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세상은 내뜻대로 되지 않지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2. 19. 17:57

세상은 내뜻대로 되지 않지만


세상에 자식 내마음 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때문에 골머리 앓는 사람들이 많다. 이재명도 그런 것 같다.

이재명은 자식문제로 인하여 90도 각도로 대국민 사과했다. 자식 잘못 교육한 것에 대해서 깔끔하게 사과한 것이다. 더구나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게 하겠다고 했고 치료받게 하겠다고도 했다.

이재명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사과는 야권 사람들이 트집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과는 간결해야 하고 진정성 있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야당 후보의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자들 앞에서 "사과했다. 됐냐? !?"라며 호통치는 것 같았다.

내뜻대로 되지 않은 것 하나가 더 있다. 나의 경우는 잠을 내 의지대로 잠 못 이루는 것이다. 왜 잠을 잘 못 잘까? 아무래도 번뇌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번뇌가 많은 사람은 번뇌 때문에 잠 못 이룰 것이다. 반대로 번뇌가 없다면 잠을 잘 잘 것이다.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다. 깨달은 사람은 잠을 잘 자는 사람일 것이다. 왜 그런가?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잠을 잘 잤냐는 왕자의 질문에 "왕자여,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라고 답했다.

세상에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은 것이 많다. 돈도 내 마음대로 벌리지 않는다. 남의 지갑을 열게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도 내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가까이하려 하면 도망가버린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경이나 게송 외우기이다. 빠알리 경 외우기 하나만큼은 확실히 내뜻대로 되는 것 같다. 방금 십이연기분석경에서 나마루빵에 대한 분석을 뚝딱 외웠다.

"
까따마딴짜 빅카웨 나마루빵. 웨다나 산냐 쩨따나 팟소. 마나시까로 이당 뷰짜띠 나망. 짜따로 마하부따 짜뚠낭 마하부따낭 우빠다야루빵. 이당 뷰짜띠 루빵. 이띠 이단짜 나망 이단짜 루빵. 이당 뷰짜띠 빅카웨 나마루빵"

글자 수를 세어 보니 87자이다. 30분 집중해서 외웠더니 쉽게 외워졌다. 대부분 아는 단어이다. 생소한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구문이 정형화되어 있다. 정형구 형태로 되어 있어서 거저 먹는 것 같다. 뜻은 다음과 같다.

"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명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에는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정신활동이 있으니 이것을 명이라고 부르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 또는 네 가지 광대한 존재에서 파생된 물질을 색이라고 한다."(S12.2)

부처님은 명색을 명과 색으로 분리해서 설명했다. 나마()에 대해서는 느낌(vedan
ā), 지각(saññā), 의도(cetanā), 접촉(phasso), 정신활동 (manasikāro), 이렇게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의식(윈냐나)을 제외한 심소들에 대한 것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52가지 심소(마음부수)가 있다. 다섯 가지 심소는 52가지 중에서 두드러진 것이다.

루빠()에 대해서는 사대와 사대에서 파생된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사대는 지대, 수대, 화대, 풍대를 말한다. 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세계(다뚜)를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물질이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눈, , , 혀 등 24가지 파생물질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명색'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명색이 사장인데."라며 자신을 내세운다. 이때 명색은 자기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십이연기분석경에서 명색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정신과 물질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분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부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아마 그것은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를 부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는 양극단이다. 니까야 도처에서 부처님은 양극단을 떠나 십이연기를 설했다. 이를 중도로 설명하기도 했다.

명색을 개념지어진 것으로 보고 인식된 것으로 본다면 영원주의가 되기 쉽다.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물질이 아니라 이름-형태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

이중표 전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명색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해석했다.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과 다르다. 부처님은 십이연기분석경에서 분명히 정신-물질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중표는 왜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했을까?

이중표는 니까야를 중도론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자신의 박사논문과도 관계가 있다. 용수의 중론에 따른 해석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논장을 부정한다. 아비담마 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중의 하나가 나마루빠(명색) 해석방식이다.

나마루빠를 이중표 방식대로 해석하면 이름-형태가 된다. 이는 나마(nama)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름(name)으로 본 것이다. 또 루빠 역시 문자 그대로 물질로 본 것이다. 그래서 형태라고 번역했다.

이중표는 십이연기의 나마루빠를 설명하기 위해서 컵을 예로 들었다. 컵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컵이 된 것이고, 컵이라는 형태가 있어서 컵이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로서 이름 붙여진 모든 것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본 것이다.

