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늘 하루만큼은 스님처럼
오늘은 담마와나선원 가는 날이다. 4월 16일(토)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선원으로 향했다. 네비 목적지는 청파동 주민센터 지하주차장이다.
선원은 3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주차장이 없다.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선원이기도한 담마와나 선원은 작은 선원이다. 고래등과 같은 대찰의 이미지는 상상할 수 없다. 태국이나 미얀마의 황금빛 파고다도 상상할 수 없다. 주택가에 있는 몇 평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선원이다.
포살법회는 오전 10시에 예정되어 있다. 일찍 출발했으므로 일찍 도착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꽃을 사는 것이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공양 올릴 장미 세 송이를 샀다. 여러차례 사서일까 꽃집 아가씨가 얼굴을 알아본다. 만8천원 들었다.
다음으로 빵을 샀다. 선원 바로 옆에 빵집이 있다. 커다란 곡물 빵덩어리를 세 개 샀다. 만7천원 들었다.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점심공양 때 먹을 빵이다. 보시금은 계좌이체 해 놓았다. 능력껏 한 것이다.
선원에 빈 손으로 갈 수 없다. 먹을 것도 좋고 생필품도 좋다. 보시금도 좋다. 공양시간에 공양 올리면 된다.
수계동기 중의 한 도반이 커다란 선물 세 개와 봉투를 준비해서 정성스럽게 스님들에게 공양 올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그림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오늘 포살법회 날에 빤냐와로 스님이 왔다. 멀리 울주에서 온 것이다. 지난 겨울 동안거를 태국에서 지냈는데 안거가 끝나자 귀국했다. 그로부터 6주가 지난 후에 서울에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코로나를 겪었다.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다. 법문도 평소와 달리 힘이 있어 보인다.
오늘 포살법회에 스님은 세 분 참석했다. 네 분 예상했으나 한분이 빠진 것이다. 재가불자는 23명 참석했다. 평소보다 많이 온 것 같다. 아마 빤냐와로 스님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온 목적이 큰 것 같다. 스님에게 점검 받고자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낯 익은 얼굴들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니 친구 보는 것처럼 반갑다. 그러고 보면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법회만 참석하고 집에 가기 바쁘다면 도반이 되기 힘들다. 카페에서 차담이라도 하고 나면 훨씬 더 친밀해진다.
법회와 같은 공식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차담과 같은 비공식적 활동도 공식적 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수계동기 모임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차담과 같은 비공식적 활동을 통해서 우의를 돈독히 해야 한다.
포살법회는 일반법회와는 다르다. 일반법회에서는 오계를 받아 지니지만 포살법회에서는 팔계를 받아 지닌다. 오계와 팔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네 가지가 눈에 띈다.
팔계에서 세 번째 항목은 불사음계에 대한 것이다. 이는 "아브라흐마짜리야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니"라고 해서 "모든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가 된다. 사실상 출가자의 불사음계와 동일한 것이다. 여기서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는 범행(梵行)을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청정한 삶을 의미한다. 주석에서는 성교의 금지라고 하여 순결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여섯 번째 항목은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 것이다. 정오 이후에 먹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라고 한다. 포살계를 받으면 그날 하루만큼은 저녁에 먹지 못한다. 단 하루낮과 하루밤만 지속한다. 그래서 포살계를 하루낮하루밤계라고 한다.
재가자의 포살계는 하루짜리 계에 지나지 않는다. 포살일 하루만큼이라도 출가수행승처럼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 번째 항목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장소에 가는 것도 삼가고 여덟 번째 항목처럼 높은 침상에서 자는 것도 삼가야 한다.
포살법회에서 팔계를 받으면 그날 하루는 스님처럼 살아야 한다.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서는 오후불식이다. 다른 일곱 가지는 생활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다만 저녁 식사만큼은 지키기 힘들다. 포살계를 받아 지녔기 때문에 오늘 하루만큼은 저녁밥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굶기로 했다.
빤냐와로 스님 법문이 있었다. 건강한 모습에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나직이 천천히 말하지만 모두 새겨들을 만하다. 작은 메모노트를 준비해서 받아 적었다. 먼저 주식이야기를 했다.
주식은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나의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 소유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하지 않는다. 주식을 사 놓은 순간 마음은 거기에 가 있기 때문에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다름아닌 탐욕에 따른 번뇌이다.
빤냐와로 스님은 주식을 해도 된다고 했다. 다만 불교인으로서 마음 자세를 강조했다.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한개를 얻으면 세 개의 공덕을 쌓아라."라는 것이다. 무탐과 겸손과 자애의 마음이 없으면 주식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쯤 되면 주식하는 것도 수행의 범주에 해당될 것이다.
말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빤냐와로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말을 할 때 주의할 점'이라 하여 불교인의 대화법에 대해서 여섯 가지로 말했다.
첫째, 감정적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탐, 진, 치로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가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경전적 근거를 들어 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째, 내 입장에서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며 주관을 가지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법문도 주관을 가지고 말하면 자신의 말이 되어 버리고 자신의 종교가 되어버림을 말한다.
셋째, 이익되는 말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말을 반만 줄여도 큰 성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간만큼 수행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익을 줄 수 없을 것 같으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넷째, 자신이 불안해지고 괴로워지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을 말한다. 말을 해서 번뇌를 야기한다면 입다물고 있음만 못하다.
다섯째, 말할 때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분위기, 좋은 감정 등 조건이 좋을 때 말을 하라는 것이다.
여섯째, 말을 길게 하지 말라고 했다. 요점만 간단하게 짧게 말해야 함을 말한다. 장황하게 말하면 주관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빤냐와로 스님의 말하기 얘기를 들으니 처세술을 듣는 것 같다. 말은 마음이 표출된 것으로 말의 바다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일지라도 담마를 얘기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부처님은 담마토크, 즉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해도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담마에 대해서 법문 했다 그것은 인내에 대한 것이다.
흔히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을 한다. 이때 인내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스님은 칸띠(khanti)와 띠띠까(tittika)로 설명했다. 두 단어는 인내에 대한 것이지만 칸띠는 사띠와 관련 있고 띠띠까는 정진과 관련 있다.
스님에 따르면, 칸띠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했다. 띠띠까는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
칸띠는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사띠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탐욕인지 성냄인지 어리석음인지 알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수행을 잘 해 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칸띠가 해탈에 이르도록 해 준다고 했다.
띠띠까는 일종의 용맹정진과 같은 것이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악조건을 참고 견디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탐, 진, 치를 제어하는 것이다. 두 가지가 함께 해야 인욕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칸띠 와 띠띠까 가 인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압빠마데나 삼빠데타"라고 했을 것이다. 이는 "불방일정진"을 말한다. 여기서 압빠마다는 칸띠와 같은 개념이고, 삼빠데타는 띠띠까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이는 다름 아닌 사띠와 정진이다.
사띠와 정진 두 가지만 있으면 열반이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37조도품을 보면 정진과 사띠가 법의 숫자에 있어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 하고 있다.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전에 최후의 말씀으로서 왜 "불방일정진!"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오늘 오전 포살법회 다녀왔다. 오늘 하루만큼은 스님처럼 사는 날이다. 가장 힘든 것은 저녁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다가 한 끼만 먹지 않아도 배고파 죽을 것 같다. 그러나 수행승들은 평생 오후불식하며 산다. 나도 오늘 하루만큼은 스님처럼 살아 보아야 겠다.
2022-04-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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