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의 싸움에서 늘 패하는데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요즘은 셀프 계산대도 등장했다. 계산할 때 마다 포인트가 올라간다. 어느 정도 적립되면 활용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살 때도 포인트가 적립되고 비행기를 탈 때도 그렇다. 인생의 포인트 적립은 없을까?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를 보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짤막한 영상이다. 일본 영화이다. 매미로 환생한 것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일본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내세 부동산’을 말한다.
어느 중년 남자가 죽었다. 다음 생을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죽음의 복덕방에서는 마치 집을 고르듯이 자신이 태어날 곳을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포인트가 다음 생을 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요인이 된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포인트 적립이 높아야 한다. 일생동안 취합된 총 포인트 적립금액이 다음 생을 정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포인트가 낮으면 지위가 낮은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맹구우목의 비유가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매우 어려움을 말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에서는 선행과 악행 포인트를 합산한다. 악행이 더 많으면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포인트가 낮으면 축생으로 태어나야 한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포인트를 보고서 매미로 태어나기로 한다.
나의 포인트 적립금은 얼마나 될까? 선업과 불선업을 모두 합했을 때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합하여 제로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르겠다. 마이너스가 된다면 그 포인트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흔히 공덕지으라고 말한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공덕을 지으면 포인트가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보시된 것이 커다란 열매를 거두는 곳에
기꺼운 마음으로 보시하라.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되리.”(A5.36)
공덕은 중생들에게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생에서 선업의 포인트를 적립해 놓는 것과 같다. 그런데 포인트는 선업만 적립되는 것이 아니다. 악업도 자동적립된다는 것이다.
포인트는 죽었을 때 결산될 것이다. 마치 부기에서 대차대조표를 보는 것과 같다. 인생이 흑자가 될 것인지 적자가 될 것인지는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 적자인생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그대야말로 낙엽과도 같다.
염라왕의 사자들이 그대 가까이에 있고
그대는 떠남의 문턱에 서 있으나,
그대에게는 노잣돈조차도 없구나.”(Dhp.235)
법구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죽음에 이르러 인생을 결산해 보았을 때 마이너스가 되었다면 죽음의 노자돈이 없는 것과 같다. 그때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아마 악처에 있게 될 것이다
공덕을 쌓아야 한다. 마일리지 적립하듯이 포인트를 올려야 한다. 인생의 포인트 적립에 가장 좋은 것은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쌓는 것이다.
공덕 짓기가 쉽지 않다. 보시공덕이 좋은 것인 줄 알지만 확신이 없으면 실행하기 힘들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보는 허무주의자들에게 특히 그렇다. 이럴 정도가 되면 지계공덕이나 수행공덕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악업으로 살아간다. 선업공덕 짓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왜 극히 드문가? 중생들은 탐, 진, 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탐, 진, 치로 살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한다. 탐, 진, 치로 사는 한 선행의 마일리지가 적립되기 힘들다. 악행의 마일리지는 차곡차곡 적립될 것이다. 오래살면 살수록 악업만 쌓일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업의 원리가 작용되는대로 다음 생이 결정될 것이다.
나는 욕계에서 살고 있다. 욕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욕계에서 살고 있는 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욕망으로 인하여 중죄를 짓는다. 이는 천수경 십악행에서도 확인된다. "탐애중죄금일참회"가 그것이다.
탐욕이 왜 중죄일까? 초기경전을 보면 명백하다. 맛지마니까야 등 초기경전 도처에서는 탐욕에 대해서 살생이나 도둑질과 동급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탐욕은 십악행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욕망을 내는 것은 살생한 것과 같고 거짓말한 것과 같다. 포인트나 마일리지가 같은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름을 보며 "참 아름답구나!"라며 감탄하는 것도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다. 꽃이 좋아 자주 쳐다보는 것도 욕망에 따른 것이다. 하물며 코로 향기를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
부처님 당시에 어떤 수행승이 있었다. 수행승은 탁발하다 연꽃을 발견했다. 연꽃이 아름다워 자주 찾게 되었다. 어느 날 향기를 맡게 되었다.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코를 댄 것이다. 이에 하늘사람이 "그대는 향기도둑이네."라고 말했다.
