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8. 07:4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공부에 왕도가 없다. 학문에도 왕도는 없다. 왕이라 하여 빨리 배울 수 없다. 깊이 생각하고 잘 이해하고 무엇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게송 외우기에도 왕도는 없다.

잠이 오지 않아 게송외우기를 시도했다. 새로운 게송 외우려면 이전에 외운 게송을 확인해야 한다. 이전 게송 외운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게송 외우기에 도전해야 한다.

가만 눈을 감고 이전 게송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말이라면 쉽게 떠올려질지 모른다. 한문도 쉽게 떠올려질 수 있다. 뜻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알리어는 다르다. 마치 영어단어 외는 것처럼 생소하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외워서 입에 붙어야 한다. 그럼에도 머리로 자꾸 기억해 내고자 했다.

언어는 이해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것을 넘어 습득해야 한다. 기억해야 함을 말한다. 자주 사용하다 보면 저절로 습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단시간에 습득하려면 외우는 방법밖에 없다. 게송 외우기에 왕도는 없다. 시간투자하는 것이 왕도일 것이다.

게송 외우기는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하는 것은 시간총량이 필요함을 말한다. 한두번 보아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입에 붙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입으로 뱉어야 한다. 입에 붙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달달 외워진다.

게송외우기는 쉽지 않다. 한 두개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 개 이상 외울 때는 힘을 필요로 한다. 강럭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의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대단한 노력이 없으면 이루어 낼 수 없다. 마치 고난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자학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단한 결심을 해야 경을 외울 수 있다.

경을 외울 때는 늘 긴장된다. 자신을 초긴장 상태로 내모는 것이다. 어제 외운 것을 확인하는 과정도 그렇고 새 게송을 외우는 것도 그렇다. 일부로 시간을 내서, 일부러 힘을 내서 애써 노력해야 한다. 아마 이런 것도 고행일 것이다.

대부분 안락하게 살고자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안락한 삶이라 볼 수 있다. 즐기는 삶도 안락한 삶이다. 먹는 것도 즐기는 삶이고 여행도 즐기는 삶이다. 수동적 것이 특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데는 열심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수동적 삶을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 삶이다. 애써 노력하려 하지 않는다. 산이 있는데 애써 올라가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올라 갔다가 내려올 것을 힘만 들게 애써 올라갑니까?"라는 식으로 말한다.

해외여행가면 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수없이 한다. 어떤 사람은 귀찮다고 앉아 있는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보인다. 매사 귀찮고 피곤한 사람이 있다. 스스로 애써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그러나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데 있어서는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일까? 부자를 들 수 있다.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 애써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개화기때 서양사람이 테니스치는 것을 보고서 이해하지 못한 양반을 들 수 있다. 가만 앉아서 감각적 욕망을 즐기려고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TV
를 보거나 인터넷에 빠지는 것도 수동적 삶이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매사 귀찮고 무기력해진다. 끊임없이 즐길거리를 찾아 오감을 동원해 보지만 그때뿐이다.

감각을 즐기는 삶은 수동적 삶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다. 이는 다름 아닌 게으른 삶이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니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며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 (Dhp21)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는 이미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 있다. 드러누워 버린다는 것이다. 하다가 안되면 누워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게으른 자는 "나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일을 해서 몸이 피곤하니 차라리 누워버리겠다.”(A8.80)라고 했다.

집에 있으면 게으른 자가 되기 쉽다. TV나 시청하면서 등 대고 누워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자라고 볼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감각을 즐기는 것뿐이다. 눈으로는 매혹적인 형상을 쫓고, 귀로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 입으로는 음식과 술을 즐길 것이다. 이런 나날이 되었을 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감각만을 즐기는 게으른 자가 되었을 때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다.

법구경에서 방일하지 않은 자는 죽지 않은 자라고 했다. 부지런한 자, 애써 노력하는 자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초기경전에서는세속적인 일을 즐기지 않는 것, 잡담을 즐기지 않는 것, 잠자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것, 감관의 문을 수호하는 것, 식사에 알맞은 양을 아는 것”(A7.28)이라고 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세속적인 일을 즐기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출세간적인 일을 즐기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오욕락을 즐기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 오온의 죽음과 함께 진짜 죽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출세간의 도를 지향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불사에 이를 것이다. 오온이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가 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Dhp.21)라고 한 것이다.

죽음의 길로 갈 것인가 불사의 길로 갈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부처님은 불사의 길로 가라고 했다.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불사의 길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즐기는 삶, 수동적 삶, 소극적 삶, 게으른 삶을 살아간다. 부처님 가르침과 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삶이다.

세상 살기가 쉽지 않다. 쉽게 살자고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애써 이룰 필요도 없다. 힘들게 수행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애써 게송이나 경을 외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은 모르는 것이 있다.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서 긴 길이의 게송이나 경을 외웠을 때 기쁨과 희열과 환희가 있다. 그 충만감은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마치 힘들게 산에 올라 정상에 섰을 때 쾌감 같은 것이다.

정상에 섰을 때 그 상쾌함은 등 대고 누워 TV시청하는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먹고 마시는 감각적 즐거움과 비할 바가 아니다. 긴 경을 다 외웠을 때 그 잔잔한 행복감과 충만함은 감각적 거친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즐거움이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외우서 입에 붙었을 때 내것이 된다.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게송외우기에 왕도는 없다. 정확하게 투자한 시간에 비례한다. 애써 외워 놓으면 내것이 된다. 배움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저승길에서는 노자돈이 된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게송외우기에도 왕도가 없다. 절대시간을 필요로 한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 외운다. 죽지 않기 위해 외운다. 게송 외울 때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1-09-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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