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대사(大事)라는데, 식당순례 30 일인도리탕
식사가 대사라고 한다. 식사대사(食事大事), 식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출재가를 막론하고 먹는 일은 큰 일인 것이다.
오늘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사무실 구내식당이 있지만 외식하기로 했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 우중에 우산을 쓰고 정처없이 걸었다. 단풍이 절정이다. 우중에 노랑은 더 노랗게 보이고 빨강은 더 빨갛게 보인다. 며칠 지나면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마음도 스산하게 만들 것이다.
나홀로 식사하는 사람에게 식당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한테이블 정도는 채울 수 있어야 환영받는다. 그럼에도 코로나시기를 맞이하여 사무실 반경 5백미터 이내 식당은 한번쯤 가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중에 배회하다가 명학역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땅한 곳이 없다. 순대국, 뼈다귀, 소머리국밥 등이 많다. 한번씩 먹어 본 것이다. 좀더 색다른 것을 먹어 보고 싶었다. 전문점 식당 메뉴를 말한다.
헤매는 와중에 간판을 하나 발견했다. 간판에는 ‘도리 도리’라고 쓰여 있다. 갑자기 야당 대권후보 별칭이 생각 났다. 도리는 닭을 말한다. 일본어이다. 일본어로 도리는 새를 뜻하지만 닭집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는 음식점이다.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는 이면도로에 있어서 장사가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오픈한지 몇 달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점심대목임에도 자리가 텅텅 비어 있다.
여러가지 도리 메뉴가 있다. 나홀로 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일인 메뉴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일인도리’이다. 일인도리를 주문했다.
일인도리 가격은 7천원이다. 비교적 합리적이고 약간은 저렴한 가격이다. 이정도 메뉴이면 8천원은 받아야 할 것이다. 일인도리 7천원은 점심 할인가를 적용한 것이다.
흔히 닭도리탕이라고 말한다. 일인도리 역시 닭도리탕이다. 매콤한 양념이 특징이다. 부위별로 여러 조각이 있는데 양념국물과 함께 먹으니 독특한 맛이 난다. 오로지 한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전문음식점다워 보인다.
닭도리탕을 먹으면서 먹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매일 죽을 때까지 세 끼 먹는다. 두 끼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점심시간이 가장 기다려 진다. 먹는 것이 하루일과 중에서 가장 큰 행사인 사람은 식사시간이 기다려 질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식사대사, 먹는 것이 큰 일이 된다. 나도 그런 것일까?
식사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대사이다. 많이 가진 자들은 가진 것만큼 먹어야 하나 하루 세 끼 이상 먹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하루 한끼 먹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먹는 시간만큼은 즐거운 시간이다.
대부분 식사를 즐긴다. 식사는 즐기기 위해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식사하는 것이 윤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즐기면서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한 네 가지 자양분이 있다.”(S12.11)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윤회하게 하는 네 가지 자양분이 있다. 음식, 접촉, 의도, 의식의 자양분을 말한다. 물질적 음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행위도 윤회하게 하는 요인이 되게 함을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음식을 즐기면서 먹는다면 윤회할 수밖에 없다. 다시 태어남을 유발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음식을 대할 때 상처에 바르는 연고정도로 생각하거나 바퀴에 기름칠하는 정도로 대하라고 했다.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초기경전에서는 항상 “음식을 먹을 때는 알맞은 분량을 알라.”(S35.239)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S35.239)라고 했다.
음식을 놀이(davāya)로 먹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먹방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음식을 사치(madāya)로 먹는 사람이 있다. 음식을 미치기 위해 먹는 것을 말한다. 술 마시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음식을 장식(maṇḍanāya)으로 먹는 사람이 있다. 마치 음식을 예술작품처럼 만들어 놓고 먹는 것을 말한다. 음식을 치장(vibhūsanāya)으로 먹는 사람이 있다.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이 모두가 음식을 즐기는 것이 된다.
음식을 잘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고기반찬에 먹는 것을 잘 먹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어머니에게 반찬투정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본래 소화기관이 약하여 잘 먹으면 그대로 설사해 버렸다.
한때 음식을 몸을 만들고자 먹고자 했다. 몸이 너무 말라서 볼품없어 보였기 때문에 살을 찌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위의 양을 늘려야 한다. 위대하게 해야 살이 찔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탈만 나서 그만 두었다.
옛날에 음식에 대한 태도는 음식을 몸을 만드는 것 정도로 알았다. 음식을 치장으로 먹고자 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음식을 취하기 위해서 먹었다. 술도 음식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음식을 사치로 먹은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기 때문에 윤회의 원인이 되는 섭생이 된다.
음식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늘 음식절제를 강조했다.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몸을 지탱하는 정도로 먹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 제자들은 음식을 어떻게 먹었을까? 테라가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네 다섯 모금 식사하고,
그리고 물을 마시면,
자신에 전념하는 수행승이
평안한 삶을 살기에 족하다.”(Thag.983)
탁발자가 탁발음식을 수용하여 먹을 때 금방 먹는 것 같다. 이는 음식을 불과 네 다섯 덩어리 먹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삼각김밥을 생각하면 된다. 삼각김밥은 한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런 것을 네 다섯 덩어리 먹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리뿟따 존자는 테라가타에서 “너무 배부르게 먹지 말라.”(Thag.982)라고 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이어지는 게송에서 “배를 비우고 적당량을 알아 새김을 확립하고 수행승은 유행한다.”(Thag.982)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사띠(sati)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동작 하나 하나, 행위 하나 하나 알아차림 하며 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을 때 음식을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식사를 대사라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오늘 점심 대사를 치루었다. 이제 대여섯시간 후가 되면 또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대사를 치룰 것이다. 하루에 세 번, 세 끼 대사를 치루어야 한다.
식사가 대사가 되어 버렸을 때 비참한 삶이 된다. 식사가 대사가 아니라 식사는 소사가 되어야 한다. 음식 먹는 재미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재미로 살아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덧 점심시간이다. 이런 때 밥먹으로 가면 밥맛이 난다. 그러나 아는 것도 하는 일 없이 감각만을 즐기다가 또 다시 감각을 즐기러 갔을 때 허망한 삶이다.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식사가 대사가 되었을 때 부끄러운 삶이 된다.
2021-11-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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