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3. 18. 10:04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대선이 끝난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직도 뉴스를 보지 않고 있다. 신문은 구독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인터넷 포털 뉴스는 보지 않는다. 컴퓨터를 켤 때 블로그를 첫화면으로 만들어 놓았다. 검색은 구글로 한다. 온갖 번뇌의 온상 유튜브는 수면유도음악 채널만 듣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에스엔에스에서 알리는 것을 종종 보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한달간 보지 않기로 돌려 놓는다. 대안 없이 하소연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라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본래 정치는 가까이해서도 안되고 멀리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가까이하면 타버릴 것이다. 너무 멀리 하면 방관자가 될 것이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타카에도 이런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자주 함께 만나거나,

아예 함께 만나지 않거나,

때 아닌 때에 만남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친구들을 잃게 됩니다.” (Jat.528)

 

 

자타카 528마하 보디의 전생 이야기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이 게송은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친구사이에서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_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과 같다.

 

친구란 무엇일까?

 

친구란 무엇일까? 초기경전에 게송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는 친구가 필요할 때에 친구가 되어주는 자가 친구입니다.”(D31.1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친구인 것이다.

 

술 친구도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니까야에 따르면 술친구는 악우(惡友)에 속한다. 이는 도박과 여자, , 춤과 노래, 낮에 잠자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 것, 악한 친구들이 있는 것, 인색한 것, 이러한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D31.1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술 친구도 친구이긴 하지만 선우가 아니라 악우이다. 술로 인하여 파멸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친구인가?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좋은 친구의 조건에 대하여 도움을 주는 사람,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사람,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연민할 줄 아는 사람”(D31.16)이라고 했다.

 

선우, 즉 좋은 친구 조건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말해준다. 대표적으로 수행도반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친구중의 친구

 

친구중의 친구가 있다. 이를 영어로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라고 한다. 줄여서 베프이다. 우리말로는 절친(切親)이 될 것이다. 절친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나무위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보통 친구끼리는 친목을 다지기 위해 서로 칭찬, 격려의 말을 주고받거나 관심사와 취미를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베프는 그런 거 없다. 이미 친목이 극에 달해있고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칭찬과 격려는 오히려 오글거림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상대방의 성격을 이미 다 꿰뚫고 있기 때문에 온갖 욕을 해대며 서로를 까는 말을 던져도 그게 진짜로 자신을 싫어해서 던지는 말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만약에 길거리에서 서로 욕을 하거나 치고받고 싸우는데 둘 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거의 베프라고 보면 된다.”(베스트 프렌드, 나무위키)

 

 

서로 욕하는 사이라면 베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교친구는 베프가 된다. 이런 베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에 따르면 아무리 마당발이라고 해도 최고의 절친은 5, 매우 친한 친구는 15, 좋은 친구는 35, 일반적 친구는 150-200명이 한계라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뇌가 담을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숫자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친구도 그렇다. 아는 사람만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베프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단순히 친구의 수가 많은 것보다는, 인원수는 적어도 확실한 베스트 프렌드가 생기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설한 우정의 가르침

 

부처님은 우정을 강조했다. 이는 니까야 도처에서 우정의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친구와 관련된 두 개의 경이 있다. 하나는 베스트 프렌드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수행 도반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베스트 프렌드, 절친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1)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2)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3)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4)비밀을 고백하고, 5)비밀을 지켜 주고, 6)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7)가난 할 때 경멸하지 않는다.”(A7.3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우정의 가르침이다. 과연 이런 친구가 있을까? 이런 친구는 절친중의 절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절친중의 절친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마도 수행도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도반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는 “1)사랑스럽고, 2)성실하고, 3)공경받을만 하고, 4)가르침을 주고, 5)충고를 받아들이고, 6)심오한 대화로 이끌고, 7)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다.”(A7.37)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두 종류의 친구를 말씀하셨다. 하나는 베스트 프렌드로서 친구인데 이는 빠알리어로 밋따(mitta)라고 한다. 우리말로 좋은 친구, 선우(善友)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절친중의 절친이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또한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야말로 절친중의 절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종류의 친구는 수행도반으로서 친구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빅쿠밋따(bhikkhumitta)라고 한다.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 심오한 대화를 하는 사이가 이에 해당된다. 담마로 맺어진 사이라면 수행도반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일곱 가지 조건을 갖춘 수행도반이 있다면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A7.37)라고 했다.

 

좋은 친구는 삶의 전부와도 같다. 특히 수행자에게 그렇다. 그래서 설령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심지어 섬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난다는 세존이시여, 이러한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절반에 해당됩니다.”(S3.18)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난다의 말에 대하여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라며 부정했다. 부처님은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S3.18)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은 청정한 삶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에 해당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는 수행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도와 과의 길에 가는데 있어서 친구는 전부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에 스승도 포함될 수 있을까?

