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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 담마의 거울 2010 II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7. 10:16

27권 담마의 거울 2010 II

 

 

오늘날 유튜브는 업경대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의 프로도 볼 수 있다. 그때 당시 흑백TV시절이었던 프로를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20대였던 사람들은 60대가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고인이 된 경우가 많다. 나의 과거는 어땠을까?

 

유행가중에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있다. 과거를 물었을 때 딱히 말해 줄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과거는 빛나는 것도 아니고 영광스러운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늘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것 같다. 물론 도중에 즐거움도 있고 행복도 있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 과거로 되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 몰라서 그렇게 산 것이다. 윤회가 있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부모를 잘못 만나면 초년에 고생할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서 잘 교육받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몰랐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생을 살다가 마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40대 중반에 불교를 만났다. 일생일대에 있어서 최대의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법(正法)만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불교를 접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법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불교라고 말하지만 무늬만 불교일 수 있다. 정법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부처님은 좋지 않은 시간의 경’(A8.29)에서 여덟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지옥에서 태어나는 것.

둘째, 축생으로 태어난 것.

셋째,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는 것.

넷째, 수명이 긴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

다섯째,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나는 것.

여섯째,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관점을 가지는 것.

일곱째, 지혜가 없어 둔하고 어리석은 것.

여덟째, 세존이 출현하지 않은 것.

 

지옥에서 태어나면 부처님 가르침을 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 괴로워 가르침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적절한 인간만이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나면 정법만나기가 힘들다. 아프리카나 남미 오지 소수민족의 무리로 태어났다면 정법과 인연이 멀다고 볼 수 있다.

 

정법시대라고 하지만 잘못된 견해를 고수한다면 정법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정법시대에 살고 있지만 영원주의나 허무주의적 견해를 가진 종교나 사상을 믿고 있다면 정법이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른 채 일생을 살아갈 것이다.

 

정법을 접했다고 할지라도 정법을 받아들일 지적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정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귀가 있어서 가르침을 듣지만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정법은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지옥, 축생, 아귀와 같은 악처에 떨어지면 설령 부처님이 출현해도 정법을 접할 수 없다. 그런데 천상에 태어나도 정법을 접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에서는 넷째, 수명이 긴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천상을 말하는 것일까?

 

천상의 수명은 길다. 인간의 백년은 가장 가까운 천상의 반나절도 되지 않는다.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천상에서 태어나도 가르침을 접할 수 없는 천상이 있다는 것이다. 색계천상의 경우 무상유정천이고, 무색계는 네 개 천상 전부가 해당된다.

 

무상유정천의 존재는 삶과 죽음이 거꾸로 되어 있는 듯하다. 인식하는 것을 괴로움으로 보아 인식을 혐오하는 수행을 한 결과 태어나는 천상을 말한다. 지각이 없는 천상의 존재라고 해서 아산냐삿따(assañña-satta)’라고 한다. 태어날 때 지각이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삶의 기간동안에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마치 식물인간처럼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존재에게 부처가 출현해도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무색계에 태어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없다. 왜 그런가? 무색계는 정신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질, 즉 몸이 없는 것이다. 몸이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청각기관이 없다. 부처가 출현해도 귀가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없다.

 

숫따니빠따 날라까의 경’(Sn.3.11)을 보면 아시타선인이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다. 선인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보살의 탄생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것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것일 수 있다.

 

아시타선인은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은 것을 보고 거침없이 울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하고 분한 것일 수 있다. 아시타선인은 무색계에 태어날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비상비비상처천에 태어난다면 무려 84천 대겁을 살아야 한다. 우주가 성주괴공을 84천번할 정도로 한량없이 오랜 기간이다. 그 사이에 부처가 출현한다고 해도 정법은 오래 가지 않고 사라져 버릴 것이다.

 

부처의 설법을 들어야 해탈과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태어나야 해탈과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중생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수명이 긴 세계에 태어나면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시타선인은 보살의 탄생을 보고서 울었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태어났을까? 태어나 보니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을 보니 불교가 있었던 것이다. 불교를 접하기로 했다. 당면한 괴로운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았다. 풀리지 않을 문제에 대한 해법이 분명히 불교에 있을 것 같았다.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초기불교를 접하고 이것이 불교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보고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대략 2009년도의 일이다. 그때부터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에 써 놓은 글을 정리하고 있다. 2010년 하반기때 쓴 글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간하게 될 책은 24번째 책이 된다. 편집을 해 보니 201010월부터 12월까지 모두 46개의 글로서 472페이지에 달한다. 모두 담마에 대한 글이다.

 

목차를 보니 스리랑카 아상가교수에 대한 글이 몇 개 눈에 띈다. 불교TV사이트에서 본 것을 녹취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오취온(五取蘊) 고통의 근원인 이유, 아상가교수의 사성제’(2010-08-04)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상가교수는 사성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아리야삿짜는 고귀한 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고통을 초월한 부처님과 아라한을 포함하여 고귀한 분들이 깨달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리야삿짜는 진리자체가 고귀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귀한 진리라 한다.

 

셋째, 아리야삿짜는 이 진리가 우리를 고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를 고귀한 자리로 올려 놓아 주기 때문이다.

 

 

사성제는 불교의 핵심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은 사성제로 요약된다. 그래서 법의 장군 사리뿟따 존자는 벗들이여, 움직이는 생물의 발자취는 어떠한 것이든 모두 코끼리의 발자취에 포섭되고 그 크기에서 그들 가운데 최상이듯, 벗들이여, 이와 같이 착하고 건전한 원리라면 어떠한 것이든 모두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포섭됩니다.”(M28)라고 했다.

 

사성제는 모든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으뜸이다. 그런데 사성제는 고귀한 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에 고귀한 진리일 수밖에 없고, 진리자체가 고귀하기 때문에 고귀한 진리일 수밖에 없고, 이 진리가 고귀하기 때문에 우리를 고귀한 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후자에 감명받았다. 고귀한 행위를 하면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여 실천하면 고귀한 자가 된다. 이는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어감을 말한다. 한번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아무리 못잡아도 완전한 열반을 성취하게 되어 있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 수다원이 되면 고귀한 자가 된다. 악처에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천상을 윤회하다가 완전한 열반에 들게 되어 있다. 세상에 이것만한 축복의 메시지가 있을까? 이 시대에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11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27권 담마의 거울 2010 II.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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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