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의 상반기 성적표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25. 07:22

나의 상반기 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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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은 부가세철이다. 대개 25일 마감이다. 오늘이 그날이다. 마감 며칠 앞두고 처리했다. 국세청 홈페이지 홈텍스에 들어가서 클릭 몇 번하면 그만이다. 줄 돈은 최대한 늦게 주자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부가세 신고를 하면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올해 상반기 나의 성적표는 어떠할까? 부가세 납부한 금액을 보면 알 수 있다. 매출총액에서 매입총액을 빼면 수입이 되는데, 수입에서 10프로를 가져가는 것이 부가세이다.

 

사업을 하려면 부가세를 내야한다. 부가세는 어차피 내야 할 돈이다. 내것이 아닌 것이다. 제 때에 내지 않으면 벌금폭탄을 맞는다. 날자에 따라 누적된다. 고리대금업이 연상된다. 몇 번 겪었다.

부가세철만 되면 긴장된다. 늘 벌금폭탄을 염두에 둔다. 내지 않아도 될 것을 내면 씁쓸한 기분이다. 마치 관리비 고지서를 기한 내에 내지 못했을 때 추가요금을 내는 것과 같다.

올해 나의 경제성적표는 어떠할까? 썩 만족스럽지 않다. 대기업 대졸신입 평균연봉에도 미치지 못한다. 검색해 보니 중소기업 대졸신입 평균연봉에 해당된다.

 


매출과 매입 세금계산서를 모아 놓은 것을 보니 각각 수십장이 된다. 일을 많이 했어도 수입은 신통치 않다. 더구나 돈은 남아 있지 않다. 7월 부가세를 납부하고 나니 입출금통장의 잔고가 마이너스 한도에 육박한다.

최소한 대졸신입연봉의 수입을 올리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작과 대작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일감이 줄어서 중작이나 대작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고정 거래처가 생겼다.

나에게 L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반기 발주서를 보니 철해 놓은 파일에 가득하다. 수십장을 L사에서 몰아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L사와 인연은 10년 된 것 같다.

유행가 가사 증에 "무조건"이라는 말이 있다. 고객이 원한다면 무조건인 것이다. 고객이 부른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납기가 급하면 밤낮이 없고 주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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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현재 나에게 있어서 하나 밖에 없는 고객사라고 볼 수 있다. 자식뻘 되는 남녀 담당자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 실수하면 면목이 없다. 머리가 허옅게 샌 나이 먹은 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군말없이 새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급하면 발로 뛰어야 한다. 이천 산속에 있는 공장으로 물건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신용을 잃으면 끝장이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고객은 신과 같다. 고객은 왕이라 하지만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고객은 신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고객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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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에서 일감을 몰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사무실 임대비용도 감당하지 못했을 때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모든 것은 무상하다. 이 일에서 손 뗄 날도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사무실 임대비만 낼 정도라면 언제까지라도 할 생각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년에 국민연금 타 먹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이나 사학연금, 군인연금에 비하면 반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위안이 된다. 식비라도 된다면 큰 의지처가 될 것이다.

2007
년에 사업자등록증을 냈으므로 이제 사업14년차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안달복달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일감이 없을 때는 "왜 일이 없지?"라며 초조해 했었다.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근심과 걱정해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면 현자들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쓴다. 일감은 해가 갈수록 줄어 들지만 반대로 글은 갈수록 늘어 난다. 예전에는 하루 한개 쓰기도 벅찼는데 요즘은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벌어 놓은 돈은 남아 있지 않다. 모두 다 써 버렸다. 이것 저것 나가다 보니 늘 마이너스 상태이다. 그러나 늘어 나는 것이 있다. 글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늘어나는 것은 글 밖에 없는 것 같다. 비록 돈도 안되는 글쓰기이지만 그 동안 써 놓은 글을 보면 뿌듯하다. 돈은 달아나고 없다. 계산서와 발주서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글은 남아 있다. 블로그에는 5년 전에 쓴 글도 있고 10년 전에 쓴 글도 있다. 글은 배신하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 글쓰기도 하지만 수행도 한다. 행선과 좌선을 말한다. 사무실 중앙에 칸막이를 해서 명상방을 만들어 놓았다. 틈만 나면 앉아 있는다. 10분이라도 눈감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그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면 효율적이다.

사무실에서 또 하나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요즘은 팔정도경을 매일 암송하고 있다. 모두 다 암송했을 때 뿌듯하다. 자연스럽게 "싸두! 싸두! 싸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요즘은 회향도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유주무주 고혼에게 회향하며 다시 한번 "싸두! 싸두! 싸두!"한다.

올해 상반기 경제성적표는 형편없다. 그렇다고 배가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일감이 많으면 글 쓰는 시간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일감도 적당히 있기를 바란다.

진정한 성적표는 따로 있다. 자기계발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성적표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글쓰기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글쓰기는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이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것도 있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에 대한 것이다.

보시를 얼마 했을까? 만족스럽지 않다. 나름대로 능력껏 하려 했으나 여전히 인색한 것 같다. 지계는 어떠할까? 술을 멀리한 것은 잘 한 것 같다. 요즘 술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무엇보다 집중을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취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없고 취한 상태에서 수행할 수 없다.

보시도 좋고 지계도 좋지만 수행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경계에 부딪쳤을 때 드러난다.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화가 많이 줄었다면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안되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는 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남아 있지 않다. 사업 14년 동안 번 돈의 총합은 많다. 그러나 입출금통장의 잔고는 텅텅 비어 있다. 빈 것을 넘어서 마이너스가 되었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부가세라도 내고 나면 한도에 육박한다.

돈은 믿을 것이 못된다. 돈은 달아나려는 속성이 있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돈벌이에 올인하는 삶은 허무하다. 돈도 적당히 벌어야 한다. 남는 시간은 자기계발해야 한다.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글쓰기이야 말로 나의 진정한 성적표 아닐까?

2021-07-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