록 미천한 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이를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고귀한 일이 된다.

 

오랫동안 인쇄회로기판설계업을 해 왔다. 처음부터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임을 발견했다. 직장을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어 무엇을 해먹고 살까 고민하던 때에 이 일을 선택한 것도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일요일 하루종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 것은 생계때문이다. 약골이라 육체노동을 해먹고 살 수 없는 사람에게는 딱 맞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할 생각이다. 나의 일에 정년은 없는 것이다.

 

일이 아니라 직업이 되어야 한다. 일만 있고 업이 없어서는 안된다. 현재 하는 일은 생계유지는 되지만 자아실현은 되지 않는다. 직으로서 일은 있지만 업으로서 일은 없는 것이다. 업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글을 써서 자아실현하는 것이다. 일은 직()이 되고 글쓰기는 업()이 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2021-07-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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