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만 고집할 필요 없다, 식당순례 25 낙지갈비탕
오늘은 외식하는 날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된다. 눈에 띄여도 선택된다.
오늘은 칼칼한 것이 좋을 것 같다. 느끼한 것보다는 얼큰한 해물이 더 나을 것 같다. 안양아트센터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늘 날씨가 무척 좋다. 어제 비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햇살은 따가울정도로 따사롭다. 나뭇잎은 햇살에 반짝인다. 모처럼 살맛나는 날씨이다.
나홀로 식사하는 사람에게 갈 곳은 많지 않다. 역세권식당은 무조건 피한다. 임대료가 높기 때문일까 코로나시기에도 좌석이 다 찬다. 나홀로 가면 테이블만 차지하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다.
큰식당도 피한다. 큰식당이라 하여 맛도 있고 청결하고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다. 마치 규격화된 메뉴는 개성이 없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 같다. 혼밥하는 자에는 역세권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식당이 적합하다.
마침내 숙고 끝에 적합한 식당을 발견했다. 낙지집이다. 메뉴를 보니 무척 싸다. 평균 6천원이다. 요즘 대부분 7천원 이상이다. 8천원인 곳이 많다. 그럼에도 6천원짜리가 있다니!
식당에 들어가 보니 무척 좁다. 5평가량 되는 것 같다. 식탁은 모두 6개의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서민용 식당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식당은 허름한 분위기이다. 식당주인도 허름하고 사람들도 허름한 것 같다. 뒤 식탁에서 중국말씨가 들린다. 싼 맛에 온 것일까?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좋다. 이런 분위기가 마음 편하다.
식당에는 감사하게도 2인용 식탁이 있다. 혼밥하는 자에게는 반가운 것이 없다. 4인용 식탁에 앉으면 점심대목에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2인용 식탁에서는 마음의 부담이 없다.
메뉴는 다양하다. 6천원짜리가 주류이지만 일부러 찾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 비싼 것을 주문했다. 낙지갈비탕이 7천5백원이다. 이를 주인 아주머니는 주방을 향하여 “낙갈 하나요.”라고 했다.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건설현장 노무자들이 단체로 식사하고 있었다. 가장 저렴한 6천원짜리 낙지비빔밥이다. 밥 먹는 모습에서 삶의 활력을 본다. 검게 탄 얼굴에 손은 거칠다. 마치 극한직업 프로에서 고된 노동을 한 사람들이 꿀맛 같은 점심을 먹는 것 같다.
낙갈이 나왔다. 뚝배기가 펄펄 끓는다. 낙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낙지와 갈비가 들어 있다. 마치 해물과 육류의 콜라보 같은 느낌이 든다. 갈비뼈 육수와 낙지의 쫄깃함이 잘 조화되는 것 같다.
낙갈은 고기보다 국물이다. 국물이 시원하다. 어느 정도일까?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하다. 마치 만원 이상짜리 갈비탕 국물을 마시는 것 같다. 여기에 해물이 들어가니 또 다른 맛이다. 한모금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웠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는 곳만 다녔다. 이른바 단골이라고 해서 가 본 곳만 가 보다 보니 선택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시기를 맞이하여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하여 식당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식당은 많고 맛집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한곳만 고집할 필요 없다. 맛이 없으면 다른 곳에도 가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식당순례 하다 보니 어느 식당이든지 모두 맛집이라는 것이다. 점심식사 대목을 맞이하여 어느 식당이든지 최상의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하여 최상의 맛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부가 안되면 그곳을 떠나라! 이 말은 초기경전에 있는 말이다. 수행자가 수행처를 찾아 갔는데 조건이 맞지 않으면 떠나라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지내보았지만 공부에 진척이 없을 때 그 사람에게서 떠나라고 했다.
수행환경도 좋지 않고 스승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떠나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수행승은 밤이건 낮이건 물어보고,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좋으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된다.”(M17)라고 했다. 당장 오늘 중으로 떠나라는 것이다. 다만 말은 하고 떠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수행환경이 좋지 않아도 스승이 좋다면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수행환경도 좋고 스승도 좋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럼에도 동료와 불화가 있어서 나가려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 수행승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사람에게 머무는 것이 좋으며, 쫓겨날지라도 그 사람을 떠나서는 안된다.”(M17)라고 했다. 자신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누군가 쫓아 낸다고 할지라도 절대 떠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한곳에만 머물고 한곳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코로나시기를 맞이 하여 사무실 주변 식당순례를 한 결과 어느 식당이든지 맛집임을 알았다. 어느 식당이든지 나름대로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골집만 다녀서는 안된다. 어느 식당이든지 하나 정도는 잘하는 것이 있다. 어느 식당이든지 전문점인 것이다.
스승도 한사람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공부가 되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다. 내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은 모두 스승이 된다. 내가 선재동자가 되어서 세상의 선지식을 찾아 보고자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오늘도 고독한 식당순례자가 되어서 한끼를 먹었다. 오늘 점심때 먹은 낙지갈비탕은 최상의 공양이 되었다. 지금 코로나시기에는 한번 들어간 식당은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앞으로 들어가 보아야 할 식당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찾을 것이다. 오늘도 최상의 선택,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한곳만 고집할 필요 없다. 어느 식당이든지 맛집이다.
2021-09-03
담마다사 이병욱
'음식절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까지 차려 준 것만 먹어야 할까? 근대무침에 도전하고 (0) | 2021.09.06 |
---|---|
사회적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0) | 2021.09.06 |
그날 점심때 투명인간 되었는데, 식당순례 24 동태맑은탕 (0) | 2021.08.27 |
토마토 요리해 보았더니 (0) | 2021.08.19 |
가난한 자도 재벌못지 않은 만족을, 식당순례 23 양평해장국 (0) | 2021.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