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사회적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6. 04:41

사회적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점좌판을 보면 지나치지 않는다. 팔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산림욕장 입구 좌판에서 근대와 청양고추를 샀다. 각각 2천원씩이다. 밭에서 직접 수확한 것이다. 또 다른 좌판에서는 도토리묵을 샀다. 3천원이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 달리 쫀득쫀득한 것이 순도가 높은 것 같다.

 


버스정류장에서 호박잎을 샀다. 한바구니에 2천원이다. 한바구니 샀더니 두 바구니 주었다. 푸짐한 것을 보니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노점좌판에서 물건을 살 때는 '산다'라는 말보다 '팔아준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트에서는 물건을 사는 것이지만 노점좌판에서는 팔아 주는 것이다. 왜 팔아 주는가? 도움을 주기 때문에 팔아 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물건 이삼천원어치 팔아 주었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사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위안이 될지 모른다. 좌판을 벌여 놓았는데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절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거래는 있다. 좌판을 벌여 놓으면 누군가 사가는 사람은 있을 것다. 이것이 시장의 원리이다.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지 팔리게 되어 있다.

노점죄판에서 먹거리를 사는 것은 기쁨이다. 구호단체에 소액 보내는 것과 비바가 아니다. 우선 정이 있다. 고작 2천원 밖에 되지 않은 채소이지만 건네받고 건네 줄 때 정감이 있다. 여기에 서로 말이 오가면 사는 맛이 난다.

국제구호단체 광고를 보면 비참한 장면을 보여준다. 분유가 없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기를 보여 주며 "도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소액이지만 수가 많으면 큰 금액이 될 것이다.

공익광고도 자주 보다 보면 식상한다. 어떤 때는 앵벌이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즘에는 그린피스광고까지 등장했다. 북극곰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다. 팔아 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적 실천 아닐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의 재난에 빠질 수 있다. 많이 가진 것은 자랑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부를 자랑한다면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세상에 '눈총'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떳떳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해도 총 맞아 죽지 않는다. 그랜저타고 다닌다고 자랑은 못해도 모닝타고 다닌다고 자랑은 할 수 있다.

노점좌판에서 삶의 활력을 본다. 불로소득자의 희고 고운 손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좌판 할머니의 거친 손에서 건네 주는 것은 최상의 먹거리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싱싱하고 가장 청정한 먹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쁨이다.

죄판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착한 일 한 것 같다. 이런 기분은 마트에서 전혀 느낄 수 없다. 판매자는 팔아서 좋고 소비자는 팔아 주어서 좋다. 남에게 기쁨을 주면 나도 기쁘다.

 


오늘 산행길에서 9천원 썼다. 남자라고 못할 것 없다. 근대껍질 벗긴 것 큰봉다리로 2천원, 청양고추 한봉다리 2천원, 도토리묵 힌개 3천원, 호박잎 두 바구니 2천원 해서 모두 9천원이다. 한곳에 모아 보니 푸짐하다. 일주일 먹거리이다.

오늘 저녁은 근대된장국에다 호박잎쌈과 도토리묵 무침을 해 먹어야 겠다. 오늘 저녁은 제철에 난 것들로 풍요로운 밥상이 될 것 같다. 사회적 실천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기쁘다.


2021-09-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