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환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두세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를 말한다. 그렇다고 백년, 천년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10년후가 문제가 된다.
눈부처학교 8기 강좌가 어제 모두 끝났다. 총 다섯 개 강좌가 열렸는데 마지막 5강은 이도흠 선생이 진행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여러 가지 위기와 대안’에 대한 것이었다.
일곱 단계 시기가 있는데
4차 산업혁명, 수없이 들어 본 말이다. 그러나 잘 실감나지 않는다. 일인사업을 하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 같고, 내일은 어제와 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14년째 어제와 같은 나날을 살고 있다. 그런 4차 혁명은 나와는 무관한 것일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두 가지가 떠올려진다. 하나는 유토피아이고 또 하나는 디스토피아이다. 대부분 후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강연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대안’이라든지 ‘대책’, ‘대응’과 같은 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말
2) 3차 디지털 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차이
3) 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양상
4) AI로 인한 인한 정체성의 위기와 노동의 위기
5) 빅브라더와 빅마더에 의한 전체주의의 위기
6) 재현의 위기
7) 초연결사회와 공유경제로 인한 자본주의의 위기
8) 생명성의 위기
9) 불교 안팎의 대안의 길 찾기
강의 내용은 PPT에 기반한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 이를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도흠 선생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설명했다. 설명한 것을 듣고 노트했다. 먼저 시대구분에 대한 것이다.
지금 4차 산업시대라고 말한다. 실감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구분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무슨시대라고 해야 할까? 3차 산업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다.
PPT 자료에 따르면 일곱 단계로 시기가 구분되어 있다. 1단계는 숲생활기이고, 2단계는 석기사용기, 3단계는 언어소통기, 4단계는 농경혁명기, 5단계는 철기시기, 6단계는 과학혁명기, 7단계는 인공지능시기로 구분된다. 이렇게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은 6단계인 과학혁명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3차 디지털혁명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러나 아직 6단계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공지능(AI) 시대가 될까? 강의를 들어 보니 2040년부터 본격적인 인공지능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왜 미래가 비관적인가?
오늘 2021년 끝자락에 있다. 내일이면 2022년이 된다. 본격적인 인공지능시대 때 까지 18년 남았다. 앞으로 18년후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까?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까? 강의를 들어 보면 비관적이다. 그것은 자본과 관련이 있다.
눈부처학교 8기 다섯 강좌를 보면 미래 세상에 대한 것이 많다. 그것도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불평등문제, 기후문제, 팬데믹문제, 그리고 AI문제가 주된 것이다. 공통적으로 사회 체제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것이다.
자본주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코로나 이전에도 신자유체제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거세지는 것 같다. 그것은 성장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체제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무한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질주할 수 없다. 언젠가는 멈추어야 할 것이다. 제동장치가 없다면 어딘가에 충돌한 후에 강제적으로 멈추어지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체제가 그렇다는 것이다.
눈부처학교 8기 1강 박승호 선생의 강의를 들어보면 자본주의체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 무한 성장할 수 없는 것이 큰 이유이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최근 100년 동안 거의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했는데 영원히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주가는 시세분출하고 나면 폭락한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본주의 체체는 현재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제 고꾸라질지 모른다. 그 시기는 언제일까? 환경론자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눈부처학교 2강에서 민정희 선생에 따르면 2030년이라고 말한다.
왜 2030년인가? 그것은 지구온도 상승과 관련이 있다. 만약 인류가 1.5도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인류는 2030년 되었을 때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기후와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2030년을 주목한다. 이제 8년 남았다. AI에 따른 디스토피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2040년을 주목한다. 이제 18년 남았다. 앞으로 한세대가 되기 전에 인류는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미래는 비관적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자본주의
미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미래는 장미빛이 아니라 암울하다.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의를 들어 보니 공통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사회주의를 말한다. 지금 사회주의로 체제전환을 하지 않으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아직까지 한번도 다른 체제에서 산 적이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 체제는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다. 강한 자는 먹고 약한 자는 먹힌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강한 자만 살아 남는다. 이런 세계는 다름 아닌 짐승의 세계와도 같다.
사람과 짐승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 그 중의 두 개 들라면 아마도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다름아닌 양심과 수치심을 말한다.
내적 두려움을 양심이라고 말하고, 외적 두려움을 창피함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짐승에게는 이 두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It.36)라고 말씀하셨다.