 

스승도 도와 길을 간다면 도반이 된다. 따라서 스승도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부처님이 아난다여, 왜냐하면 세존을 좋은 벗으로 삼아, 태어나야 하는 존재가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늙어야 하는 존재가 늙음에서 벗어나며 병들어야 하는 존재가 병듦에서 벗어나고 죽어야 하는 존재가 죽음에서 벗어나며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져야 하는 존재가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난다.”(S3.18)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수행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면 스승도 친구가 되고 부처님도 친구가 된다. 도와 과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르침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스승과 부처님은 수행도반이라고 볼 수 있다. 수행도반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 그래서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A7.36)라고 했다.

 

권력론자(khattavijjavādīn)가 있는데

 

절친이라고 해서 붙어 살아야 할까? 자타카 게송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너무 자주 함께 만나거나, 아예 함께 만나지 않거나, 때 아닌 때에 만남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친구들을 잃게 됩니다.”(Jat.528)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친구를 잃게 되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자타카에서는 너무 자주 만나지 말라고 했다. 자주 만나다 보면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후속게송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면, 사랑스러운 자도 미워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Jat.528)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러므로 너무 자주 가지도 말고, 너무 오래토록 적조하지도 말고, 때맞추어 만남을 요구한다면, 친구들을 잃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Jat.528)라고 했다.

 

자타카에서는 왜 친구와 관계에 대하여 불가근불가원으로 설명했을까? 이는 보살이 전생에 보행사문으로서 삶을 산 것과 관련이 있다. 보살이 사문으로서 왕을 보좌했는데 대신들이 모함하여 쫓아 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보살은 왕에게 대신들은 외도의 사견을 추종하는 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견 중에는 권력론자(khattavijjavādīn)’도 있었다는 것이다.

 

권력론자란 무엇일까? 이는 권력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주의를 말한다.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하여 부모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를 죽일 수 있음을 말한다.

 

부모를 살해하면 무간업을 짓게 된다. 극악무도한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간극지옥이이라는 무간지옥에서 한우주기 동안 암흑속에서 보내야 한다. 그런데 권력론자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부모를 살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라면 정적에 대하여 중상과 모략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론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이 세상에 권력론자들이 있는데,

어리석으면서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또한 나이든 형도, 처자도 죽이려 한다.”(Jat.528)

 

 

보살은 권력론자들에 의해서 희생되었다. 보살이 사문으로 삶을 살았을 때 재판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등으로 인기를 얻게 되자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대신중에 권력론자가 있었는데 사문을 모함한 것이다.

 

권력론자 대신들은 뇌물을 받았다. 뇌물을 받고 소유자를 소유자가 아닌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사문으로 인하여 그들은 뇌물을 받지 못해서 이익이 줄어 들었다. 그래서 정당하게 재판하는 사문을 제거해야만 했던 것이다. 왕과 사문 사이를 이간질하여 죽이려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눈치 챈 보살은 왕을 떠나고자 한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보살은 사문으로 살 때 왕과 관계가 깊어서 대신들로부터 모함을 받았다. 대신들은 권력론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면 부모도 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왕과 너무 멀리 해서는 안된다. 왕의 자문에는 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서는 불가근불가원, 즉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했을 것이다.

 

권력론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까지 살해할 사람들이다. 하물며 일반사람들에게는 어떠할까? 그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하여 소유주가 바뀌게 할 수 있다. 또한 유죄를 무죄로 만들 수 있고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권력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권력에 가까이 있으면 타버릴 것이다. 권력과 멀리 있으면 방관자가 될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면 마음이 타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멀리하면 무책임한 방관자가 될 것이다.

 

정치는 가까이하지도 않고 멀리 해서는 안된다. 선거 때가 되면 투표를 하는 것은 정치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정치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촛불을 들어야 할 때는 촛불을 들 것이다.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는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베스트 프렌드라고 해도 가까이 있으면 소원해지기 쉽다. 왜 그럴까? 결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연애하던 연인이 결혼에서 살다보니 결점만 보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자타카에서 보살은 권력론자에게 모함을 받았다. 보살은 왕을 떠나면서 너무 자주 함께 만나거나, 아예 함께 만나지 않거나, 때 아닌 때에 만남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친구들을 잃게 됩니다.”(Jat.528)라고 했다. 친구사이에서도 불가근불가원 관계가 적용되어야 함을 말한다.

 

 

2022-03-1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