나마루빠를 정신-물질로 보는 것과 이름-형태로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 보다 더 크다. 명색을 이름-형태로 본다면 우리를 포함하여 삼라만상은 모두 이름 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이는 개념지어진 것을 말한다.

이중표는 명색에 대하여 왜 이름-형태로 해석했을까? 놀랍게도 유튜브 강연을 보면 우파니샤드 해석방식이라고 했다. 우파니샤드는 브라만교에 대한 교서로서 영원주의에 대한 것이다. 명색이 불교학자가 명색을 우파니샤드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 놀랍다.

부처님은 십이연기분석경에서 명색에 대해서 분명히 정신-물질로 설명했다. 정신과 물질은 같은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임을 말한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명색을 우파니샤드식으로 이름-형태로 해석했다면 오온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명색을 이름-형태로 해석하면 컵이나 분필, 칠판, , 하늘, 나무 등 삼라만상에 대한 것이 된다. 이는 아뜨만에 대한 것이다. 우파니샤드 방식 해석이다. 그러나 부처님 관심사는 오온이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설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온으로 한정되었다
나마루빠를 정신-물질로 해석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이 나마루빠를 정신-물질로 해석한 또 하나 이유가 있다. 그것은 허무주의를 부수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 당시 아지따 께싸깜발린과 같은 유물론자들에 따르면 정신은 물질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으면 물질에서 파생된 정신도 죽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보았다. 이는 다름아닌 허무주의이다.

부처님은 정신과 물질은 다른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정신은 물질에서 파생된 것이 아님을 뜻한다. 정신과 물질은 별개의 것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바로 그것이 연기법이다.

연기법의 특징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상호의존적 연기이고, 또 하나는 조건빌생적 연기라는 사실이다. 이는 십이지 연기의 순환고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화한 것이 아비담마논장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우리 몸과 마음을 오온, 십이처, 십팔계로 설명한다.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작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이는 십이연기분석경에서 각 고리의 해석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살라야따낭(육처), 팟소(접촉), 웨다나(느낌), 딴하(갈애)에 대한 분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안이비설신와 색성향미촉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보면 명쾌하다. 그동안 의문 가졌던 겻이 깨끗하게 해소된다. 그리고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다. 인생의 해법이 모두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82법으로 정리했다. 이를 빠라맛따담마(Paramatta dhamma)라고 한다. 우리말로 구경법이다. 근본법이라고도 한다.

구경법에는 82법이 있다. 이는 다섯 종류로 구분된다. 물질은 28법이 있고, 마음부수는 52법이 있고, 마음은 1법이 있고, 열반은 1법이 있는 것이다.

구경법에서 마음과 열반은 오로지 1법만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음은 왜 1법만 있을까? 이는 한순간에 두 마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1개의 마음은 십이지연기에서 윈냐나(의식)에 해당된다. 그런데 구경법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법은 명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마()와 관련된 것은 52법이고, 루빠와 관련된 것은 28법이다. 마음과 열반을 빼고 모두 나마루빠에 대한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물질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말할 때 종종 "내가 명색이"라는 말을 한다. 이는 대단히 불교적 용어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온과 거의 같은 뜻이다. 그럼에도 어느 불교학자는 나마루빠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생물학적 십이연기를 말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빠알리 삼장 중에 논장을 전면 부정한다. 자신의 중도체계론과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교인들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십이연기분석경을 외우고 있다. 십이지 연기 고리에서 나마루빵까지 외웠다. 이제 남은 것은 윈냐낭(의식)과 상카라(형성)와 아윗자(무명), 이렇게 세 개만 남았다. 조만간에 다 외워질 것이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외우면 사진 찍은 것처럼 선명해진다. 이를 '포토메모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만사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장 잘 안되는 것이 자식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가 똑똑하다고 하여 자식도 똑똑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살아간다. 성인이 되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의 자식문제를 보니 자식이 내뜻대로 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잠도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고 싶다고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번뇌가 많은 사람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번뇌에서 자유롭다면 잠을 잘 잘 것이다. 부처님 같은 사람이다.

깨달음도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잠자는 것과 똑같다. 번뇌가 있으면 잠 못 이루듯이, 번뇌가 많으면 깨달음도 이루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뜻대로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경이나 게송 외우는 것이다.

외우기는 노력한만큼 결실을 맺는 것 같다. 글쓰기도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이 제일 쉬웠느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자신있게 "글쓰기와 경 외우기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내뜻대로 되기 때문이다.


2021-12-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