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임에서 패밀리(Family)가 아닌 자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22. 17:17
모임에서 패밀리(Family)가 아닌 자는

그 사람은 아무리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좋아요' 추천하고 댓글을 다는 등 공감을 표현해도 요지부동이다. 마치 그 사람 앞에서 열심히 춤을 추어 보지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그사람은 전혀 관심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 했으면 한번쯤 '좋아요'추천이라도 해 줄 법한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친구맺기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만 짝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긴 글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맞지 않는 글이다. 블로그에 올려야 할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으니 패스당하는 것 같다. 감각적이고 짤막한 글, 구호를 외치는 듯한 글, 그리고 신변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는 장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모른척 하는 것일까?

나는 블로거이다. 모임에서 소개할 때 "저는 다음에 글을 쓰는 블로거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장이라고 말하기 쑥스럽다. 원맨컴퍼니 사장도 사장이지만 누가 알아줄까? 그다지 내 세울 것이 없어서 블로거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불교계에서는 '진흙속의연꽃' 블로그 누적조회를 능가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글을 쓰다가 페이스북에 진출한 것은 2017년도의 일이다. 블로그만 하려 했으나 대세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글을 쓰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이 길어 졌다. 페이스북에서는 맞지 않는 글쓰기를 말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올린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하루에 한개 이상 의무적으로 올린다. 올리되 반드시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을 올린다. 제목을 붙이고 서명한다. 페이스북에 이런 스타일 글 하나 정도 있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처음 페이스북에 글 올렸을 때 조회수가 엄청나게 많을 줄 알았다. 블로그 조회수만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다르다. 페이스북은 실시간 소통이 강점이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관심끌기 힘들다. 그렇다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개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페이스북 공감자 면면을 본다. 거의 대부분 안면 없는 사람들이다. 가상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가상 공간을 나오면 모두 사라진다. 공감을 하지만 끈끈한 연결고리는 없다. 오로지 가상공간에서 소통했을 때 꿈속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에는 안면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재가불교활동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런 것일까?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일까? 처음 호기심에 접근 했던 사람들도 냉담한 것을 보면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보는 것 같다. 심지어 차단한 경우도 있다.

그들이 관심 보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글이 길어서일 것이다. 바쁘고 골치 아쁠 때 긴 글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위로 넘길 것이다. 두번째는 주류가 아니어서 일 것이다. 도중에 들어 온 자는 아무리 해도 주류가 될 수 없다. 먼저 들어 온 자의 발언이 세다. 나중에 들어 온 자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계를 느낄 때 침묵하게 된다. 체념적 침묵이다.

재가불교 활동한 것은 2015년 부터이다. 이전에는 블로그에 글만 썼다. 재가불교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한그룹은 활동가들이고 또 한그룹은 지식인들이다. 이 두 부류에 속하지 못했다.

재가불교 활동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다. 20년, 30년, 심지어 40년 동안 "형" "동생"하면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주로 대불련이나 재가불교단체에서 선후배로 맺어진 사이를 말한다. 여기에 어느 날 아무런 기반도 없는 블로거가 끼어 들었을 때 속된 말로 '듣보잡'이 되었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기 마련이다. 마치 정치판과도 같다. 여가 있으면 야가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 해 왔다면 동지적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선배는 끌어 주고 후배는 밀어 준다. 이런 관계가 10년, 20년, 30년, 아니 평생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형님이 되고 아우가 된다. 또 선배가 되고 후배가 된다. 이른바 패밀리(Family)가 되는 것이다.

듣보잡에 이어 '갑툭튀'라는 말도 있다. 패밀리 개념의 끈끈한 유대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출현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부영화 살롱에서 처럼 경계할 것이다. 또한 호기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듣보잡이나 갑툭튀는 한계가 있다. 형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선배라고 부를 수도 없다. 당연히 동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후배라고 부를 수도 없다. 패밀리가 아닌 자는 영원한 이방인이 된다.

호칭이 문제가 된다. 그들과 처음 부터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이라 부를 수도 없고 동생이라 부를 수도 없다. 선배라고 부를 수도 없고 후배라고 부를 수도 없더. 그들에게 있어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다.

나그네는 떠나면 그만이다. 오랜세월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그들만의 리그에 끼여들 틈은 없다. 그래서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통일한다. 나이가 많아도 선생이고 나이가 적어도 선생이다. 사실 모두가 선생이라는 호칭을 들을만 하다. 이 정도 살았으면 누구에게나 선생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에게는 형도 없고 아우도 없다. 나에게는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다. 나는 재가불교활동가 세계에서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요즘 이재명을 보는 것 같다.

이재명은 주류가 아니다. 주류 정치권 입장에서 본다면 이재명은 비주류이고 삼류이고 비급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지지율 1등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류에 식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기득권 입장만 대변하는 주류 정치인에게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들을 보면 서울대 출신이 많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울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특히 서울대 법대 출신이 두드러진다. 경력도 화려하다. 국무총리출신도 있고 국회의장 출신도 있다. 둘 다 모두 해 본 사람도 있다. 스펙으로만 본다면 이재명은 낄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이재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재명에게서 미래를 본 것이다. 주류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을 해 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보는 것일까? 이재명의 입지전적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재명은 스토리가 있다.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감동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소년공 이재명 스토리에 감명 받지 않을 사람이 없다. 성남시에서 보여 준 행정능력도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떤 난관도 돌파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주류는 기득권 이익을 대변하기에 급급하다. 개혁을 말하지만 보여 준 적이 없어서 반신반의하게 된다. 명문대 졸업에 고위직을 지낸 후보가 믿음직 스럽기는 하지만 결국 주류와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나는 여러 모로 이재명과 비슷하다. 동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동향도 아니다. 학번도 나보다 세 학번 낮다. 그럼에도 끌리는 것은 비주류, 삼류, 비급이라는 사실이다.

비주류 이재명에게는 형도 없고 아우도 없다.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다. 이재명에게는 패밀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에게는 국민이 있다. 공정한 세상을 열망하는 지지자들이 있는 한 외롭지 않다.

이재명은 주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듣보잡이고 갑툭튀이다. 그래서일까 주류에서는 견재구를 날리고 태클을 건다. 과연 이재명은 이 위기를 돌파하여 대권을 거머 쥘 수 있을까? 동병상련 이재명에게 희망을 걸어 본다.

2021-07-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