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문득문득 울컥울컥하는 마음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1. 08:18

문득문득 울컥울컥하는 마음에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다. 오래된 일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반년이 넘었건만 이렇게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분노에 대한 수많은 글을 썼다. 경전에 있는 성냄에 관한 가르침도 많이 인용했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수행이 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관찰 수행(心念處)을 해 보아도 소용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다.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흔히 사과하라.”고 말한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일본정부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사과하라고 한다. 갑질한 사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 허리를 90도로 굽힌다.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그 한마디 듣고 싶어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도 있다.

남태령 고개를 넘어가다 군부대 앞에 서 있는 어느 여인을 보았다. 중년의 여인이 일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얼핏 피켓을 보니 데려 갈 때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순간적으로 군부대 사고임을 알았다. 여인은 진실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많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다.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 물질적 보상도 좋지만 정신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산자에는 직접 찾아 가서 사과해야 한다. 죽은 자에게는 무덤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가까운 자에게라도 대신 사과해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이 많다. 가르침을 접하기 전에는 모르고 지은 죄업이 많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하는 것이 있다. 나를 힘들게 한 자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내 돈 떼 먹고 달아난 자를 어떻게 잊겠는가? 부모를 살해한 원수는 세월 지나면 잊을 수 있다. 왜 그런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돈 떼먹은 자는 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나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어도 못 잊는 것이다. 하물며 나에게 상처를 준 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 분노의 감정을 털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나도 편하고 그 사람도 편할 것이다. 참회를 해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참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연장자에게는 무릎 꿇고 존자여, 제가 존자에 대하여 이러이러한 말을 했는데,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참회는 용서를 바라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에게는 쪼그리고 앉아서 대중들을 향하여존자들이여, 저는 이러이러한 이름의 존자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그 존자가 저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Vism.13.85)라며 참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회의 대상이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만약 그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면 완전한 열반에 든 침상에 가거나, 묘지로 가서 참회를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생천의 장애나 길의 장애가 없게 되고 치유된다.”(Vism.13.88)라고 했다.

참회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음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마음 속에 늘 미안한 감정이 있다면 도와 과의 길에 장애가 될 것이다. 또한 하늘나라에 태어나는데 지장을 줄 것이다.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하여 도와 과의 길과 생천의 길에 도움된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참회를 하면 참회를 받아 주어야 한다. 다만 진실된 참회여야 한다. 그럼에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옹졸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참회할 때 참회를 받지 않고
울화를 품고 분노가 무거운 자는 원한에 묶이네.
나는 원한을 즐겨하지 않기에
그대들의 참회를 받아들이네.”(S1.35)


참회를 했음에도 이를 용인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노의 감정을 평생 안고 가고자 하는 자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참회라면 받아 주어야 한다. 자신을 원한에 묶이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전두환은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가 죽기전에 광주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광주시민들은 용서해 줄까?

사죄를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다만 진실된 사죄여야 한다. 허리만 90도로 급히는 형식적 사죄여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받아 줄지 모른다. 그래야 서로서로 좋은 것이다.

원한의 감정을 언제까지나 안고 갈 수 없다. 마음의 장애를 언제까지나 지니고 살 수 없다.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주면 될 일이다.

이제까지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장애를 남기고 싶지 않다. 그가 사과를 하면 사과를 받아 주어야 한다. 무시당했다는 마음에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문득문득 울컥울컥 떠 오르는 분노는 나의 마음의 장애이다. 하루빨리 털고 싶다.


2021-09-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