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나의 미나리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 3. 07:43

나의 미나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에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사이트에 가입하지 않는다. 채널을 돌리다가 걸리면 보게 된다. 어제 저녁에도 그랬다.

 

미나리를 보았다. 미국에서 상 받은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마침내 케이블 채널에서도 방영되어서 보게 되었다. 그것도 중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게 된 것은 행운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록을 남긴다.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아도 글을 남긴다. 모으고 모으다 보니 125개 된다. 십년가량 쓴 것이다. 이를 '영화와 드라마 후기'라는 타이틀로 1, 2, 3권을 만들었다. 또 쌓이면 책이 될 것이다.

기록을 남길 목적으로 영화를 보았다. 사진을 찍고 메모했다. 그리고 어떻게 쓸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서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나 매일 쓰는 것을 일로 삼는 블로거는 어떤 것이라도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사건이다. 대리체험한 것을 나의 지난 삶에 견주어 글을 남겨 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니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이다. 레이건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20대 때에 해당된다. 30대 부부가 두 남매를 데리고 아칸소에 정착하는 것으로 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 미국을 동경했다면 미국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시절에 미국에서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영화속 대사를 보면 매년 3만명가량 이민 온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 부부는 미국내 한국인을 대상으로 농사짓기로 한 것이다.

아칸소는 미국내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클린턴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사람이 미국 깡촌에서 농사 짓기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흑인은 한사람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백인이 대부분이다. 미국 농부를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나라 시골 농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 같다.

부부가족은 왜 아칸소와 같은 깡촌에 들어 갔을까?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사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종일 일년내내 병아리 감별만 만하며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채소 농사짓는 일을 하고자 한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미래가 있다. 이민 떠났을 때도 꿈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을 버리고 미국에 간 것은 어메리컨 드림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꿈은 이루어졌을까? 한국인의 생활력이라면 지금쯤 모두 백만장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한번도 미국에 가는 꿈을 꾼 적이 없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환경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꿈조차 꾸지 않았다.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도전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스무스했다. 인생이 술술 잘 풀려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꼭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이 그렇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건이 될 수도 있다. 팔고중의 하나인 원증회고에 대한 것이다.

사십대 때 변곡점을 맞았다. 생활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참으로 먹먹해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화속에서 부부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칸소와 같은 깡촌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아칸소에 간 것은 어메리컨 드림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농사를 지어서 성공하고자 했다. 마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케 한다. 농촌에서 꿈을 이루고자 미국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에 정착한 것이다. 마치 미국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70년대 보았던 '초원의 집'이 연상되었다.

영화속 부부는 꿈을 이루었을까? 그 정도 생활력이라면 지금쯤 백만장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그것도 미국사람도 잘 모르는 깡촌에 들어가서 생존에 성공했다면 인간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남자는 절망했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불이 났을 때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우물을 파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병아리 감별같은 단순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월급생훨자로 이십년 살았다. 사십대 중반이 되자 더 이상 월급생활자로 살아 갈 수 없었다. 퇴물이 된 것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관리자로서 역량도 부족했다. 그 결과 거친 세상속으로 내던져졌다. 퇴출된 것이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영화속 사람처럼 먹먹했다.

지금은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전에는 나의 인생이 아니었다. 월급을 받으면 그 시간만큼은 나의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일을 하면 모두 나의 시간이 된다. 영화속 사람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것이다.

영화제목을 왜 미나리(minari)라고 했을까? 영화 말미에 "알아서 잘 자라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남자는 절망적 상황에서 야생미나리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미나리는 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잘 자란다. 마치 생활력 강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미나리는 생으로도 먹고 무쳐 먹을 수도 있다. 미나리는 매운탕에 넣으면 시원한 맛이 난다. 미나리는 어떤 음식재료로도 활용된다.

 


영화는 남자가 미나리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미나리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미나리로 어메리컨 드림을 이루지 않았을까?

영화는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아칸소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놀랍게도 한국사람이 미국을 개척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서부개척시대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절망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야생미나리이었던 것이다. 알아서 잘 자라는 미나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미나리는 어떤 것일까?

2005
년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마지막 회사를 그만 둔 해를 말한다. 최근 국민연금 수령과 관련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그동안 회사를 무려 13군데 다녔다. 마치 업경대를 보는 것 같다.

2007
년에 개인사업자 등록을 했다. 2년 동안 방황했다. 도시의 들개처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걸린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다. 이것이 나의 미나리 아닐까?


2022-01-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