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30. 08:43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그는 성공한 CEO이다. 그가 페이스북에서 쓴 글은 인기가 좋다. 한번 썼다 하면 좋아요추천이 수백개에 달한다. 마이더스의 손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체 어떤 점이 글의 매력일까?

 

성공한 CEO는 요즘말로 말하면 처세학에 대한 글을 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주로 직장과 관련하여 후배직장인을 위한 글이기는 하지만 때로 교훈적인 글도 쓴다. 이런 글을 읽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그러나 아닌 것 같다.

 

성공한 CEO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실패자이다. 이 사회의 루저나 다름없다. 가진 것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소유한 것도 별로 없고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 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때 부자가 되고자 했다. 직장인이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동산 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식투기하는 것이다. 이른바 종자돈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몇 배 올라서 천문학적 돈을 번 사람들이다. 이런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른다. 불로소득으로 번 돈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어떤식으로든지 불행이나 재난이 닥치게 되어 있다.

 

우리사회에 부동산신화가 있다. 칠팔십년대 불로소득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부동산투기로 천문학적 돈을 벌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집이 두 채 있는 것이다. 한채는 살집이다. 나머지 한채로 굴리는 것이다.

 

성장의 시대는 투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자고 나면 부동산이 폭등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손쉽게 돈을 벌었다. 그때 번돈으로 지금까지 백만장자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주식으로 대박나고자 했다. 2000년 무렵 주식광풍시대가 있었다. 김대중정부시절 벤처열풍이 불었는데 자고 나면 주가가 급등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대박을 꿈꾸었다. 그럴 만한 것이 그때 당시 벤처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많이 옮겨 다녔다. 처음에는 큰회사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답답했다. 꽉 짜여진 것이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숨막히는 듯했다. 월급은 만족했으나 정신적으로는 늘 불만이었다.

 

먼저 입사한 사람들을 삶을 보니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5, 10, 20년이 흘렀을 때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때까지 갈 것 같지 않았다. 동기들이 워낙 많아서 그 좁은 자리에 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벌도 영향을 주었다. 동기들 중에서도 ROTC출신은 진급도 빠르고 대우도 잘 받는 것 같았다. 부서장이 ROTC출신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주는 것 같았다.

 

큰회사 생활은 7년만에 접었다. 마치 병영 같은 직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안에 갇혀 사는 돼지로 사는 것보다는 야생의 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그래서 늘 탈출을 꿈꾸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이후 삶은 직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삶을 살게 되었다. 2000년 무렵 다녔던 벤처회사도 그 중의 하나였다.

 

벤처회사는 강남에 있었다. 디지털셋톱박스와 모뎀을 개발하여 생산하고 판매하는 신생회사였다. 돌장사 하던 사람이 누군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때 당시 벤처열풍이 불던 때라 잘 하면 대박 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셋톱박스 업계에서는 2000년을 기준으로 하여 기술트렌드가 변했다. 2000년 이전에는 아날로그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디지털로 급속하게 바뀌었다. 아날로그 개발자는 디지털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를 단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단절이 있었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디지털 기술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아날로그는 옛날 것이고 낡은 것이었다. 반면 디지털은 새것이고 첨단적인 것이었다.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을 때 기대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스톡옵션이었다.

 

회사에서 어느 날 스톱옵션 발표를 했다. 모든 직원에게 직급별로 할당액을 정한 것이다. 액면가로 사면 된다. 만약 코스닥에만 상장된다면 몇 십 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했다. 오로지 스톱옵션 그거 하나만 바로 보고 버틴 것이다. 그러나 희망에 그쳤다. 상장되기는커녕 도중에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석재로 돈 번 사장은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쉽게 그만 두어 버린 것이다.

