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아침공기가 싸늘하다. 아마 영하의 날씨 같다. 이런 날은 집에서 있고 싶다. 그러나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게을러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터로 향했다. 일인사무실을 말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풀가동하는 곳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이다. 하루에 최소 이만원 들어가기 때문에 주말에도 활용해야 한다. 최근 중앙난방비가 75%가량 대폭 올라 부담은 더 가중되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좋다. 해 뜨기 전에 하루일과를 시작하면 승리자가 되는 것 같다. 도시의 동쪽에는 하늘이 벌겋다. 고층 빌딩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난방용 연기일 것이다. 해가 뜨면 도시도 깨어날 것이다.
모닝커피를 만들었다. 절구커피를 말한다. 볶아진 원두를 절구질 한 것이다. 커피 한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 그럼에도 내 손으로 만든 원두 드립커피를 입에 대면 커피점 맛 부럽지 않다.
늘 같은 일상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이다. 내일은 어제와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있다. 변화가 없는 일상이라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마치 똑같은 영화를 백번, 천번 보는 것과 같다.
변화가 있기에 버틴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기 때문에 어제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있다. 마치 고향 구부러진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다. 금요니까야모임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제 1월 두 번째 금요모임이 열렸다. 명절을 앞두고 연휴가 시작되어서일까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고정멤버는 변함없다. 그 자리에 가면 늘 변함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만에 약사보살이 참석했다. 약국을 운영한다고 해서 약사보살이다. 니까야모임을 만든 사람이다. 원조 니까야모임 멤버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전재성 선생 아파트 거실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를 말한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람을 한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을 단점만 보고 판단한다면 이 세상은 혼자 사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단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생각한다면 함께 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모두 그 사람을 떠났을 때 어떤 이는 “저는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제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책을 전달했다. 금요모임 후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도현스님이 요청해서 만든 것이다. 두 권을 전달했다. 한권은 2019년과 2020년 글을 모아 놓은 것이고, 또 한권은 2021년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전자는 38개의 글이고 후자는 34개의 글이다. 이제 까지 총 세 권 만들었다.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 1권(2017-2018년), 2권(2019-2020년), 3권(2021년)을 말한다.
한달에 두 번 모임을 갖게 되면 계산상으로 일년에 24번 모임이 있게 된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빼면 10여차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 30개 이상 되는 것은 한번 모임 가질 때마다 여러 경을 합송하기 때문이다.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이는 다름 아닌 개인적 느낌에 대한 기록이다. 철저하게 기록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그럼에도 모임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사진을 곁들였다. 나중에 귀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현장스님이 인도 순례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어느 제자가 들은 것을 기록에 남겼다. 이를 외전이라 할 것이다. 이 기록은 현장스님이 남긴 대당서역기와 함께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었다고 한다.
현장스님의 제자가 기록한 것 중에 고창국 국왕 국문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삼장법사가 법문하기 위해 법상에 올라 갈 때 등받이를 해 주었다는 기록을 말한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이다. 국왕이 자신의 등을 밟고 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등받이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매일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16년 되었다. 2006년부터 썼기 때문이다. 니까야모임 기록을 남긴 것은 6년 되었다. 2016년 홍제동 아파트 시절부터 기록을 남긴 것이다.
모임이 열리면 받아 적는다. 두 시간 내내 노트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모아 놓은 노트가 10권 이상 된다. 노트한 것을 모두 글로 쓴 것은 아니다. 너무 많아서 다 쓰지 못했다. 극히 일부만 인용한 것이다.
고향에 가면 커다란 무덤이 있다. 마치 왕릉처럼 생긴 거대한 함평 예덕리 고분군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4-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 그때 당시 군단위의 커다란 정치적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길이가 무려 51미터에 달하는 무덤을 만들었다고 본다.
예덕리 고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160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많은 세월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찬가지로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다.
금요모임은 매달 둘째와 넷째 금요일이 되면 예외 없이 열린다. 사람 숫자와 관계없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열리고 사람이 적으면 적은 대로 열린다. 2016년 이래 늘 그래왔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 서고에 가면 모임이 있다. 방식은 늘 똑 같다. 정확하게 오후 7시가 되면 사람이 많든 적든간에 “나모 땃사 바가바또~”하며 예경문을 시작한다.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예경문이 세 번 끝나면 삼귀의를 세 번한다. 그리고 빤짜씰라, 오계를 낭송한다. 마지막으로 십분간 입정에 들어간다. 이때 불을 꺼야 한다.
교재는 늘 똑 같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선정된 경을 모아 놓은 ‘생활속의 명상수행’을 말한다. 어제 부로 일곱 번째 법수에 진입했다. 법수가 모두 열한 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남았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모임은 늘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열린다. 벌써 6년 되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늘 보는 사람들이 있다. 빠짐없이 참석하는 도반들이다. 새로운 얼굴들도 종종 보인다. 옛 얼굴들도 종종 나온다. 소중한 인연들이다.
여행을 가면 안심하고 간다. 멀리 해외여행 갈 때도 마음 놓고 간다. 왜 그런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 갈 집이 있기에 마음 놓고 여행하는 것이다. 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고향에 가면 거대한 무덤을 찾는다. 무려 1600년 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고향의 스러져가는 집은 세월이 지나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무덤은 언제나 산하대지와 함께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금요니까야 모임도 늘 그 자리에 있다.
매달 둘째와 넷째 금요일에 서고에 가면 모임이 있다. 매주 열리면 너무 가깝다. 한달에 한번이면 너무 멀다. 한달에 두 번이 적당한 것 같다. 매번 서고에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기분이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접하는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느낌이다.
늘 그곳에 가면 모임이 열린다. 늘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있다. 마치 여행자가 돌아갈 집이 있는 것처럼 늘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담마의 향연이 열리는 곳이다.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이다.
2022-01-29
담마다사 이병욱
'금요니까야모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에 빠진 일곱 종류 사람이 있는데 (0) | 2022.02.06 |
---|---|
나는 매일 죽는 사람 (0) | 2022.01.31 |
육무간업 중에 최악은? (0) | 2022.01.27 |
회의적 의심이란 무엇인가? (0) | 2022.01.25 |
안과 밖이 뒤바뀌는 튜브 뒤집기의 비유 (0) | 2022.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