수행승은 졸지에 향기도둑이 되었다. 일반사람이라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일반사람이 술을 마셔도 문제삼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수행승이 술을 마시면 커다란 허물이 된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S9.14)라고 했다.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쳐다보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가 된다. 자주 쳐다보면 악업이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탐욕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을 때 탐욕이 바탕이 된다. 꽃이 아름답다고 하여 자꾸 쳐다보는 것도 탐욕이다. 자꾸 보다 보면 꺽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향내만 취하면 문제되지 않는 것일까? 청정한 삶을 살기로 맹세한 수행자에게는 커다란 허물이 된다. 구름처럼 큰 죄악이 되는 것이다.
한번 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하늘의 구름을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꽃도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반복적으로 행위하다보면 악업이 되기 쉽다. 욕망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행위로 연결된다. 꽃냄새 맡는 것도 행위에 해당된다. 내버려 두면 습관이 될 것이다. 이는 해탈과 열반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하늘사람이 수행승을 측은하게 여겨서 "그대는 향기도둑이네."라며 경각심을 주고자한 것이다.
청정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욕계에서 욕망으로 살도록 세팅되어 있는 욕계중생은 욕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탐욕으로 살고, 분노로 살고, 어리석음으로 산다. 포인트나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쌓이는데 악업이 되기 쉽다.
중생으로 사는 한 악업의 마일리지가 적립되기 쉽다. 오래살면 살수록 더 마일리지가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생에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저주의 말이 되기 쉽다.
법구경에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ṃ bala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장수하시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시길!"(Dhp.109)이라는 뜻이다. 장로수행승이 보시자에게 축원해주는 말이다.
장로는 보시자에게 사대축원을 해 주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장수, 용모, 행복, 건강에 대한 것이다. 이 중에서 장수축원에 주목한다.
장로는 왜 장수축원을 해 주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보시를 하는 등 공덕이 되는 행위를 했을 때 오래 살면 살수록 선업공덕이 쌓이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왕자여, 계행을 갖추고 선한 원리를 갖춘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오랜 세월 머무르면 머물수록, 많은 공덕을 낳습니다.”(D23.15)
부처님이 왕자에게 말한 것이다. 여기서 왕자는 선업공덕을 쌓을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즐기는 삶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감각을 즐기는 삶을 말한다.
대부분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산다. 눈으로 즐기고 귀로 즐긴다. 코로 즐기고 혀로도 즐긴다. 신체로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오감을 즐기는 삶을 살면 모두 악업이 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욕망으로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 든 어른에게 "이제 여생을 즐기며 사십시오."라고 말한다. 또한 은퇴한 사람이나 정년퇴임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이제 여생을 즐기며 사십시오."라고 말한다. 이는 악업을 지으며 살라는 말과 같다.
감각을 즐기며 살라고 말했을 때 이는 저주의 말과 같다. 감각을 즐기며 오래 살면 살수록 악업의 포인트만 적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그것은 "공덕지의며 사십시오."라는 말이 된다.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젊은 시절처럼 열심히 감각을 즐기며 살아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삶은 수행자로 사는 것이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지으며 사는 것이다. 이 중에서 수행공덕의 삶이야말로 최상의 삶이다.
보시공덕 보다 더 수승한 것이 지계공덕이다. 지계공덕보다 더 수승한 것은 사마타수행공덕이다.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은 사마타공덕에 해당된다. 그래서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 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라고 했다.
사마타수행공덕보다 더 수승한 것은 위빠사나수행공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보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
모든 공덕중에 최상은 위빠사나수행공덕이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손가락 튕기는 짧은 순간에라도 무상을 지각한다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장엄하는 보시보다 과보가 더 크다는 것이다.
욕망과의 싸움에서 늘 패한다. 그럴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 같다. 불선업의 포인트를 말한다. 욕계에서 욕망으로 사는 중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2022-01-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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