 

셋톱박스 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코스닥에 상장하여 떼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소속해 있는 직원들은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상장과 동시에 천문학적 금액을 받아 지니게 되어서 졸지에 부자가 된 것이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더 이상 일할 의욕이 나지 않은 것이다. 굳이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부터는 즐기는 삶이 시작된다. 젊은 나이에 은퇴하여 별장에서 지내는가 하면 골프를 치고 맛집을 찾아 다니는 등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성공일까?

 

 

우리사회는 모든 것을 물질적인 가치에 우선을 두고 있다. 이를 속된 말로 표현 하면 , ,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 할 때 역시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다. 어떻게 하면 부동산 투기를 하여 한탕 칠까 하는 것과 사 놓은 주식이 대박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탐욕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은 2005년까지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이다. 한마디로 쫓겨날 때까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회사, 벤처회사를 전전하다 보니 오래 있지 못했다.

 

2000년 무렵 강남의 벤처회사에서부터 시작하여 2005년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때까지 회사를 세 번 더 옮겼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것이다. 사업하다 안되면 접어 버리기 때문에 옮겨 다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번은 서울 가양동으로 출근했다가, 또 한번은 부천으로 출근했고, 마지막으로는 분당 야탑으로 출근했다. 짧게는 1년이고 길게는 2년이었다.

 

40대 전반에 큰 좌절을 겪었다. 숨막히는 병영과 같은 큰회사에서 탈출하여 야생의 사자와 같이 살고자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달도 쉴 수 없어서 직장을 찾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이력서는 칸이 부족할 정도가 되었다.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직장을 찾아 다닌 것이다. 2005년 퇴출되자 더 이상 직장을 잡지 못했다. 아무곳에서도 오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에 백수가 되었다. 무어라도 하나 해야 했다.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입장에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2년가량 방황했다. 그러다가 자리를 잡은 것은 2007년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나서부터였다. 현재 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설계업을 생업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14년 동안 이 일만 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오래 직장생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것이기 때문에 오래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일은 정년도 없다. 이제야 내 자리를 찾은 것 같다.

 

내것과 내것이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CEO라도 제것이 아니면 언젠가 퇴출되기 마련이다. 물론 스톱옵션을 받아서 한몫 단단히 챙겨 두었다면 느긋할 것이다. 노후보장은 확실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으로 인해서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물질적 성공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 지위가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 자리에 물러나야 한다. 지위가 성공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동산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긴 자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불로소득으로 인하여 재난이 닥칠 수 있다. 부자들은 감각적 쾌락의 재난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애써 이마의 땀과 팔의 힘으로 형성된 재산이 아닌 것은 매우 위험하다. 로또 맞은 자의 불행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식으로 대박 난 것도 이에 해당된다.

 

진정한 성공은 무엇일까? 사회통념상으로는 지위, 재산, 명예, 권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보장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속팔풍(世俗八風)이라 하여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세상을 전재시키고,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 안에서 전개 된다.(A8.6)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득이 있는 곳에 손실도 있다. 부자가 가난한 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이를 말한다. 지금 사업이 잘되어서 시가총액이 천문학적이라고 할지라도 망하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된다. 일인사업하면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다. 지금 부유하다고 하여 이 부가 끝까지 지속될까?

 

명예를 영원히 지킬 수 있을까? 살다 보면 불명예스러운 일도 발생한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 어느 날 파렴치한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부동산투기가 들통나서 망신을 당하는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고위공직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명예가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유지될까?

 

사람들은 칭찬에 약하다. 그러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칭찬이 있는 곳에는 비난도 따른다. 선플도 있지만 악플도 있는 것과 같다. 광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인기 있다고 해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금 행복한 자가 있다. 가진 것도 많고 자손도 많아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한없이 천년만년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날 전화 한통 받고 무너진다. 지금 이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 언제 어떻게 불행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불행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때 부자가 되고자 했다. 부동산 투기와 주식투기로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더 이상 허황된 꿈은 꾸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가치 있는 일에서 자존감을 갖는다.

