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댓글로 저격당하고 모욕받았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0. 2. 07:38

댓글로 저격당하고 모욕받았을 때

 

 

새벽 보이차 맛이 좋다. 더부룩한 속이 내려 가는 것 같다. 한모금 마셨을 뿐인데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난다. 마치 모든 노폐물을 씻어 가는 듯하다. 마음의 찌꺼기도 내려 가는 듯하다.

 

새벽에 꿀물도 좋다. 단맛에 속이 부드럽다. 그러나 보이차처럼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보이차를 마시면 마치 화장실 변기 물내려 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난다. 속이 더부룩할 때 즉효약이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맹물 보다는 맛이 있어서 마시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탄산음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차가 나의 몸에 영향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즉각적이다.

 

 

음식은 몸에 영향을 준다. 한끼 잘 먹으면 삶에 활력이 솟는다. 마치 세포가 깨어 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된장을 먹으면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고추장보다 된장을 먹는다. 쌈을 싸먹어도 된장쌈 해서 먹는다.

 

차나 먹거리만 몸에 영향을 줄까? 그렇지 않다. 말도 영향을 준다. 생각도 영향을 준다. 몸이 정신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신, 구, 의 세 가지는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

 

말은 언어이다. 문자도 언어이다. 말이 생각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신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며칠전 그런 경험을 했다.

며칠전 페이스북에 이재명 찬탄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 글이 누군가에는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격렬하게 반응했다. 저주의 말로 가득했다. 서두는 "존경하는"이라는 말로 치켜 올렸지만 말미에는 후회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곧 끝장날 것이라는 말이다. 큰 것이 터질 것이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취지로 댓글을 달아 놓았다.

 

그 사람의 댓글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견해가 달랐을 때 이토록 적대감을 표출할 줄 몰랐다. 불교관련 글이나 쓸 것이지 정치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십 안팍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 사람에게 이런 댓글을 받자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진영이 나뉘어져 있다. 선거철만 되면 첨예하게 대립된다. 이런 이유로 가능하면 정치이야기를 쓰려 하지 않는다. 한쪽 편을 들면 다른 한쪽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고객관리한다면 절대 정치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반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지역이야기 해서도 안된다. 지역감정 이야기를 하면 자살골 넣는 것과 같다. 여자 이야기를 해서도 안된다. 이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살다보면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도 있다. 정치이야기, 지역이야기, 여자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해 보았자 본전도 건지지 못한다. 특히 고객관리하는 사람이라면 피해야 한다.

 

나이 사십되는 젊은 사람의 댓글에 충격먹었다. 마치 겁박하는 듯한 글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정말 그들의 의도대로 낙마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의롭지 않은 기득권 층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국사태에서 여실히 보았다. 그 사람 말대로 이재명도 그들의 덫에 걸려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오자 약간 공황상태에 빠졌다.

 

댓글을 보고 충격 받았다. 언어가 사람의 정신과 신체에 영향을 준 것이다. 신, 구, 의 삼업에서 언어적 행위가 정신에 타격을 가하고 동시에 신체에도 타격을 가한 것이다. 마치 차를 마시면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주듯이, 댓글이 나의 정신과 신체를 타격한 것이다.

 

댓글을 접하자 몸을 부들부들 떨다시피 했다. 저들의 음모에 대해 떨렸다. 과거 행태를 보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집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치욕으로 떨었다. 나보다 나이가 이십년 이상 젊은 자가 싸가지없게 군 것에 분노한 것이다. 댓글을 지우고 차단조치 했다.

 

기능하면 솔직한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이미지 포장하는 글쓰기는 지양한다. 잘 보이게 해서 얻는 이득이 없다. 돈 벌려고 글 쓰기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강하게 개성을 드러낸다. 정치이야기가 그렇다.

 

글을 쓸 때는 불리한 것도 쓴다. 단점도 쓰고 고쳐야할 점도 쓴다. 때로 내적 고민도 쓴다. 그제 쓴 글이 하나 있다. 새벽에 쓴 글이다. 새벽에는 스마트폰 메모앱에서 쓴다. 엄지로 자판을 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짧고 간결한 글을 쓴다. 정신이 맑은 상태이기 때문에 내적 고민도 털어 놓는다.

 

귀인에 대한 글을 썼다. 일인사업을 하는 자영업자의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대단히 솔직하게 쓴 글이다. 마이너스통장 건은 숨기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공개한 것은 솔직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리한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공유한 것은 좀더 진실에 접근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절친이라도 말 못할 비밀은 털어 놓지 못한다. 절친이라면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 왜 그런가? 비밀을 지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은 아무에게나 털어 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말 못할 비밀은 있기 마련이다.

