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들기

하루하루 완전연소하는 삶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14. 16:52

하루하루 완전연소하는 삶을

 

 

한일상사에 인쇄와 제본 의뢰한 책을 찾아왔다. 세 종류의 책으로 각 종류당 두 질로 총 여섯 권이다. 모두 12만원 들었다. 한권에 2만원 꼴이다.

 

 

주문 제작한 책도 일종의 상품이다. 그런데 기존 책과는 달리 높이가 맞지 않는다. 기존 책보다 5미리가 낮은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번에는 꼭 높이를 맞추어 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다음 번에도 실수할 지 모른다. 대답을 받아 놓았기 때문에 다음번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수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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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나에게 집착이 생겨 난 것임을 알았다. 책의 수량이 많아짐에 따라 애착이 생겨난 것이다. 높이에 집착한 것을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높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판매하는 책이 아니라 보관용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소유에 대한 집착도 동시에 생겨난 것 같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국내성지순례에 대한 것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 사찰순례한 것을 세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24번째 책은 국내성지 순례 08-09 II’라는 제목으로 25개의 목차에 299페이지에 달한다. 25번째 책은 국내성지 순례 10-11 III’라는 제목으로 20개의 목차에 327페이지에 달한다. 26번째 책은 국내성지 순례 12-14 IV’라는 제목으로 21개의 목차에 509페이지에 달한다.

 

 

책은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개인문집 형태의 책으로서 두 질 밖에 만들지 않지만 책처럼 보여야 한다.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쓰는 이유이다.

 

세상에 단 두 질의 책을 만들고자 서문을 쓴다는 것이 낭비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책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책은 보관용이다. 블로그에 실려 있는 것을 책의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목차와 서문까지 썼으니 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판매하는 책은 아니다. 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피디에프(PDF) 파일을 메일로 보내 주는 것이다. 인연 있는 사람은 볼 것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좋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26권이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모두 만들면 130권 예상한다. 그러다 보니 출간순서대로 번호를 매길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24, 25, 26번째 책 부터는 책의 표지에 넘버를 넣어 달라고 했다. 기존 출간된 책은 숫자가 있는 투명 테이프를 사서 1번부터 23번까지 붙였다.

 

 

지금까지 모두 26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제 책장 한 칸 가득 되었다. 1번부터 26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책을 바라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해낸 것 같다. 이런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이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가를 찬탄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물론 질적으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양으로 따진 것이다.

 

책에 있는 내용은 그날그날 삶의 기록에 대한 것이다. 능력껏 아는 만큼 썼다. 세상에 내 놓아도 비난받지 않을 내용이다. 하나라도 건질 만한 것을 쓰고자 했다.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그날그날 글로서 자신을 태워 버리는 글쓰기를 하고자 했다. 완전연소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국내성지순례에 대한 글도 그렇다. 비록 나홀로 소장하는 책에 불과한 것이지만 겉으로 보아서는 유명작가의 책 수량을 능가한 것이다. 이것도 자만일 것이다.

 

책을 26권 내다보니 소유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고 동시에 자만이 생겨났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고, ‘내가 해냈다라는 자만이 생겨난 것이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바라보며 스스로 대견해하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것이다.

 

책장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트도 있고 개발품도 있다. 노트는 약 100권 가량 된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기록한 것을 말한다. 회사 다닐 때 업무노트가 대부분이다. 각종 강연이나 모임에서 보고 듣고 기록한 노트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두었다. 다음으로 개발품이 있다. 직장 다닐 때 20년동안 개발한 셋톱박스를 말한다. 개발한 것을 기념으로 모아 둔 것이다. 20개 정도 된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산 자는 죽으면 금방 잊혀 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 이렇게 장식장 가득 책과 노트와 개발품이 있어도 죽고 나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글은 오래간다. 인터넷의 바다에 띄워 놓으면 오래오래 사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사무실로 찾아오면 책장 가득 내가 쓴 책과 노트와 개발품을 보여줄 것이다. 탁자 바로 옆에 있어서 눈길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시선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라고.

 

소유하면 반드시 근심과 걱정이 따른다. 물질을 소유하면 늘 그 물질에 마음이 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에는 없네. 열네 마리의 황소가 없네. 오늘 엿새째 보이지 않으니 오! 바라문이여, 나는 행복하네.”(S7.10)라고 했다. 소유하는 것이 고통임을 말한다.

 

소유라 하여 물질적 소유만 있지 않다. 처자식을 가지는 것도 소유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에게는 없네. 한 아들이나 두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거느린 과부가 없으니 오! 바라문이여, 나는 행복하네.”(S7.10)라고 했다.

 

 

자신이 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소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쓴 노트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도 소유이다. 또한 자신이 개발한 개발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소유이다. 그러나 이런 소유는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으로 인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다만 경계하는 것은 자만심이다.

 

자만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내가 이렇게 이루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이다. 그럼에도 책장을 바라보면서 자만해 본다. ‘나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라고 자만해 본다. ‘하루하루 연소하는 삶을 살았다라고 또한 자만해 본다.

 

 

2021-07-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