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내몸은 녹슬지 않았다, 관악산 연주암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30. 05:37

내몸은 녹슬지 않았다, 관악산 연주암에서

 


여기는 연주암 툇마루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에 가면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지만 불교인은 절로 향한다. 관악산에 가면 대개 연주암으로 간다.

더위가 한풀 꺽였다고는 하지만 산행하면 여전히 덥다. 덥기도 하지만 끈적끈적한 것이 불쾌하다.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해서인지 습도가 높다.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일요일 오후 산행을 감행한 것은 운동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내비산 산림욕장 입구에 버스로 도착한 것은 1시 25분이다. 수도군단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오늘 산행 목적을 관악산 종주로 잡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기봉을 거쳐서 연주암에 이르러야 한다. 하산은 과천길로 하기로 했다.

산행은 오랫만이다. 몇달 되는 것 같다. 관악산 종주는 1년 이상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날씨가 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만 있으면 체력이 약화 되어 곤란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극 받았다.

페이스북친구는 매일 그것도 세 달 서울 주변 산을 산행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내가 너무 게으른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내가 너무 안락하게 사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5분만에 국기봉에 올랐다. 국기봉에서 연주암까지 1시간 걸렸다. 버스 종점에서 걷기 시작하여 2시간 반만에 연주암에 도착한 것이다.

산행은 처음이 힘들다. 산행시작하고 난 다음 30분 정도만 견디면 그 다음 부터는 쉬워진다. 마치 좌선할 때 처음 이삼십분이 힘든 것과 같다. 한번 호흡을 잡기 시작하면 그 다음 부터는 수월하다. 산행도 처음 30분 "빡세게" 올라가면 그 다음 부터는 다리가 풀려서 힘든 줄 모른다. 능선을 탈 때는 꽃길을 걷는 것 같다.

산행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힘들게 산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라갔다가 내려 올 것을 힘들게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서이다. 다리가 뻐근하게 4-5시간 걷다 보면 몇 달 운동할 것을 한꺼번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산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다.

 


산행하면서 인내를 배운다. 목표를 정해 놓고 올라가는 것이 인생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목적 없이 산행하면 힘만 들 것이다. 그러나 정상을 목표로 결심을 하게 되면 힘들어도 올라가게 된다. 십바라밀에서 결정바라밀이 있는 이유에 해당될 것이다.

첫째, 산행하면서 고행의 의미를 새긴다. 산행은 힘든 것이다. 힘든 것을 감내하면서도 올라가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를 고행이라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고행이라 하여 업장소멸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자이나교도의 고행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적 고행은 무엇인가? 이는 청정도론에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 최상의 고행이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인내하는 것이 고행임을 말한다. 그래서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지침서를 보면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했다.

 


둘째, 산행하면서 단계적 배움을 새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더이상 통용되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산행에서는 한걸음부터가 적용된다. 탈것을 타고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행하는 것은 마치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 같다. 한걸음씩 계단 오르듯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는 점차적인 배움, 점차적인 실천, 점차적인 진보가 있지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꿰뚫음은 없다."(A8.19)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산행하면서 수행의 의미를 새긴다. 한발 한발 뗄때마다 발에 집중하면 번뇌는 사라진다. 암반을 오르내릴때 잡생각이 일어날 수 없다. 오로지 현재 행위에 집중하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날 수 없다. 걷기가 지루하고 힘들 때는 발에 알아차림 하면 된다. "왼발, 오른발"하며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이거시머시다냐"하며 발을 번갈아 일곱보 걷는 것이다. 이 방식은 몇달전 김우헌 선생에게 들은 것이다. 마치 "이뭐꼬?"화두 들듯이, 전라도말로 "이, 거, 시, 머, 시, 다, 냐"라며 걸으면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해 보니 잡생각도 나지 않고 발에 잘 집중되었다.

연주암에는 등산객들이 종무소 툇마루에 앉아 있다. 방송에는 영인스님 금강경 독송이 흘러 나온다. 불교인은 절에 가면 법당에 참배해야 한다. 불, 법, 승 삼보에 예배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오체투지 했을 것이다. 요즘은 테라와다식 절을 한다. 앉아서 합장하고 상체를 앞으로 굽혀서 두 손바닥과 이마를 바닥에 대는 방식을 말한다. 이때 알아차림을 유지한다. 처음부터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오체투지 하면 경건해지는 것 같다. 아홉번 절했다. 삼보에 대하여 두 번, 세 번 절한 것이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오늘 산행으로 인하여 몸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과천방향은 계곡길로 지루한 내리막만 있는 길이다. 스틱에 의지하여 내려 가야 한다. 스틱이 없으면 산행이 힘들다. 스틱에 의지하면서 "왼발, 오른발" 하는 것보다는 "이, 거, 시, 머, 시, 다, 냐"라며 한발, 한발 내딛고자 한다.

2021-08-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