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지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29. 12:57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지만


여기도 벤츠 저기도 벤츠이다.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삼성의료원 주차장에 외제차가 반은 되는 것 같다.

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큰 차를 보면 주눅든다. 한번도 대형차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중형차도 가져 보지 못했다. 소형차만 탔다. 그것도 중고차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경차이다. 이것도 중고차이다. 한번도 새차를 탄 적이 없다.

 


차 없이 살았다. 남들 차 산다고 할 때 회사통근버스나 대중교통수단에 의지했다. 처음 차를 가져 본 것은 90년대 후반이다. 친척이 준 것이다. 폐차 일보직전의 차이다. 어느 날 주행 중에 연기가 나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악센트를 중고로 산 것은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나고 나서인 것 같다. 소형차 악센트를 10년 이상 탄 것 같다. 이후 또 중고로 구입한 것은 소형차 리오이다. 리오 역시 10년 탄 것 같다. 이삼년전에 경차 모닝을 또 중고로 구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차부터 바꾸는 것 같다.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작은 부품업체 사장은 정부에서 9억 융자를 받자 차부터 바꾸었다. 그랜저로 바꾼 것이다. 전에는 원맨컴퍼니 부품영업 오퍼상에 불과했다. 그때 당시 최고급 차를 탄 것을 보고서 사람이 달라 보였다.

직원이 몇명 안되는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부품 승인을 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상담을 마치고 배웅하는데 체어맨을 타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부지기 수이다.

차가 인격인 세상인 것 같다. 형편 없이 보이는 사람도 고급 대형차를 타는 것을 보면 달리 보인다. 마치 성공한 사람처럼 보인다. 차로 인하여 사람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성격이 더러워도 학력이 별 볼일 없어도 차만 타면 달라 보인다. 마치 조폭이 각진 그랜저를 타는 것 같다.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1의 병원 답게 모든 것이 초일류이다. 빈 자리에 벤츠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부딪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외제차와 접촉사고가 나면 감당하기 힘든 수리비가 나온다고 한다. 설령 상대방이 잘못해도 움직이는 중이었다면 뒤집어쓸 수 있다. 그래서 외제차를 발견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빵빵거리면 먼저 가라고 비켜 준다. 주차장에서는 정차되어 있기 때문에 염려는 없다.

벤츠에서 내린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잔뜩 찌뿌린 얼굴이다. 밖에서 보면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달리 보이는 것은 벤츠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대형차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돈을 모았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의문하는 것과 같다. 정당한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는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른다.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해서 부를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 어떤 집에서 사는지 알 수 없어도 차로만 본다면 주눅들기에 충분하다. 육십이 넘도록 고작 999씨씨 경차 타고 다니는 것이 자괴감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는다. 분에 넘치는 삶을 살았을 때 반드시 댓가가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언젠가부터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지금 너무 행복하면 반드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공포심을 말한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는 아마도 불교를 접한 것이 큰 이유라고 본다.

불교에서는 공덕을 많이 지으라고 한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이 생에서 많은 공덕을 지어 놓으면 다음 생을 위한 노잣돈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음 생에서는 천상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도 고귀한 존재로 날 것이라고 한다.

다음 생을 위한다면 현생에서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야 한다. 반대로 현생에서 즐기는 삶을 살면 그 동안 쌓았던 공덕을 까먹게 된다. 다음 생에 가져 갈 노잣돈이 없게 된다. 그래서 악처에 떨어질지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미천한 존재로 태어 날지 모른다.

이 생에서 다 써 버리고 나면 다음 생에 가져 갈 것이 없다. 써 버리기만 하고 더 이상 공덕을 짓지 않는다면 미래는 비참할 것이다.

이 생에서 돈을 많이 모으고 풍족한 삶을 살았을 때 전생의 공덕일 것이다. 즐기는 삶만 살며 더 이상 공덕 짓지 않았을 때 통장의 잔고가 텅텅 비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부자가 되기 두렵고 큰 차 타는 것이 두렵다.

화장실 가기 위해 차 밖으로 나왔다. 4층 옥외주차장에는 큰 차들로 가득하다. 소형도 아닌 999씨씨의 경차는 단 한대도 볼 수 없었다.

경차를 탔다고 해서 인격이 낮아 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대형 외제차를 탔다고 해서 인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배기량은 인격과 무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복을 까먹고 있는 것인지 복을 짓고 있는 것인지 아는 것이다.

최소형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복을 까먹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럴리는 없지만 대형 외제차를 탄다면 두려운 마음에 탈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복을 다 까먹으면 무엇이 남을까? 새로운 공덕을 짓지 않는 한 불행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차라리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스물세 평짜리 작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것 이상 되면 낭비라고 본다. 경차 타고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하다. 상견례가 있다면 염려되기는 하지만 그때 가서 볼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 나서 부처님 가르침 만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래서일까 티벳스님들은 "거지라도 좋으니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 나길 바랍니다."라고 발원한다. 인간의 지위를 받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돈이 많은 것이 두렵고 큰 집에 사는 것이 두렵고 큰 차를 타는 것이 두렵다.


2021-07-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