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알아차림과 함께 성찰하는 삶을, 담마와나선원 가사공양의 날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7. 06:56

알아차림보다 성찰하는 삶을, 담마와나선원 가사공양의 날에

 


갈까말까 망설였다. 테라와다불교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까티나 축제 참여에 대한 것이다. 이상했다. 축제를 앞두고 홍보가 있어야 하나 하루 전에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단톡방에 문의하니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조용한 축제를 예상했다. 엄중한 코로나시기에 방역수칙을 어기면 안되기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올해는 쉬어 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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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확실히 까티나 행사가 있다고 했다. 스님도 세 분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스님 중에는 빤냐완따 스님도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런 소식을 듣고 마음이 동요했다.

시간이 갈수록 참석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엄중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1년에 한번 있는 행사이다. 선원 봉사자도 만나고 수계동기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점점 참석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빤냐완따 스님이 온다고 해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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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로 방역지침이 대폭 완화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모임에 큰 제약이 없다. 위드코로나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선원에서는 대단히 경계하는 것 같다. 까티나축제가 불교 최대 행사임에도 공식적인 계획을 잡지 않은 것이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모여서 약식으로 행사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동의하여 진행된 것 같다.

2021
11 6일 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와나선원의 까티나축제는 비공식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는 선원장 스님이 "계획에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날 초청된 한국테라와다불교 이사장 빤냐완따 스님도 "행사 못할줄 알았는데."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2021년 까티나축제는 열렸다. 회장 법우님을 비롯한 선원 봉사자들은 가사와 물품 등 공양보시물을 준비했다. 세 분의 스님이 초대되었다. 평소같으면 교단의 여러명의 스님이 초대되었을 것이다. 오전 법문도 있었을 것이다. 엄중한 시기에 하는 듯 마는 듯,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까티나 축제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꽃을 준비했다. 그러고보니 세 번째이다. 장미꽃 세 송이를 준비한 것이다. 불단에 꽃공양 올릴 것이다. 세 송이는 불, , 승 삼보를 상징한다. 이렇게 세 번 꽃공양 올리니 이미지가 생겨난 것 같다. 꽃공양 잘 하기로 소문난 듯하다. 무엇이든지 연속으로 세 번 하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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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점심공양을 했다. 스님 세 분 상을 차려 주었다. 상차림 할 때 작은 행사가 있다. 봉사자들이 상을 들어서 바치는 행사를 말한다. 테라와다불교 스님들은 주지 않는 것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한다. 미얀마 선원에서도 똑같다. 아마 미얀마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교단 스님들 대부분 미얀마에서 계를 받고 수행했기 때문에 미얀마 불교 전통이 그대로 전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가사공양 행사가 있었다. 미리 준비한 가사를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행사를 말한다. 좋아하는 스님에게 보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까티나 행사 때 가사공양하는 것은 승가에 공양하는 것이 된다. 승가에서 취합하여 참석하지 못한스님에게도 스님에게도 나누어 준다. 가사공양은 승가에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하면 법문이 있기 마련이다. 빤냐완따 스님 법문이 있었다. 가사공양이므로 가사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네 가지 필수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먹는 것, 입을 것, 거처, 그리고 필수의약품에 대한 것이다.

사대필수품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스님에 따르면 거처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먹는 것이 될 것이다.

스님은 먹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법문했다. 이에 대하여 펑션(function)과 포메이션(formation)으로 설명했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기능과 형식이 된다.

수행자의 사대필수품은 펑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대필수품이 포메이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먹는 것과 관련해서 설명했다.

스님들은 탁발로 살아간다. 때로 청식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에서나 펑션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가 고플 때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즐기기 위해서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수행자가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면 이는 포메이션에 해당된다. 세속사람들이 하는 방식이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음식을 배가 고파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먹고, 살찌기 위해서 먹고, 몸매를 위해서 먹는다고 했다. 이는 음식을 포메이션, 즉 형식으로 먹는 것이다.

수행자라면 음식을 펑션, 즉 기능으로 먹어야 한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스님은 빠알리 공양게를 이야기했다. 들어 보니 경전에 있는 것이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라고 이치에 맞게 성찰해서 음식을 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안다.” (S35.239)

부처님은 음식을 상처에 연고 바르듯 먹고 수레바퀴에 기름칠하듯 먹으라고 했다. 이것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음식에 대한 펑션, 즉 기능이다. 그럼에도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 먹는다면 포메이션, 즉 형식이 될 것이다.

음식을 대할 때는 포메이션이 아니라 펑션으로 대해야 한다. 배고픔을 해소하면 그만이다. 이런 태도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거처도 펑션으로 보아야지 포메이션으로 보면 럭셔리해질 것이다. 옷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옷의 기능은 무엇일까? 신체를 가리는 것이 기능일 것이다. 나머지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의, , 주 모두가 기능은 30%가량 밖에 안되고 형식이 70%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시실이다. 그렇다면 수행자의 옷은 어떠할까?

