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내가 경을 암송하는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21. 9. 4. 07:33

내가 경을 암송하는 이유


법구경 외우기를 시작했다. 26 423게송을 모두 다 외운다는 보장은 없다. 1번 게송부터 32번 게송은 7년전에 외웠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외우면 금방 복원될 것이다.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번에 외울 것은 세 번째 품인 찟따왁가이다. 마음의 품이라고 한다. 모두 11개 게송으로 되어 있다. 어제 부터 외기 시작했다. 어제 33번 게송 외우는 것으로 시동걸었다.

게송 외우기는 어느 시간대가 적합할까? 과거 경험을 돌이켜 보면 새벽시간대가 가장 좋다. 잠에서 막 깨면 방해받는 것이 없다. 마치 흙탕물이 정화된 듯하다. 이때 어제 슬쩍 보았던 문구를 떠올린다. 맛보기로 빠알리 사전을 열어 보았던 문구를 말한다. 영어로 풀이된 것인데 빠알리와 영어를 동시에 떠올린다.

새벽에는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 중에는 붙들고 싶은 것도 있다. 새벽에 스마트폰 메모앱에 자판을 엄지로 치는 이유에 해당된다. 이렇게 치다 보면 아침 6시가 된다. 게송외우기를 하면 일어난 생각을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도 할 수 있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어제 보아 두었던 33번 게송을 떠 올렸다. 기억이 희미하다. 단어를 백번가량 읽어야 외워진다. 몇 번 보아서는 생각나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다시 떠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백번된다.

새벽은 명경지수와도 같다. 바닥의 자갈이 보일정도로 맑은 물과 같은 정신상태가 된다. 이럴 때 어제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기억에 떠오른다. 어제 슬쩍 보았던 게송도 어슴프레 떠오른다.

계속 기억을 되살린다. 속된말로 아리까리하지만 대충 얼개는 잡힌다. 이럴때는 원문을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는가?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블로그에 저장해 두었다. 스마트폰을 열면 나오게 해 놓았다.


“Phandana
capala citta,
d
ūrakkha dunnivāraya;
Uju
karoti medhāvī,
usuk
ārova tejana.”(Dhp.33)



이것이 오늘 외워야할 게송이다. 네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사구게라고 한다. 이 게송을 이렇게 빠알리어 원문으로 외워야 한다.

빠알리어는 부처님 당시 민중들이 사용한 언어이다. 부처님은 민중어인 마가다어로 설법했다. 빠알리어는 마가다어 계통으로 인도 서북지방, 웃자인 지방의 지방어이다. 아소까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가 그곳에서 태어 났는데 빠알리 삼장을 스리랑카에 전수해 주었다.

 


빠알리어는 문자가 없다. 말만 있는 언어이다. 문자가 없어서 스리랑카 문자로 음역되어서 전승되어 왔다. 미얀마에서는 미얀마 문자로 음역되었다. 소리나는 대로 자국문자로 적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빠알리어는 알파벳으로 적은 것이다. 알파벳 문자로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마치 영어처럼 보이지만 글자만 보아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음성을 그대로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빠알리 게송을 외우기 위해서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로마자로 된 빠알리 원문과 우리말 음역과 그리고 우리말로 뜻풀이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삼박자가 갖추어졌을 때 외우는 것에 도전한다.

가장 기본은 로마자로 된 빠알리 원문을 마치 사진 찍은 것처럼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다. 자주 보면 글자 이미지가 저장된다. 금강경 외울 때도 그랬다. 한자 이미지가 마치 사진 찍은 것처럼 저장되었다.

사진을 찍어 놓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빠알리 게송 원문을 자주 보면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것과 함께 우리말 음역과 우리말 뜻도 알아야 한다.

로마자로 음역된 빠알리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다. 소리나는 대로 적어 보면 판다당 짜빨랑 찟땅 두락캉 둔니와라양 우중 까로띠 메다위 우수까로와 떼자낭이 된다. 이 말은 의미가 없다. 단지 부처님 당시 민중어를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본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려운 마음을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잡는다.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Dhp.33)


지금까지 수많은 경을 외웠다. 모두 원문으로 외웠다. 나는 왜 경을 외우는가? 마음을 잡기 위해 외우는 것이 크다. 마음이 해이해졌을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외운다. 다음으로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외운다. 남들이 외운다길레 외는 것도 있다.

2004
년 불교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입문했다. 전반기때 입문교육을 받고 하반기때는 금강경을 배웠다. 그때 도반들과 대화하다가 들은 것이 있다. 금강경을 외운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도전해 보았다.

 

금강경을 하루에 한분씩 외면 계산상으로 32일 걸린다. 그러나 한달 보름 걸렸다. 이는 2004119일부터 외기 시작하여 1215일까지 46일 걸렸다. 금강경 사경한 것을 외운 것이다. 사경한 것이 마치 사진처럼 박혔다.

 

 

금강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5,249자를 모두 다 외웠을 때 감격했다. 마치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 기분을 2년 후에 능인선원과의 인연 15 – 금강경 외우기’(2006-10-25)라는 제목으로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이후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외웠다. 매일 시간 날 때 마다 외웠다. 암송할 때마다 시간은 점점 단축되었다. 그래도 20분 이하는 내려가지 않았다. 금강경을 외운 것이 이후 경외우기에 도움을 주었다.

천수경도 외웠다. 천수경에서 난관은 신묘장구대다라니였다. 뜻을 모른 채 외웠다. 뜻을 알면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문의 경우 뜻을 알기 때문에 외우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뜻도 모른 채 생짜배기, 우격다짐, 어거지로 외다 보니 무척 힘들었다. 어거지로 외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나중에 빠알리어 경을 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빠알리어로 된 라따나경, 멧따경, 망갈라경, 자야망갈라가타, 초전법륜경, 팔정도경, 법구경 1품과 2품은 뜻을 알고 외웠다. 빠알리 사전을 찾아 가며 단어 하나하나 의미를 분석했다. 이렇게 뜻을 알고 외우니 신심도 나고 외우는 맛도 났다. 이제 법구경 제3품 찟따왁가 외우기에 도전한다. 

경을 외울 때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다음 게송을 외울 때는 반드시 이전 게송 외운 것을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외면 마지막 게송 외웠을 때 모두 다 외우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잊지 않기 위해서 외운다.

경을 암송하는 재미가 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외우기에 도전하여 모두 다 외웠을 때 그 기쁨과 희열과 충만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기쁨과 희열과 충만은 경을 암송할 때마다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들었으면 말해야 한다. 읽고 쓰고 말하기는 기본이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암송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는 단계로 진행되어야 함을 말한다. 모든 학문은 일단 외는 것부터 시작된다.

꼭 기억해 두고 싶은 말은 기억해야 한다. 책에서 본 감동적인 문구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시나 성현의 말씀도 기억해 두면 좋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읽어서 머리 속에 저장해 놓아야 한다.

머리 속에 저장해 놓으면 책을 열어 볼 필요가 없다. 컴퓨터보다 더 빠른속도로 즉각 가져올 수 있다. 경이나 게송도 그렇다. 그런데 암송의 최대 이점은 충만감이다. 긴 경을 다 암송하고 났을 때 그 충만감은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다. 이런 맛에 경을 암송한다.


2021-09-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