 

요즘 통용되는 말 중에서 부러우면 진다는 말이 있다. 나 보다 부자인 사람에게 부러움을 갖는 다면 그는 이미 진 사람이다. 나보다 학위가 높은 사람을 질투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진 것이다. 나보다 지위가 있는 자를 시기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패한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사람에 비해서 나의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짜자존감과 진짜자존감이 있다. 가짜자존감은 물질적 가치에 의미를 둔 것이다.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한다면 나의 자존감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무수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한사람을 빼고 모두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대통령 한사람을 빼면 역시 모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 된다. 이것은 가짜자존감이다.

 

진짜자존감은 물질적 소유와 관련이 없다. 명예와도 관련이 없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자존감은 높아진다. 남에게 기쁨을 주었다면 역시 자존감은 높아질 것이다. 수행을 해서 정신적으로 만족했다면 역시 자존감은 높아진다. 이것이 진짜자존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를 행복이라고 말한다. 돈이나, 지위, 명예, 권력 등 어떤 것이든지 소유하면 이를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은 일시적이다. 잠시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행복이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파괴될 수 없는 나만의 행복이다.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느끼는 잔잔한 행복감 같은 것이다.

 

이 나이에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 재산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고, 지위도 그렇다. 만일 내가 부동산투기나 주식투자로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챙겼다면 자만이 싹텄을 것 같다. 투기도 실력으로 인정하여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내가 피에치디라는 학위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박사인데.”라는 자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성공한 CEO라면 내가 사장인데.”라는 자만에서 살 것이다.

 

부자가 안되어서 다행이다. 높은 학위를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높은 지위를 갖지 않아서 다행이다. 부자의 자만, 배운자의 자만, 태생의 자만을 가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자만 하나만 가져도 번뇌가 된다. “내가 누군데.”라는 자만이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Dhp.72)

 

 

무언가 좀 아는 것이 문제가 된다. 요즘 지식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세속팔풍에 지나지 않는 이익, 명예, 칭찬, 행복을 추구했을 때 반드시 그 반대의 것, 즉 불익, 불명예, 비난, 불행이 따름을 말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로지 부와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했을 때 크게 깨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구경에서는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라고 했다.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가? 직장생활 20년 했을 때 나의 삶은 없었다. 남을 위한 삶이었다. 그러나 40대 초반 크게 깨지고 난 다음 나의 삶을 살게 되었다.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었을 때 홀로 되었다. 진정한 우리 밖에 있는 사자가 된 것이다.

 

야생의 사자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한다. 우리 안에 갇힌 사자는 사육사가 먹이를 주지만 야생의 사자는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야 한다. 사회에 홀로 내동이쳐졌을 때 야생의 사자가 된 느낌이었다. 큰조직이 숨막힐 듯 답답해서 뛰쳐나왔지만 또다시 작은 회사를 전전했을 때 우리에 갇힌 사자나 다름없었다. 어느 누구도 관심보이지 않았을 때 홀로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인사업자로서 14년째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나의 삶이다. 올해 상반기 부가세신고할 때 성적표를 보았더니 중소기업신입사원연봉밖에 되지 않았다. 성공한 CEO의 관점으로 본다면 나는 실패자이다. 그러나 소유개념을 떠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물질적 소유로 판단한다면 실패한자나 루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홀로서기 하면서 나름대로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했다면 실패라고 볼 수 없다. 물질적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정신적인 가치는 시간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써 놓은 글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올려 놓은 10년 전의 글은 지금도 살아 있다.

 

가장 애매한 사람이 있다. 정년퇴임한 사람들이다. 대개 60이전에 그만둔다. 그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동안 번 돈으로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65세에 정년퇴임했다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저 죽을 때까지 연금이나 타먹으면서 보낼지 모른다. 이에 반하여 좀더 일찍 사회에 나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40대 중반에 퇴출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2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만든 2005년을 나의 태어난 해로 삼고 있다. 올해 나의 나이는 16세이다. 아직도 왕성하게 배울 때이다.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2021-08-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