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저녁 노을에서 숭고(崇高)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7. 06:18

저녁 노을에서 숭고(崇高)를



오늘 일몰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본 서녁하늘은 벌겋게 달구어져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구름이 잔뜩 낀 상태에서 본 일몰은 장엄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아파트 동과 동 사이 틈에서 본 것은 반의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일몰은 대단했었던 것 같다. 카톡방에 일몰사진이 올라왔다. 법우님이 사는 동네는 용산이다. 사진을 보니 하늘 전체가 벌겋게 달구어져 있다. 마치 불타는 듯하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진 상태에서 저녁노을은 금방 스러지고 만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있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유년시절 저녁노을을 보고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이는 왜 울었을까?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앞으로 인생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해 주는 것과 같다.

이유 없는 눈물이 있을까? 이유 없는 눈물은 없다. 눈물 흘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슬퍼도 눈물을 흘리고 기뻐도 눈물 흘린다. 억울해도 눈물 흘린다. 감동해도 눈물 흘린다. 세상에 눈물 흘릴 이유는 많다.

어린 아이는 왜 찬란한 노을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을까? 전에는 미래 자신의 운명 때문에 눈물 흘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본다면 눈물 흘리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기는 태어나자 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것일까?

유년기 아이가 저녁노을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린 것에 대해서 달리 해석해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숭고(崇高)일지 모른다. 수학적 숭고를 말한다.

수학적 숭고가 있다. 한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면서, 밤하늘에 수많은 별을 보면서 느끼는 쾌를 수학적 숭고라고 말한다. 당연히 저녁노을도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적 숭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 아름다운 꽃이 있다.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쾌를 느낀다. 꽃을 보고서 불쾌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쁜 여인을 보아도 쾌를 느낀다. 잘 정돈된 도시를 보아도 쾌를 느낀다. 대자연은 어떨까?

중국여행 갔었을 때이다. 운대산 갔었을 때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은 장쾌했다. 설악산 울산바위가 멋지다고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대한 스케일이었다. 숭산에서 본 대자연은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이런 광경은 쾌를 넘어서 장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장쾌를 넘어선 것이 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우주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이를 장쾌하다고 말할 수 없다. 장쾌를 넘어선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 말이 바로 숭고이다.

아름다움과 숭고는 다른 것이다. 누군가아름답다라고 말 했을 때, 이는 자신의 지성, 즉 지적 능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상상력의 범위 안에 있을 때 아름답다거나 장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로 확대되면 달라진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이럴 때 상상력이 발휘된다. "저 하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며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로는 알 수 없다.

아이가 벌겋게 달구어진 저녁노을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이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노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덤덤할 것이다. 그러나 생전 처음 노을을 본 아이는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저녁노을을 모르는 아이는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노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자신의 지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상상력과 이성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저녁노을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숭고가 된다.

수학적 숭고는 이런 것이다. 숫자를 세는 것에는 한정이 있다. 조단위를 넘어 가면 경이 될 것이다. 그 너머는 무엇일까? 아무리 큰 자연수를 상상하더라도 그 보다 큰 자연수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은 슬슬 좌절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때 이성이 등장한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이성은 어떤 대상을 하나의 통일된 체계 속에서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수학적 숭고의 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크기에 압도되어 상상력과 이성이 그것을 포착하지 못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이성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 서쪽하늘을 온통 벌겋게 달군 노을에서 숭고를 보았다.


2021-08-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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