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잔뜩 찌뿌린 일요일 아침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29. 07:52

잔뜩 찌뿌린 일요일 아침에

 

 

촉촉히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도 예외없이 아지트로 향했다. 차로 불과 십분 거리에 있다. 이미우이 라따나경 음악 하나 들으면 도달하는 거리이다. 떠나기 전에 감자를 준비했다. 아침에 먹을 것이다.

 

감자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보았다. 이전에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했었다. 더 이전에는 찜기를 이용했다. 에어프라이어 감자맛은 어떨까? 틀림없이 맛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결과 맛에 매혹되었는데 감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어프라이어 조건을 18020분으로 세팅하여 가열했다. 잘 익었다. 겉은 쭈글쭈글 하다. 맛을 보니 최상이다. 고슬고슬한 것이 감자 특유의 맛이 확 풍긴다. 새로운 발견이다. 앞으로 계속 애용할 것 같다.

 

감자는 장모님이 주신 것이다. 이번 부모님 기일을 앞두고 창동에서 가져온 것이다. 갈 때마다 김치, 나물, 감자 등 갖가지 먹거리를 잔뜩 챙겨 준다. 감자는 시골 것이라고 한다. 강원도 철원감자를 말한다. 처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 경계 사이에 있는 시골이다.

 

아직까지 김치를 담구어 먹어 본 적이 없다. 팔팔년 이후 계속 챙겨 주기 때문에 얻어먹는 세월이 되었다. 아마 돌아 가실 때까지 그렇게 할 것 같다. 이번에 담근 배추김치는 커다란 통으로 가득 들어 있다. 아마 대여섯포기는 되는 것 같다. 사서 먹는다면 십만원 이상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딸사랑이라 해야 할까 사위사랑이라 해야 할까? 딸사랑에 가깝다고 보지만 둘 다일 것이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의지처가 되고 부모는 자식이 의지처가 된다.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 그래서 늘 안위를 염려한다. 나이가 육십이 되었어도 부모는 늘 염려한다. 같이 늙어가도 변함없을 것이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것이라도 써야 한다. 글 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리고 의무이다. 기분 좋으면 쓰고 소재가 있으면 쓰는 식이 아니다. 기분과 관계없이 소재와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쓰는 것이다. 쓰다 보면 펜 가는 대로 써지게 되어 있다. 마치 강연자가 강연하지만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써 본다. 아니 키보드를 때려 본다. 감자를 먹어 가면서 커피를 마셔 가면서 바깥 빗소리를 들어 가면서 이렇게 키보드를 때려 본다.

 

 

비 내리는 차분한 아침이다. 아침 일곱 시 이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절구커피를 말한다. 절구커피라는 말은 내가 이름 붙인 것이다. 절구커피라는 말이 세상에 통용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만든 신조어 중의 하나가 절구커피이다.

 

커피 원두 한움쿰 절구통에 집어넣는다. 공이로 으깨는 작업을 한다. 이전에는 그라인더로 갈았다. 수동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드륵드륵갈았는데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원두가 으깨지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었다.

 

 

절구로 바꾼 것은 위생적 요인이 크다. 그라인더는 오래 사용하면 기름 때가 생긴다. 그러나 무엇보다 TV영향이 크다. 언젠가 TV를 보았는데 남미 커피 원산지에서 원주민들이 절구를 이용하여 커피 만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두는 선물 받은 것이다. 페이스북친구(페친) 임진규 선생이 준 것이다. 벌써 두 번째 선물이다. 이탈리아 나폴리 커피와 함께 준 것이다. 원두는 에티오피아 코케허니 GI 내추럴이라고 쓰여 있다. 원두 중에서 최상품으로 보여진다.

 

페친은 왜 원두와 커피 관련 상품을 선물로 보내 준 것일까? 그것은 글 때문이다. 매일 글을 올리고 있는데 잘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준 것이다. 커피 관련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절구질을 할 때 이미우이 음악이 흘렀다. 차에서 듣던 것이 사무실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라따나경은 13분짜리이지만 스마트폰에는 두 번 반복된다. 모두 17개 게송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게송을 들어도 마음이 고양된다. 이번에는 일곱 번째 게송이 마음에 들어왔다.

 

 

예 숩빠윳따- 마나사- 다헤나

닉까-미노 고따마 사-사나미

떼 빳띠빳따- 아마땅 위개하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확고한 마음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이,

고따마의 가르침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불사에 뛰어들어 목표를 성취해서 희열을 얻어 적멸을 즐깁니다.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Stn.228)

 

 

승보에 대한 찬탄과 예경에 대한 것이다. 가르침을 잘 실천하여 열반에 들어 불사(不死: amata)가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사향사과와 열반을 실현하여 괴로움과 윤회를 완전히 끊어 버리라는 부처님 가르침이다.

 

이미우이의 라따나경을 들으면 마음이 한껏 고양된다. 듣기만 해도 기쁨과 환희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음악에 심취되면 고귀한 자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들으면 더욱 더 감격적이다.

 

라따나경(보배경 또는 寶石經)은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가장 고층경전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입문자들을 위한 쿳다까빠타(小誦經)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미우이 음악이 흐르는 아침에 감자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오는 날 하늘은 잔뜩 찌뿌려 있지만 오히려 차분한 느낌이다. 살다 보면 흐린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날씨가 늘 변화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늘 바뀐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Dhamma)이다.

 

담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격정적인 마음일 때나 차분한 마음을 때나 경전을 펼치는 순간 다른 마음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다름아닌 청정한 마음이다. 담마는 모두 청정을 노래한 것이다. 담마를 읽고, 담마를 외우고, 담마를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최상의 삶 아닐까?

 

 

2021-08-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