자본주의체제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체제같다. 그것은 화폐와 자본의 속성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돈벌기 선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자본은 증식의 속성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자본의 무한질주에 해당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사는 한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돈은 곧 욕망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체제하에서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돈의 노예와 욕망의 노예가 되었을 때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계가 될 것이다. 짐승들은 양심과 수치심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체제는 모든 사람들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화폐와 자본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체제로는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 대안은 무엇일까? 이구동성으로 사회주의체제를 말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회주의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나 환경, 4차 산업혁명 등에 대응되는 새로운 사회주의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체제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주의는 어떤 것일까? 돈 걱정하지 않는 사회주의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폐와 자본에서 자유로운 체제를 말한다. 무상주택, 무상교육, 무상의료만 되어도 이상적인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돈과 자본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없이도 사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는 것 보다는 모여 사는 것이다. 일단 돈과 자본에서 자유롭게 되면 무한성장이나 무한질주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환경문제, 기후문제도 극복될 것이다. 과연 이런 세상은 가능할까?
자본주의체제는 문제투성이다. 특히 신자유체제가 그렇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서도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된다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보다 더욱 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제전환을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사회주의체제로의 체제전환을 말한다.
틈이 있어야 변화가
사회주의로 체제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자본주의 모순이 재앙적 수준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면 체제전환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무언가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이에 이도흠 선생은 여러가지 대안을 말했다. 일종의 사회운동 같은 것이다. 이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다.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동일성에서 차이로
- 불일불이의 생태론
- 이분법에서 대대(待對)의 공존으로
구체적인 것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중 하나를 들라면 ‘틈’에 대한 것이다. 빈틈을 만들어서 생태계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는 도가의 무위자연과 같은 사상이라고 했다.
요즘 빈틈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자본주의체제하에서 그렇다. 모든 것이 화페와 자본 위주이기 때문에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이런 때 틈을 만들어야 한다.
틈이 없으면 숨이 막힐 것이다.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은 숨막히는 세상이다. 로보트나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때도 숨막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획일화되었을 때 차이가 없게 된다.
빈틈은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우주도 차이가 나서 형성된 것이다. 질서속에 틈이 있어서 그 틈으로 인하여 중력이 작용하여 오늘날 우주가 형성된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미래는 자본주의체제로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빨리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해야 함을 말한다.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4차 산업혁명과 결합되었을 때 디스토피아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력이 없다.
21세기에 맞는 사회주의제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우호적인 세력이 많을 때 힘을 받을 것이다. 정치세력화 되었을 때 더욱더 탄력 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까지 미래 닥쳐올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채석장에서 바위를 쪼갤 때
불교 적폐청산운동이 있었다. 2017년과 2018년 2년간에 걸친 대투쟁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당시 기득권 승려들은 견고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이익을 공유했다. 이와 같은 기득권의 카르텔을 어떻게 깨야 할까? 그것은 틈을 만드는 것이다.
채석장에서 바위를 쪼갤 때 틈을 만든다. 정으로 구멍을 뚫은 후에 나무못을 박는다. 나무못에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할 것이다. 나무못의 팽창으로 인하여 바위에는 균열이 생겨 갈라진다. 작은 틈이 바위를 가르는 것이다.
강력한 기득권 집단도 틈이 있다. 그 틈을 공략하면 무너진다. 틈이 없으면 틈을 내면 된다. 아무리 강고한 자본주의체제라도 틈은 있기 마련이다. 틈을 내면 공간이 확보된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미래 4차 산업혁명시대에 자본주의는 맞지 않다. 인공지능(AI)과 자본이 결합하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체제로는 가망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21세기 맞는 사회주의체제를 만들다고 말한다. 그 전단계가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적 패러다임으로
사람 사는 세상에 틈을 만들어야 한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을 점차 넓혀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자연을 정복하라는 기독교 창세기 패러다임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불교적 패러다임이 요청된다.
불교적 패러다임은 21세기 패러다임에 딱 들어 맞는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승가공동체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무소유와 평등이 그렇다.
부처님 당시에 어느 계급이든지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오면 평등했다. 그래서 이발사였던 우빨리존자는 자신이 모시던 밧디야 왕보다 먼저 출가했다. 이는 왕이 배려했기 때문이다. 먼저 출가한 자가 선임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성계급은 평등했다.
승가공동체는 공동생활이 특징이다. 탁발을 나가서 얻어 온 음식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승가공동체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생활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 없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다.
체제전환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누가 걸어야 하는가? 시민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서는 세력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21세기에 적합한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주의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먼저 세력화를 해야 할 것이다. 정치세력화가 된다면 세상을 바꾸기 쉬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틈을 만드는 것이다.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을단위로 빈틈을 만들고, 지역단위로 빈틈을 만들고, 국가단위로 빈틈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틈을 만들어 확장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전세계적으로 틈이 생겨난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체제전환 할 수 있는 틈을 만드는 것이다.
2021-12-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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