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유튜브 알고리즘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31. 09:09

유튜브 알고리즘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7월도 끝자락이다. 일년 중에 반이 꺽인지도 한달이 되었다. 어느 것이든지 반절이 지나면 가속되는 것 같다. 세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치 아침인가 싶으면 저녁인 것과 같다. 어느덧 연말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평온한 토요일 아침이다. 주오일제가 정착되어서일까 주말분위기가 난다. 일인사업자에게는 밤낮도 없고 주말도 없지만 토요일이 되면 덩달아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집에 있지 않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견딜 수 없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TV를 보는 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사무실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차에 시동을 건다. 동시에 음악을 재생시킨다.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미우이음악을 듣는다. 하루일과를 시작할 때는 라따나경(보배경 또는 보석경)을 듣는다.

 

 

이미우이 음악이 흐르는 아침이다. 사무실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절구질이다. 절구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원두를 으깨고 종이필터를 이용하여 내려 마시는 것이다. 손님이 왔을 때 절구커피를 내 놓으면 좀 더 다른 느낌을 갖는 것 같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을 쓰는 것이다. 자판만 두들기면 된다. 오랜 세월 해 온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오전이 다 가는 경우가 많다. 일은 그 다음 일이다.

 

일감이 있어야 힘을 받는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글쓰기 못지 않은 즐거움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놓으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입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일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요즘 게을러졌다. 원인은 유튜브이다. 틈만 나면 유튜브만 본다. 그러다 보니 불선심만 증장되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각적 욕망이다. 더 재미있는 것이나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어떻게 하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수행관련 유튜브를 종종 본다.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에이아이(AI)가 띄어 주기 때문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어느 테라와다 스님의 심념처에 대한 영상이 눈에 띄었다. 지난 법회 모임 때 보았던 스님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 같다. 대체 무엇을 말하자는 것일까? 마음에서 시작에서 마음으로 끝난다. 도중에 사띠라는 양념을 쳐 주긴 하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주절주절 말을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교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법문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유튜브를 잘 활용하면 이익이지만 내버려 두면 폐해가 된다. 유튜브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에이아이가 띄어 주는 것만 쫓아 가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일까? 그것은 검색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의외로 건질 것이 많다.

 

감각적 욕망만 부추기는 유튜브 시청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종교적 삶 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최근 수행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좌선에 임할 때 이번 좌선수행동안 한 순간의 알아차림도 놓치지 않겠습니다.”라며 다짐하라고 했다. 이런 각오 없이 좌선에 임하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번 좌선수행을 통해 도과에 들어 모든 번뇌 소멸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십바라밀 중에서 결정바라밀이 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심 없이 일을 했을 때 흐지부지 되기 쉽다. 경을 암송하고자 할 때 대단한 결심을 내는 것과 같다.

 

하루 일과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결심해야 한다. 유튜브에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결정바라밀에 해당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번 30분 이상 좌선하겠다는 것도 결정바라밀이다. 현재 가장 안되어 있는 것들이다.

 

하루일과 대부분 혼자 보낸다. 일인사무실에서 홀로 있다 보면 심산유곡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연스럽게 묵언이 된다. 그러나 유튜브를 보면 망가지는 것 같다.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는 유튜브 시청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 대신 글쓰기와 독서, 명상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삶에는 결실이 있어야 한다. 먹고 자고 배설만 하는 삶을 산다면 축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글쓰기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글쓰기는 생활화되어 있다.

 

한번 써 놓은 글은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에스앤에스와 같은 글쓰기는 하지 않는다. 한번 지나가면 끝이 되고 마는 글쓰기는 허망한 것이다. 한번 먹고 마는 글쓰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써 놓은 글은 블로그에 모두 올려 놓았다.

 

글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반드시 형식과 의미를 갖춘 글을 쓰고자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글쓰기이다. 왜 이런 글을 쓰는가? 남기기 위해서 쓴다. 글도 삶의 결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디가니까야에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D2)이 있다.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수행자의 삶의 결실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삶의 결실은 번뇌의 소멸이다. 그래서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며 아라한 선언을 하는 것이다.

 

재가 수행자로 삶을 살고자 한다.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출가자처럼 살고자 한다. 그렇다고 경에서 보는 것처럼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현세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글쓰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많은 글을 썼다. 그 동안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블로그에 수천개의 글이 올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가시화되는 것 같다. 이것도 재가수행자의 삶의 결실일 것이다.

 

나는 수행자인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스승 없이 수행하는 것도 수행이라 볼 수 있을까? 스승이 없으면 경전을 스승으로 삼으면 된다. 유튜브도 있지만 경전 만한 것이 없다. 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쓰기 했을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글쓰기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경을 암송해야 하고 좌선과 행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사띠해야 한다. 바로 이전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 오래 전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새겨야 한다.

 

경계에 부딪칠 때 마다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십년공부 도로가 된다. 특히 유튜브가 문제이다. 유튜브 알고리즘 하자는 대로 하면 망가진다. 과연 나는 오늘도 유튜브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2021-07-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