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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 진흙속의연꽃 2011 II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5. 08:45

30권 진흙속의연꽃 2011 II

 

 

나의 2011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의 기억 속에 있을 수도 있고 타인의 기억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10년 전의 나의 모습을 블로그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시대구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상황에 대해서 정부로 시대구분을 한다면 너무 정치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어떤 정부시대에 살았는지로 구분한다면 엠비(MB)가 대통령 할 때이다.

 

엠비가 대통령 할 때는 좌절의 시기였다. 민주정부 10년이 단절되고 다시 옛날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따라 저항도 거셌다. 쇠고기 파동이라 하여 태평로는 해방구가 된 듯한 때도 있었다. 2011년의 경우는 어땠을까?

 

과거에 쓴 글을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 작업한 것은 2011년 7월 1일부터 9월 12일까지 40개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러 카테고리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일상에 대한 글이다.

 

글에서 엠비와 관련된 것이 있다. 이는 ‘MB정권은 탈레반인가, 새 도로명주소로 불교흔적지우기’(2011-07-14)라는 제목의 글이다. 엠비정권을 탈레반으로 비유했다. 이는 도로명주소 시행과 관련이 있다.

 

2011년 도로명주소가 시행될 때 불교계에서는 반대했다. 불교흔적 지우기라고 본 것이다. 이런 사실이 불교계 관련 신문사이트에서 보도되었는데 이에 자극받아 글을 썼다.

 

현재 도로명은 잘 시행되고 있다. 대부분 도로명 주소를 쓰고 있다. 불과 10년만에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도로명주소는 엠비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로명주소로 인하여 불교계는 많은 것을 잃었다. 불교용어 관련 마을이나 동(洞)이름이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생소한 도로명이 도입되었다.

 

엠비정권이 들어섰을 때 불교계의 반발이 심했다. 이른바 장로대통령이라 하여 어떤식으로든지 티를 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도로명주소를 시행함에 따라 불교를 연상시키는 동명을 삭제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교계신문에서는 탈레반에 비유했다. 이슬람근본주의가 위험하듯이 기독교근본주의도 매우 위험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도로명주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대하여 불교가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마치 탈레반이 바미안석불을 파괴했듯이, 엠비도 불교흔적지우기로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엠비는 현재 감옥에 있다.

 

2011년 7월부터 9월 중의 글은 매우 다양하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어떤 것이든지 기록했다. 나중에 열어 보았을 때 역사적 증언이 될 것이라는 심정으로도 기록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소위 ‘아쇼카선언’에 대한 것이다.

 

아쇼카선언을 처음 접한 것은 2011년 8월이다. 이때 느낌에 대하여 ‘21세기 아쇼카 선언을 보고’(2011-08-23)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글에서 아쇼카선언에 대하여 우려했다. 특히 열린진리관에 대하여 “진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비판했다. 엠비정권의 불교탄압에 겁먹어서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한 것이다.

 

불교인이라면 불교가 진리인 것을 확신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그들의 종교가 진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당시 아쇼카선언 초안자들은 열린진리관이라 하여 모든 종교의 진리는 근본에 있어서 같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선언은 이른바 종교다원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었다.

 

종교다원론자들은 진리는 하나라고 말한다. 이를 등산의 비유로 설명한다. 정상은 하나인데 올라 가는 길은 여럿이라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열린진리관은 결국 종교의 다양성 존중으로 연결된다.