 

생업과 관련된 글은 비밀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털어 놓는 것은 솔직한 것이다. 마이너스통장 이야기도 이에 해당된다. 공감하는 댓글도 많았다. 아마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사업하다 보면 주거래통장이 있기 마련이다. 입출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통장이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 할수록 빗쟁이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업하는 상당수 사람들은 마이너스통장 상태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천수답처럼 고객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고객은 귀인과 같다. 그런데 어느 페이스북친구가 오해를 한 것 같다. 그는 댓글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만원씩 자동이체해서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글이 암시하는 것으로 비추어진 것 같다.

 

청정도론 계청정에 대한 항목을 보면 암시에 대한 것이 있다. 탁발자가 재가자 집에서 물건에 관심을 보이면 이를 암시로 본다는 것이다. 글은 도움을 청하는 암시의 글이 아니었다. 솔직한 글쓰기를 하다보니 암시로 비추어졌던 것 같다.

 

만원후원에 대한 댓글을 보고 굴욕을 느꼈다. 암시하는 듯한 글을 쓰지 말라는 경고의 메세지였을까? 댓글은 지웠다. 글은 나만 볼 수 있는 모드로 전환했다.

 

너무 솔직해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면 반대편에서는 반발한다. 근황에 대해서 털어 놓으면 마치 보시를 유도하는 암시로 보는 것 같다. 이것 빼고 저것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 자신을 과시하는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차 한자에 속이 편해졌다. 차가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주듯이, 말과 글도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준다. 신체와 언어와 정신은 서로 맞물려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정치관련 댓글에 분개했다. 마이너스통장관련 댓글에 모욕을 느꼈다. 언어가 정신에 타격을 준 것이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면 신체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신, 구, 의 삼업에 대한 가르침이 많다. 오로지 불교에서만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이 우리 몸과 마음을 잘 파악했음을 말한다. 여기에 언어를 추가했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행위를 할 때 항상 세 가지를 강조했다.

 

크게 세 가지 행위가 있다.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를 말한다. 부처님은 이 세 가지 행위를 청정하게 하라고 했다. 이른바 삼업청정을 말한다. 이는 십선행으로 나타난다.

 

십선행에서 신체적 행위에 대한 것으로 살생, 도둑질, 음행에 대한 것이 있다. 언어적 행위에 대한 것은 거짓말, 이간질, 욕지거리, 꾸며대는 말이다. 정신적 행위에 대한 것은 탐욕, 분노, 사견이다. 대단히 분석적이다. 놀랍게도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가 정신과 신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알기 쉽다. 댓글을 보고 반응 보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체가 정신에 영향 주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울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음이 우울할 때 걸으면 벗어날 수 있다. 명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명상을 하면 정신이 고양된다.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번뇌는 사라진다. 이때 호흡은 신체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신체적 행위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사례에 해당된다.

 

세 가지 행위가 있다.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해로울까? 이는 초기경전에서 “악한 행위를 짓고 악한 행위를 행함에 있어서 신체적 행위이나 언어적 행위나 정신적 행위 가운데 어떠한 것이 가장 비난할 만한 것이라고 말합니까?”(M56)라고 묻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따빠씬이여, 이와 같이 구분되고 이와 같이 구별되는 세 가지 행위 가운데 나는 악한 행위를 짓고 악한 행위를 행함에 있어서 신체적 행위이나 언어적 행위가 아니라 정신적 행위가 가장 비난할 만한 것이라고 말합니다.”(M56)

 

부처님은 정신적 행위가 가장 나쁘다고 했다. 신체적 행위나 언어적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정신적 의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살인하려 할 때 어떤 마음이 일어날까? 아마 “저새끼 죽여버려야 겠어.”라며 정신적 의도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댓글로 타격을 주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견해에 기인한다.

 

잘못된 견해(사견)는 정신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나는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것처럼 커다란 죄악이 되는 다른 하나의 원리를 보지 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면 커다란 죄악이다.”(A1.338) 라고 말씀하셨다. 신체적 악행, 언어적 악행, 정신적 악행 중에서 최악은 정신적 악행임을 말한다.

 

오늘 새벽 보이차를 마시면서 또다시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에게 외면 받기 쉽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쓰게 된다.

 

글을 쓸 때는 걸림없이 쓰고자 한다. 또 솔직하게 쓰고자 한다. 글로 인하여 이득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정치이야기를 썼더니 저격 받았다. 당분간 정치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마이너스통장 이야기를 했더니 모욕 받았다. 당분간 솔직한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신, 구, 의 삼업은 서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가장 나쁜 것은 의업이다. 나는 의업에서 자유로운가?

 

 

2021-10-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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