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지금 이순간 저 세상으로 간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0. 4. 07:04

지금 이순간 저 세상으로 간다면

 


새벽이다. 눈을 뜨니 3시 반이다.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나운 꿈만 꿀뿐이다. 차라리 앉아 있는 것이 낫다.

앉아서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있다 보면 시간만 지나 간다.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게송을 암송하는 것이다. 최근 외웠던 법구경 마음의 품 열한 게송을 빠알리어로 암송했다. 경전을 보지 않고 머리에서 꺼냈을 때 내것이 된 것 같다.

 


차를 마신다. 보이차를 마시니 속이 짜르르하다. 목구멍에서 부터 부글부글한다. 보이차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치 수채구멍에서 찌꺼기가 내려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런 맛에 보이차를 마시는지 모른다.

새벽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애써 해보려 하기 보다는 고요함을 즐긴다. 아침 6시까지는 내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내시간 아닌 시간 없지만 특히 새벽시간은 내시간이다. 글쓰는 시간이다. 엄지가는 대로 치는 거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다 보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홀로 있을 때는 지위도 명예도 필요없다. 당연히 재산도 필요없다. 여럿 있을 때는 이딴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홀로 있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머리 속에서 꺼집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기억을 말한다. 이를 지혜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지식을 내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책을 예로 들 수 있다.

책을 본다고 말한다. 보는 것에 그친다면 내것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을 다시 열어 보고자 한다면 내것이 아니다. 책 어느 곳에 무엇이 있는 것을 아는 정도도 큰 것이다. 그러나 책을 열어서 확인하고자 했을 때 내것이라 할 수 없다.

어떤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네이버에 있다."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만 집어 넣으면 왠만한 것은 다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인터넷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가 작동 되지 않을 때 기사를 부른다. 인터넷이 접속되지 않았을 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세상과 네트워크가 끊어 졌을 때 무인도에 고립된 것과 같다. 홀로 되었을 때 할 줄 아는 것이 무엇 있을까?

새벽은 홀로 있는 시간이다. 일부로 책도 읽지 않고 스마트폰도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이렇게 글 쓰는 용도로 활용된다. 아무것도 도움 받지 않고 이렇게 엄지만 움직여 썼을 때 진정한 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칠 때는 속도가 난다. 치다가 막히면 뒤 돌아 경전을 열어 본다. 수시로 검색도 해 본다. 단순히 자신의 머리에만 의존하는 새벽글쓰기와 다르다. 남이 생각해 놓은 것을 반영해 놓은 글쓰기가 된다. 그럼에도 자신의 글쓰기라고 말한다. 일곱 단어가 연속으로 있지 않으면 표절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글쓰기는 진검승부하는 것 같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을 쓰기 때문이다. 가장 애로 사항은 경전을 인용하는 것이다. 경전이 바로 옆에 없기 때문에 열어 볼 수 없다. 이런 경우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다. 과거 써 놓은 글을 참조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표절한다. 남의 글을 표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글을 표절하는 것이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이기 때문에 블로그에 올려진 수많은 글에는 경전문구가 실려 있다. 애써 찾아서 인용한 것이다. 한구절 찾기 위해서 들인 노고가 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인용할 때는 블로그 안에 있는 검색창을 활용한다.

나의 앎은 한계가 있다. 새벽에 홀로 있는 것처럼 고립되어 있다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지만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열어 볼 수도 없고 검색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과 같은 상황이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가져갈 것은 무었일까? 재산을 가져갈 수 없다. 천문학적 재산이 있어도 죽음의 길로 가는 자에게 있어서는 무용지물이다. 지위는 어떨까? 최고권력자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이순간 저 세상으로 간다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재산, 지위, 명예, 칭송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져 갈까? 그것은 행위만 가져 간다. 재산형성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 편법을 동원 했다면 그 행위만 가져 가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을 짓밟았다면 역시 그 행위만을 가져 가게 된다.

부처님 제자로서 업과 업의 과보를 믿는다. 당연히 저 세상도 있다고 믿는다. 저 세상에 갈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경전을 근거로 해서 글쓰기 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일곱 가지 고귀한 재물을 가져 간다. 이런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재물이 있다.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지혜의 재물이 있다.”(A7.6)

재물이라 하여 물질적 재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재물도 있다는 것이다. 돈이나 금과 같은 것만 재물이 아니라 "믿음의 재물(saddhādhanaṃ), 계행의 재물(sīladhanaṃ),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hiri ottappiyaṃ dhanaṃ), 배움의 재물(sutadhanaṃ), 보시의 재물(cāgadhanaṃ), 지혜의 재물(paññādhanaṃ)"도 있음을 말한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진다.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밤까지만 사는 사람에게 재산이나 지위, 명예, 권력, 칭송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을 쟁취하기 위한 행위를 가져 간다.

저 세상에 갈 때 행위만 가져 간다. 가능하면 선업을 가져 가야 할 것이다. 이를 믿음 등 일곱 가지 재물이라고 한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파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일곱 가지 재물이야 말로 진정한 내것이 된다.

가진 것이 별로 없다. 지위도 없고 명예도 칭송도 없다. 그러나 마음 만큼은 부자이다. 십년 이상 매일매일 글을 쓴 것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이것도 무형의 재물이 될 수 있을까?

"지혜가 있는 자라면
재산을 잃어도 산다.
지혜를 얻지 못하면,
재산이 있어도 살지 못한다.” (Thag.499)

2021-10-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