수행자의 옷을 가사라고 한다. 가사는 펑션만 있고 포메이션은 없다. 오로지 입는 기능만 있을 뿐 멋을 내거나 장식하는 형식이 없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가사에 대하여 빤냐완따 스님은 시를 지은 바 있다. 오늘 가사공양의 날을 맞이하여 스님은 자신이 지은 시 '가사'를 낭송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스님들이 입는 옷을 가사라고 부른다.
괴색으로 염색된 천 한장.
그 사각천이 스님 손 끝에 닿는 순간
천은 마술처럼 옷으로 변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옷이지만
가장 완벽하게 몸을 감싼다.

등 뒤로 접었다가 잎으로 한번 접고
돌돌 말아서 뒤로 다시 넘기면
7
초 만에 평복이 되고
30
초 만에 외출복이 된다.

풀벌레 우는 가을밤
때로는 이불이 되고
접어서 돌돌 말면 베개가 되고
나뭇가지에 걸어두면 바람막이가 되기도 한다.

가사는
부처님께서 친히 정해주신 옷이다.
대자대비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깃들어 있고
생사해탈을 향한 출가자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가사는 세상에서 가장 검소한 옷이다.
세속의 화려한 옷 벗어놓고 출가하던날
출가수행자로서 처음 입는 옷이다.

가사에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노모의 슬픔이 서려 있고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들이 담겨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의 축원도
천조각 조각마다 꿰메어져 있다.

가사는
주머니가 없는 옷이다.
무늬도 없고 장식도 없는
출가수행자로서 처음 입었던 옷이고
세상과의 모든 인연 끝나는 날 마지막 입는 옷이다."
(
가사, 빤냐완따 스님)


가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검소한 옷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일까? 주머니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겉옷은 주머니가 있다. 그러나 가사는 네모난 커다란 천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머니가 없다. 돈을 주어도 받을 수 없고 물건을 주어도 넣을 수 없다. 오로지 몸을 감는 기능 하나 밖에 없다.

가사는 옷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다. 주머니가 없어서 형식이 없다. 가사는 펑션만 있을 뿐 포메이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검소한 옷이라고 했다.

기능인가 형식인가? 오늘 가사공양양의 날에 빠냐완따 스님이 물은 것이다. 음식을 본래 기능인 배고픔의 해소로 먹지 않고 즐기기 위해 먹거나 몸보신하기 위해 먹거나 몸매를 위해서 먹는다면 형식으로 먹는 것이 된다. 수행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옷을 본래 기능인 신체 가림으로 입는 것이 아니라 과시를 위해서 입는 다면 형식으로 입는 것이 된다. 역시 수행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식인이 아닌 기능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빤냐완따 스님은 성찰을 강조했다. 그것도 순간순간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왜 성찰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는 팔정도의 삶과 관련이 있다. 스님은 늘 팔정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오늘 법문에서는 팔정도 중에서도 삼마상깝뽀(정사유)와 삼마와야모(정정진)에 대해서 설명했다.

스님은 사띠와 삼빠자나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분명한 앎을 뜻하는 삼빠자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띠와 삼빠자나에 팔정도를 더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팔정도의 삶은 성찰과 관련이 있다.

알아차림과 성찰은 어떻게 다를까? 알아차림은 한정적이다. 예를 들어 가사를 입을 때 알아차림 한다고 말한다. 가사를 입을 때 성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사를 입는 목적을 생각하면 성찰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시에서와 같이 "생사해탈을 향한 출가자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 알아차림 하며 먹으라고 한다. 입에 넣을 때 "넣음, 넣음"이라고 알아차리고, 씹을 때는 "씹음, 씹음"이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은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음식을 포메이션이 아니라 기능으로 먹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이치에 맞게 성찰해서 음식을 취한다."(S35.239)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목적을 성찰하라는 것이다.

빤냐완따 스님은 팔정도경 전도사 같다. 늘 팔정도경을 강조한다. 항상 팔정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알아차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알아차림 하는 것보다 성찰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오늘 가사공양의 날을 맞이하여 사대필수품에 대하여 펑션과 포메이션으로 설명한 것이 좋은 예라고 본다.

 


스님의 권유로 팔정도경을 빠알리어로 외운 바 있다. 그런 팔정도는 꾸살라에 대한 것이다.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말한다. 십선행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십선행은 팔정도로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순간순간 성찰을 필요로 한다.

순간순간 알아차림 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순간순간 성찰하는 삶이다. 본래 기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본질에서 벗어날 때 강한 성찰이 일어나야 한다. 바른 생각과 바른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가사공양의 날에 법문을 듣고 성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빤냐완따 스님 법문에 만족한다. 들으면 남는 것 같다. 그것은 법문을 준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참석하기를 잘 했다. 팔정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오늘 까티나축제, 가사공양의 날을 맞이하여 선원에 갔다. 코로나로 인한 엄중한 시기에 계획에 없는 행사가 열렸다. 재가불자들은 가사공양을 하고 스님은 법문을 해 주었다. 한시간 동안 법문한 것을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후기를 남긴다.


2021-1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