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자타카는 한국불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

담마다사 이병욱 2022. 3. 21. 12:49

자타카는 한국불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

 

 

마침내 자타카 교정을 완료했다. 교정본 3권과 4권을 택배로 받은지 13일만의 일이다. 그 동안 집과 사무실에서 밤낮으로 보았다. 중요한 부위는 노랑 형광메모리칠을 했다. 그리고 새겨야 할 것은 카메라로 찍어 두었다.

 

 

자타카는 이제까지 본 경전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사부니까야는 부처님의 말씀이어서 형식을 갖춘 진리의 말씀이지만 자타카는 보살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갖가지 세상사에 대한 것으로 가득하다.

 

사부니까야가 출세간적인 것이라면 자타카는 세간적인 것인지 모른다. 사부니까야에서는 볼 수 없는 도둑놈, 사기꾼, 음행녀 등 온갖 인간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 놓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꾸날라의 전생이야기’(Jat.536)일 것이다.

 

꾸날라의 전생이야기는 보살이 꾸날라 새로 살았을 때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꾸날라의 법문을 떠 올려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하여 여자를 갖는 것에 대한 해악이라고 했다.

 

여자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자타카에서 여자는 부정적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어느 정도일까? 수많은 게송 중에 기회를 얻기만 하면, 모든 여자들은 악을 짖는다.”(305)라든가, “나루터와 같은 여자들을 믿지 말라.”(307)라는 게송이 있다. 오늘날 여성주의자들이 보면 격하게 분노할 것이다.

 

 

여자들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고, 나무 그늘처럼 위아래로 간다.”(314) “여자들은 배가 이 쪽 저 쪽 언덕에 대듯,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자 모두 섬긴다.”(317) “여자를 믿지 마라. 아내가 극도로 사랑스럽더라도, 믿지 마라. 여자들이란 나루터와 같기 때문이다.”(327) “그녀들에게는 거짓이 진실이고, 그녀들에게는 진실이 거짓이다.”(329) “그녀들은 몸매와 응시와 미소로 유혹한다.”(330) “세상의 여자들은 나쁘다. 그녀들에게는 한계가 없다.”(332)

 

 

여기 소개한 구절은 일부분에 대한 것이다.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수많은 게송이 있다. 한마디로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틈만 나면 바람 피우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타카 게송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에서 여자라는 존재는 악녀와 같다. 그러나 이는 방편으로 언급된 것이다. 세속에서 욕계를 살아 가는 중생들에게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자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욕계세상은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사람들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는 한 자타카에 언급되어 있는 갖가지 인간군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된다. 여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자는 더 심하다. 욕망으로 형성된 세계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여자에게 관심두지 않는다면

 

자타카에서 여인에 대한 게송을 보면 여인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자극적이고 직접적이다. 이렇게 묘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새김이 확립되지 않는 자들을 사로잡는다.”(349)라고 한 것과 여인은 방일한 자들에게 모여드니”(351)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보살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여자에게 관심두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온갖 괴로움을 뛰어넘는

지복, 구경, 부동, 무위를 적멸과

청정을 통해 얻는 것도 어렵지 않다.”(366)

 

 

청정한 삶에 있어서 감각적 욕망은 최대의 적이다. 그 중에서도 여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가 최대의 적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성으로 되어 있는 욕계에서 청정한 삶을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것 같다.

 

식인귀 이야기

 

교정본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쑤따 쏘마의 큰 전생이야기’(Jat.537)에 대한 것이다. 무려 32페이지에 달한다. 그것도 2단 칼럼으로 되어 있어서 60페이지 이상 될 것이다. 하나의 중편소설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긴 이야기도 있다.

 

자타카 대미를 장식하는 벳싼따라의 전생이야기’(Jat.547)가 있는데, 무려 89페이지에 달한다. 역시 2단 칼럼이기 때문에 200페이지 가까이 될 것이다. 하나의 장편소설과 같다. 이렇게 길어서일까 미얀마본에서는 547번 경만 별도로 떼어내어서 제7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537번 경을 보면 식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왕이 인육을 먹는 것이다. 그것의 발단은 요리사가 고기가 없어서 인육을 주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왕은 인육인지 모르고 고기를 먹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가 그 고기를 먹자 전신이 요동쳤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어찌 이리 맛있을까?”라고 했다. 인육의 맛을 보자 맛에 빠져 든 것이다. 왕은 전생에 야차였던 것이다.

 

전생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왕은 요리사가 인육고기를 주자 전생의 기억이 살아났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 고기조각이 왕의 혀끝에 놓이자 마자, 왕의 7천 미각신경을 자극해서 왕의 온 몸을 흔들었다. 무슨 까닭인가? 전생에 그의 버릇 때문이었다. 그는 전생에서 야차로서 많은 인육을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Jat.537)

 

 

왕은 오로지 인육만 먹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나 잡아먹었다. 이런 왕의 행태는 알려졌다. 결국 왕은 쫓겨났다. 전생에 야차처럼 살았던 것처럼 숲에 들어가 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인육왕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도 전생에 보살로 살았을 때 왕이었다. 둘은 학창 시절 친구였다. 딱까실라에서 온갖 학예를 배우던 사이였던 것이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몸을 던질 수 있어야

 

보살은 인육을 먹는 친구를 구제하기로 했다. 그래서 사람고기 맛을 알아 버린 친구를 교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먹이가 되기로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알 수 있다.

