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11월 30일이 되니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30. 15:16

11월 30일이 되니

 

 

거리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하다. 본격적인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파리가 맥없이 떨어져서 거리에는 낙엽으로 수북하다. 청소부도 치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꺼번에 치울 것으로 본다.

 

 

오늘은 1130일이다. 내일은 121일이 시작된다. 해마다 1130일은 최악의 계절이 되었다. 거리 가로수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여기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절망적인 최악의 날씨가 된다.

 

사무실은 푸근하다. 난방장치가 가동되어서 추운 줄 모른다. 밖에는 비가 오고 바람 불어서 을씨년스러운 날씨이지만 안에 있으면 안온하다. 이런 행복은 얼마나 갈까?

 

매달 30일이 되면 결재하는 날이다. 공과금 결재도 하고 임대료 결재도 해야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놓아서 손안에서 이체를 한다. 이번 달에 이체하면 마이너스통장은 더욱더 한도 가까이 갈 것이다.

 

사무실 관리비가 비싸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인용 사무실임에도 아파트관리비 보다 더 많이 나온다. 여기에 임대료와 인터넷 비용까지 합하면 하루 이만원꼴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매우 부담되는 금액이다.

 

일하는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 일감이 없어서 노는 날이 많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방법은 키워드광고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충전해 놓았다. 네이버도 시동 걸어야 한다. 그래서 어제 십만원 충전해 놓았다. 콘텐츠를 채울 일만 남았다.

 

키워드광고는 마치 낚시하는 것 같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물고기가 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누군가 전화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질만 할 뿐 걸려 들지 않는다. 이는 키워드광고 관리자 모드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기 마련이다. 이 일도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다.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이 일을 해서 생활비도 벌고 등록금도 마련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상황이 옛날 같지 않다.

 

내년이면 국민연금이 수령이 시작된다. 하고 있는 일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마침 대안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타이밍이 절묘한 것 같다. 만일 사무실을 그만 두었을 때 무엇을 하고 살아 가야 할까?

 

요즘 놀고먹는 것 같다. 일하는 것 없이 하루해가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아무래도 해가 짧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낼 순 없다. 무위도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식사대사(食事大事), 밥 먹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이다. 식사대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먹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축생이나 다름없다. 어떤 일이든지 해야 한다. 반드시 생업과 관련된 것만이 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 십이연기분석경을 외우고 있다. 하루에 한게송씩 외우는 식이다. 양은 많지 않다. 사구게로 되어 있는 게송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외우면 외워진다. 이렇게 사구게 하나라도 외우고 나면 밥값을 하는 것 같다.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 아니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 동기들은 은퇴하여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현역에 있는 친구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영업자에게 은퇴라는 말은 없다. 이제까지 해 왔듯이 계속하면 된다. 운수 좋으면 일감이 들어올 것이다.

 

1130일이 되고 보니 올 한해도 다 간 것 같다. 내일 부터는 12월이기 때문에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럴 때 하는 말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라는 말이다.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십년전에더 이 자리에서 자판을 두들겼고 지금도 여전히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연초나 연말이나 크게 다름없는 삶이다. 하루 해가 뜨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글을 쓰는 것이 일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생업은 뒷전이 된 것 같다.

 

글쓰기에 올인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늘어나는 것은 글 밖에 없다.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글 쓴 것을 보니 무려 690개가량 썼다. 그것도 A4로 서너장 되는 긴 글이다. 책으로 낸다면 400페이지 기준으로 20여권 될 것이다.

 

1130일이 되니 그동안 하고자 했으나 하지 못한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런 것중의 하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은 물론 가까이 있는 사람조차 못 만났다. 찾아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찾아 가야 한다. 점심약속도 약속이라고 하는데 약속을 해놓고 스스로 어기는 것 같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올 한해도 지나갈 것이다. 연초가 엊그제 같았었는데 올해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 가는 것 같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자 한다.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

 

식사대사(食事大事)로 세월을 보낸다면 축생과 다름없는 삶이다. 좀더 많은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가열찬 글쓰기를 지속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게송이나 경을 외우는 것이다.

 

게송외우기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글쓰기도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지만, 글쓰기보다 더 적극적인 것은 암송하는 것이다.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게송씩 아침, 점심, 저녁때 외우는 것이다. 생소한 빠알리 단어도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하여 외우다 보면 내것이 된다.

 

수행은 언제 해야 할까? 늘 혼자 있다 보니 수행할 시간은 많다. 좌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언제든지 앉아 있으면 된다. 그러나 앉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단 십분만이라도 앉아 있고자 한다.

 

일단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초기경전에서 말한 것 그대로이다. 감각적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로부터 멀리 했을 때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같은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카페트가 깔려 있는 요가매트 위에 앉으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무 하는 일 없이 식사만 하는 일이 대사가 된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차곡차곡 쌓이는 일을 하면 축적하는 삶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축적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매일 글쓰기하는 것은 축적하는 삶이다. 이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다. 올해만 들어 690개 썼으니 한달에 62개 쓴 것이다. 하루에 평균 두 개씩 쓴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블로그에 저장되어 있다. 어느 때인가 책으로 되어 나올 것이다.

 

책을 만드는 것도 축적하는 삶이 된다. 이제까지 37권 만들었다. 이번주에 4권 추가하면 41권이 된다. 책장에 꼽아 두면 양이 꽤 된다. 앞으로도 매달 3-4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후년쯤 되면 100권이 될 것이다.

 

100권을 책이 완성되었을 때 축적하는 삶을 가시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터넷에 있는 글 역시 축적된 것이다. 이밖에도 게송외우기를 하면 역시 축적된 삶이 된다.

 

사람들은 세월이 빨리 흐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타령을 한다. 나이타령은 결국 늙음타령과도 같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흘러 가는 세월을 한탄만 하고 보내서는 안될 것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해야 한다. 바로 그것은 축적된 삶이다.

 

축적된 삶을 살면 세월이 흘러도 억울하지 않다. 늙음타령도 덜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재물을 축적하는 것은 아니다. 재물은 결국 다 털리게 되어 있다. 누구에게 털리는가? 도둑에게 털리고 악의적 상속자에게 털린다. 요즘에는 병원에서 털어간다.

 

털리지 않는 재물을 축적해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을까? 독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백권의 책을 읽겠다고 서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것이 되기 힘들다. 내것으로 하려면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글은 써놓으면 남는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온데간데없지만 글은 끝까지 남아 있다. 더 좋은 것은 경이나 게송을 암송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내것이다. 절대 털리지 않는 정신적 재물이다.

 

나이가 들수록 축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늙어 가게 되는데, 대부분 늙음을 한탄하는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소리 듣기 쉽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부끄러워할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주는 사람의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백 세를 살더라도 결국

죽음을 궁극적인 것으로 할 뿐

누구도 예외로 하지 않고

그것은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네.”(S48.41)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노년은 가련한 것이라고 했다. 또 늙은 모습은 추악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축적된 삶은 가련하지도 않고 추악해 보이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아무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는 삶은 가련하고 추악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축적된 삶을 살면 공덕을 쌓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은 1130일이다. 월말이기 때문에 공과금 등을 결재하는 날이기도 하다. 밖에 날씨는 우중충하고 나뒹구는 낙엽으로 인하여 폭격 맞은 듯하지만 축적된 삶을 사는 자는 안온하다. 밖에 날씨가 아무리 황량해도 돌아갈 집이 있기에.

 

 

2021-11-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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