 

2011년 불교계에서 추진했었던 아쇼카선언, 즉 종교평화선언은 불교계에서 주도하여 선언하려던 것이었다. 왜 이런 선언을 추진하려 했을까? 그것은 엠비정권과 관련있다. 장로대통령이 출현함에 따라 사회가 마치 기독교왕국처럼 되어 가고 있었고 또한 도로명 주소를 추진해서 불교흔적을 지우고자 했고,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불교탄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한다는 것이 종교평화선언, 소위 아쇼카선언으로 나타난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일부가 아쇼카선언에 반발했다.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런 선언문은 기독교에 항복하는 선언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다수는 침묵했다. 대부분 불자들은 이런 선언이 추진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블로그에다 아쇼카 선언에 반대하는 글을 수십 개 올렸다. 그때 당시에는 집과 사무실만 왕래하며 살던 시기였다. 불교 활동가로 활동한 것은 2015년 이후의 일이다. 오로지 필명 ‘진흙속의연꽃’이라는 이름으로 아쇼카선언 추진에 대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글로서 책으로 만들면 한권이 될 것이다. 그런 저항이 10년 전의 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쇼카선언 추진이 나온 시점에서 10년이 지났다. 결국 아쇼카선언은 선언되지 못했다.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때 당시 종정이었던 법전스님이 재가하지 않았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에서 야심차게 추진했었던 아쇼카선언, 즉 종교평화선언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모두 40개의 글로서 410여페이지에 달한다. 책의 제목은 ‘진흙속의연꽃 2011 II’로 정했다. 2011년 일상에 대한 글을 모은 두 번째 책임을 말한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의뢰 하여 책의 형태로 만들면 30번째 책이 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탁발승과 탁발정신

2. 컴퓨터사경(寫經)과 붓티즌(Budtizen)시대에

3. 조손(祖孫)가정의 아이와 같은 불자들

4. 바이블 지니는 것은

5. 평창동계올림픽유치성공

6. 포교대상과 불자대상 이대로 좋은가

7. 불교혼례식의 전형 스리랑카 포루와(Poruwa) 세레모니

8. MB정권은 탈레반인가, 새 도로명주소로 불교흔적지우기

9. 불교방송은 기복백화점

10. 세상 보기를 물거품같이

11. 신도가 아닌 수행자로 살기

12. 산중승(山中僧)이 생각하는 불교는

13. 깡통법당 이야기

14. 연꽃테마파크에서 문화체험

15. 연잎차와 연근차맛은

16. 한국불교 선현정(先顯正) 후파사(後破邪)를

17. 존재에서 두려움을, 브라흐마 바까(Baka) 이야기

18.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블로그 6주년을 맞아

19. 불자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 이제 조교(祖敎)에서 불교로

20. K팝처럼? 총무원의 사찰음식 대중화

21. 한국불교가 영향력이 없는 이유

22. 반야심경에서 초전법륜경으로

23. “그들은 우리와 종자가 달라요”재벌의 자만

24. 마음을 마음으로 관찰하며, 심념처와 객관명상

25. 연꽃 없는 부용지와 애련지, 비원의 추억과 창덕궁 후원

26. 21세기 아쇼카 선언을 보고

27. 도(道)는 세상속에, 세상속의 도인들

28. 나이브한 종교평화선언, 8.27범불교도대회 3주년을 맞아

29. 병주고 약주는 종교인들

30.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모든존재가 행복하기를

31. 불교와 기독교는 결국 같은 것? 21세기 아쇼카 선언

32. 담마에 의한 정복, 슬픔없는 아소까(Asoka)

33.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34. “여자 남자몰라요”종교인 성문제에 대하여

35. “언제까지 산속에만 계시렵니까?” 혜문스님 호소

36. 맛지마니까야를 구입하고

37. “주는 사람이 가장 예쁘다”톱에 대한 비유의 경

38. 윤회를 믿으면 자살하지 않는다

39. 종교다원주의에 먹힌 한국불교, 아쇼카선언의 초안자들

40. 지역불자회 부활을 꿈꾸며

 

30권 진흙속의연꽃 2011 II.pdf
5.71MB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나와서 이렇게 또 글을 쓴다. 10년전에도 이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창밖을 보니 스카이라인이 변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틀림없는 사실이다.

 

 

10년전에는 관악산이 보였다. 이제 고층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렇게 이미우이 음악을 듣고 매일 아침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다. 그때 써 놓은 글이 이제 시절인연이 되어 한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서문을 쓴다. 블로거로서 삶의 결실이다.

 

 

2021-09-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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