 

 

지상에서 어떠한 맛난 것이라도

그들 가운데 진실보다 맛난 것은 없다.

수행자나 성직자는 진실에 입각하여

삶과 죽음의 저편으로 뛰어넘는다.”(429)

 

나는 갖가지 선업을 행했다.

내가 지낸 제사는 칭찬받았다.

후회를 여의고

나는 저 세상으로 가리.

그러니 희생제를 치루고

그대 식인귀여, 나를 잡아먹어라.”(432)

 

 

보살은 죽음 앞에서 당당했다. 이는 갖가지 선업을 행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저 세상에의 길은 정화되었으니 진리에 서서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리.”(431)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이런 선언은 진실바라밀(sacca-pāramī)’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십바라밀 중에 진실바라밀이 있다. 이는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의 기관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고, 그들의 생명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다.”라고 설명된다.

 

진실바라밀에서 승의적 바라밀은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보살은 식인귀가 된 전 친구의 교화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던지고자 한 것이다. 기꺼이 식인귀의 먹이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보살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이는 선업공덕과 관련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보시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했다.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은 만족해했다. 저 세상에의 길은 정화되었다. 진리에 서서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리?”(437)라고 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말이 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몸을 던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초월의 길을 가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저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보살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세상에의 길은 정화되었다.”라고 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보살은 식인귀가 되어 버린 친구에게 자신을 잡아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식인귀는 보살을 잡아먹을 수 없었다. 이는 보살이 진실을 말하는 자를 잡아 먹으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갈라지리.”(439)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맹독의 뱀을 알면서 독을 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식인귀는 진실을 말하는 보살을 잡아먹을 수 없었다. 이에 보살은 참사람과 함께 사귀어라. 참사람과 교류하라. 참사람의 바른 원리를 알면, 악을 여의고 더욱 착해지리.”(442)라며 교화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법구경 게송을 인용한다.

 

 

화려한 왕의 수레도 낡아가고

또한 사람의 몸도 늙어 가지만,

참사람의 진리는 늙지 않는다.

참사람이 참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다.”(444, Dhp.151)

 

 

여기서 참사람의 원리(satañca dhamma)는 구출세간법이다. 사향사과와 열반을 말한다. 가르침을 따르는 자에게 있어서 참사람의 진리는 어떠한 위험도 초래케 하지 않고 세대를 초월해서 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는 늙거나 부패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타카 교정을 완료하고

 

자타카 교정본 네 권을 다 보았다. 본래 자타카는 6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번역을 하면 6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이를 단권으로 했다. 그러다 보니 2천 페이지 가까이 된다. 그것도 2단 칼럼으로 배치한 것이다.

 

자타카는 내용이 방대하다. 아마 상윳따니까야 정도 될 것이다. 상윳따니까야는 낱권으로 7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본에서는 547번 경을 별도로 떼어서 7권을 만들었다고 하니 상윳따니까야 처럼 7권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자타카 교정작업을 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다. 그것은 방대한 자타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보았다는 것이다. 번역자를 제외하고 교정자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 남전대장경을 중역한 자타카는 있다. 그러나 빠알리원문을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주석까지 번역하였다. 이와 같은 방대한 자타카를 번역한 전재성 선생의 노고는 놀라운 것이다. 그것도 만 3년가량 번역한 것이다. 번역된 것을 보면 불가사의한 느낌이 든다. 읽어 내는 것도 힘이 들지만 번역자의 노고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자타카는 한국불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

 

자타카는 조만간 출간될 것이다. 아마 올 상반기는 넘지 않을 것이다. 자타카가 출간되면 한국불교에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또하나의 새로운 경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부니까야와 다른 것이다.

 

사부니까야가 출세간적인 것이라면 자타카는 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이는 보살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생담에서 출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오늘날 말하는 승가개념의 출가와 다른 것이다. 히말라야 산록에서 선인으로 사는 것을 출가라고 말한다.

 

자타카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때로 우화나 동화의 출처 또는 근거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세상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마치 여자를 폄하하는 듯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그때 당시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말한 것이기도 하다.

 

자타카에서 여성 폄하에 대한 것이 있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세속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이 다름아닌 욕계세상이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로 성이 구분되어 있다 보니 애욕과 관련된 것이 많다.

 

미얀마에서는 자타카의 인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는 재가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자타카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마침내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완역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마 한국불자들이 좋아하게 될 경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불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누구든 내가 좋아한다.’라고

좋아하는 것을 바라고,

자신을 해치고 좋아하는 것을 섬기면,

술꾼이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으니,

그는 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으리라.”(459)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어렵더라도 고귀한 진리를 섬기면,

환자가 약초를 마시는 것과 같으니,

그는 저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리라.”(460)

 

 

2022-03-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