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자타카 교정작업을 하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3. 16. 07:39

자타카 교정작업을 하며


나에게 새벽시간은 황금시간대이다. 멍때리기 하며 앉아 있기 보다는 암송 위주의 시간을 갖는다. 새벽시간은 게송 외우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빠다나경 14번째 게송을 외웠다. 생소한 단어가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어 설명과 함께 사진 보듯이 빠알리 원문을 떠올리고자 한다. 짧은 사구게는 수십번 반복하다 보면 떠 오르게 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전 게송과 결합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전에 외운 1번부터 13번 게송까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면 어떤 긴 길이의 경도 외울 수 있다.

새벽시간은 글쓰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메모앱을 이용한 글쓰기로서 엄지로 치는 것이다. 데스크탑 자판 두드리는 것과 별반 차이 없다. 자주 쓰다 보니 생각이 모니터에 팍팍 꼽히는 것 같다.

요즘 자타카 교정 작업 중에 있다. 1권과 2권은 마쳐서 보냈고 현재 3권과 4권 작업 중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3권은 사무실에서 보고 4권은 집에서 본다. 4권이 마지막 권이지만 통합되어 단권으로 출간된다. 교정본 4권 말미를 보니 1,950페이지로 거의 2천 페이지에 달한다. 그것도 2단 컬럼으로 되어 있다. 출간되면 폰트 사이즈는 더 작아지고 종이 두께는 더 얇아 질 것이다.

 


자타카는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로서 삶을 살았을 때 보살행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길어져서 마치 하나의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하다. 마치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요즘말로 하면 '스토리텔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타카는 총 54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큰 흐름은 보살의 빠라미(바리밀)에 대한 것이다. 빠라미에 대하여 '완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초월의 길'로 번역했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타카에서는 열 가지 초월의 길, 즉 십바라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자타카는 인연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토리텔링 식으로 진행되지만 도중에 게송으로도 강조된다. 법화경도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데 자타카의 형식을 빌어 온 것 같다.

이번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자타카를 완역했다. 출간을 앞두고 교정작업 중에 있다. 그런데 완역된 것을 보면 주석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사부니까야는 물론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 등 경장에서 보던 문구와 연계하여 설명해 놓기도 하고 율장과 관련된 것도 있어서 자타카를 읽다 보면 마치 이전에 읽었던 것을 복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타카는 보살의 전생 이야기이도 하지만 고대 인도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 우화나 동화 형식으로 표현된 것도 있지만 십바라밀행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는 초월의 길에 대한 것이다. 생을 거듭하는 것 자체가 바라밀 공덕을 쌓는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보살의 수많은 전생 이야기가 있다. 사아승지겁 하고도 십만겁의 보살행을 했지만 자타카에는 547개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생 한생 살 때 마다 초월의 길로 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읽다 보면 기억해 두고 싶은 구절이 있다. 이럴 때는 노랑 형광메모리 펜으로 칠해 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놓는다. 나중에 글 쓸 때 참고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은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자타카에서는 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 부처가 될 때까지 사아승지 하고도 십만겁을 반복하는데 초월의 길을 가는 보살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일까?

자타카 509번에 핫티빨라의 전생이야기가 있다. 보살이 왕립사제의 아들로 삶을 살았을 때에 대한 이야기로 출리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보살은 나이가 16살 되었을 때 학예를 마치고 출가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모는 성년이 되었을 때 출가하라고 만류한다. 이에 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뭇삶들은 젊을 때나 늙을 때나 죽는다는 것은 매한가지 아닐까요? '이 자는 젊을 때 죽을 것이다. 저 자는 늙을 때 죽을 것이다.'라는 표지가 어떠한 자의 손이나 발에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죽을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출가하겠습니다."(자타카 509)

핫티빨라는 청소년 시기에 출가했다. 바라문 인생사주기에 따르면 가주기를 거쳐서 임서기와 유행기를 보내야 하지만 앞당긴 것이다. 출가하면 히말라야에서 선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타카를 보면 출가이유가 분명하다. 그것은 "저는 제가 죽을 때를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말한다. 또한 때는 지나가고 세월은 지나친다. 젊음의 시절은 점차 우리를 버린다.”(자타카 509)라고 하여 세월이 덧없음을 노래했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는 가주기의 삶을 살다가 노년에 출가해도 늦지 않다는 말을 부수는 것이 된다.

자타카에는 야차가 종종 등장한다. 인비인으로 귀신이나 도깨비와 같은 이미지이다.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야차 식별법도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눈을 깜박이지 않고, 눈이 붉고, 두려움이 없고, 그림자가 없고, 연민이 없는 것으로 그것을 압니다."(자타카 546)

야차의 특징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묘사되어 있다.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다.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인조인간 안드로이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에이아이의 경우 눈물이 없기 때문에 눈을 깜박이지 않을 것이다. 눈물이 없다는 것은 연민도 없음을 말한다.

야차는 눈이 벌겋다고 한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악마를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야차는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저급한 신적 존재로서 인간 주변에 살며 인간을 해치는 존재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타카는 교훈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 사가타상윳따에 실려 있는 게송을 인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대왕이여 오늘 해야 할 일을 '내가 내일 하겠다.'라고 말 해서는 안됩니다."(자타카 509)라는 말 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게송으로 정리했는데 다음과 같다.

"
사람들은 내일이 남았다고
다음날이라고 부질없이 보낸다.
그 미래는 없는 것이라고 안다면,
어떤 현자가 생겨난 기회를 놓치리."(자타카 509)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선한 일은 오늘 바로 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자타카에서는 법구경 게송 하나를 인용하는데 같은 내용이다. 법구경에서는 "선한 일에 서두르고 악으로부터 마음을 지켜라. 공덕있는 일에 게으르면 마음은 악한 것을 즐긴다."(Dhp.116)라고 되어 있다.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자."라는 말이다. 스님들이 법문 할 때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전에 있는 말이다.

법구경에서는 "선한 일은 서두르라."라고 했다. 착하고 건전한 일은 즉각적으로 서둘러 행해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자타카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더 절박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은 없다'든가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욕계 세상을 하루 빨리 떠나라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출가를 말한다. 한시라도 젊었을 때 출가하여 선인의 삶을 살아서 천상에 태어나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핫티빨라에 의해서 온 도시 사람들이 출가 했다.

도시는 텅텅 비었다. 출가한 자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공부하는 사람은 누가 도와주어도 도와주게 되어 있다. 출가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석천이 거처와 먹을 것을 마련해 준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이와 같이 핫티빨라의 가르침은 지옥, 축생, 아귀, 그리고 아수라의 삶을 닫아 버렸다."(자타카 509)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악처는 비고 그 대신 천상이 꽉 차게 된 것이다.

 


자타카는 내용이 방대하다. 2단 컬럼에 2천페이지 가까이 되고 주석이 빼곡히 되어 있는 경전을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날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밤낮으로 보고 있다. 3주 이상 걸리는 것 같다. 교정을 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준 전재성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2022-03-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