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청년붓다 오프닝 테마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1강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12. 12:20

청년붓다 오프닝 테마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 1강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강연을 잘 하는 사람도 그렇다. 한번도 교단에 서 본적이 없다. 언젠가 단체에서 법문을 요청했을 때 적극적으로 피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고미숙 선생의 유튜브 강연을 들었다. 청년 붓다에 대한 것이다. 48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강연하는데 8차례 예정되어 있다. 그 첫번째 강연을 유튜브로 본 것이다.

 

 

비공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본래 줌으로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 전재성 선생의 금요니까야모임과 겹쳤다. 강연신청을 했기 때문에 Gmail 주소를 알려 주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다만 1주일 공유된다. 비공개 유튜브 영상이기 때문이다.

 

고미숙 선생의 청년붓다는 매주 48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진행된다. 수강신청자에 한해서 볼 수 있다. 대면으로는 20명이 한정이다. 나머지는 줌으로 보아야 한다. 줌으로 보지 못했을 경우 지메일(Gmail)주소로 비공개 영상을 공개하는데 1주일 이내에 보아야 한다.

 

비공개 동영상을 일하면서 보았다. 사무실에 컴퓨터가 두 개이고 모니터가 두 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쪽 모니터에서는 작업을 하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귀로 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노트를 했다. 동시에 세 가지 일을 한 것이다.

 

 

세 가지 일이 가능한 것은 라우팅이 단순작업이기 때문이다. 패턴을 그리는 작업은 아무 생각없이 해도 된다. 그래서 두 눈으로는 작업을 하고 두 귀로는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필기까지 했다. 후기를 쓰기 위한 것이다. 마치 속기처럼 휘날려 쓴 노트를 보니 15페이지가 된다.

 

 

노트한 것을 주욱 읽어 보았다. 노랑형광메모리 칠을 하면서 읽은 것이다. 이런 태도는 글쓰기에 있어서 늘 있는 일이다. 어느 강연이나 강의, 법문을 보고 들을 때도 항상 메모한다. 전재성 선생의 금요니까야 모임 두 시간 때도 쓰기에 바쁘다. 쓴 것을 바탕으로 후기 작성한다.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

 

감히 고미숙 선생은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청년붓다 첫 강연도 그랬다. 본 강연은 1시간 38분이었지만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되었다. 그것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아마 전달하는 능력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십년 쌓이고 쌓인 결과에 대한 것으로 본다.

 

고미숙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 확실히 남는 것이 있다. 절대 시간 낭비로 생각하지 않는다. 듣다 보면 무어라도 하나 건진다. 그래서 열심히 필기하는지 모른다. 이번 유튜브 비공개 강연도 그랬다.

 

고미숙 선생은 첫 강연 때 원고를 보지 않고 30여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것은 그만큼 역량이 축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내공과도 관련 있다고 본다. 쓰는 것과 달리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또한 진실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때 걸림이 없고 거침없을 것이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이번 청년붓다 8차례 강연의 테마는 무엇일까? 이는 원고를 보지 않고 30여분 동안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고미숙 선생은 먼저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하나의 게송을 소개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70)

 

 

숫따니빠따 무소의 뿔경’(Sn.1.3)에 실려 있는 37번째 게송이다. 짤막한 사구게로 이루어져 있는 이 게송은 청년붓다 오프닝 테마와 같은 것이다. 마치 청정도론에서 매듭의 경’(S1.23)이 오프닝 테마인 것과 같다.

 

연속극을 보면 주제가가 있다. 청정도론에도 주제가가 있다. 그것은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라는 게송을 말한다.

 

청정도론 제11절에 나오는 오프닝 테마는 논서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마칠 때 또 한번 언급된다. 방대한 청정도론을 관통하는 것은 매듭의 경에 있는 하나의 게송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청년붓다 8강의 오프닝 테마는 숫따니빠따 70(Stn.70)이 되는 것 같다.

 

숫따니빠따 70번 게송은 고미숙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고미숙 선생은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한구절한구절 설명했다.

 

예순 두 가지 그물코를 가진 그물에 사로 잡혀

 

게송에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 선생은 자유로 설명했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그 어떤 것에서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움을 말한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자면 견해의 자유일 것이다.

 

수많은 견해가 있다. 대표적으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를 들 수 있다. 숙명론, 운명론, 우연론도 견해에 해당된다. 견해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될 것이다.

 

디가니까야 1번경이 있다. 경의 제목은 하느님의 그물의 경이다. 부처님은 견해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어떠한 수행승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한다면, 모두가 이러한 예순 두 가지 그물코를 가진 그물에 사로 잡혀, 거기서 빠져나가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 할수록, 거기에 갇힌 채 그물에 조여 발버둥 치게 될 뿐이다.”(D1.141)라고 했다.

 

견해에 그물에 갇혀 있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디가니까야에서는 이를 62견으로 설명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견해를 총망라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모든 견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는 갈애로부터 자유로움을 말한다. 다름 아닌 욕망으로부터 자유이다.

 

최상의 지혜에서 나오는 당당하고 의미 있는 선언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두려움 없음으로 설명했다. 사자는 백수의 제왕이기 때문에 어떤 소리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자의 경에서도 확인된다.

 

상윳따니까야에 사자의 경이 있다. 경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모든 짐승들은 짐승의 왕인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 대부분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S22.78)라고 했다. 그리고 동굴에 사는 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물에 사는 자는 물에 들어가고, 숲에 사는 자는 숲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S22.78)라고 했다. 이것이 사자후(獅子吼)이다.

 

사자후란 무엇일까? 사자의 포효의 뜻이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의미할 때는 최상의 지혜에서 나오는 당당하고 의미 있는 선언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자후를 들으면 처음에는 두렵고, 그 다음에는 전율이 오고, 마지막으로는 감동의 물결이 일어난다.

 

부처님의 사자후를 들었을 때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중생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 등 견해에 빠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부자일수록 두려움이 크고 지위가 높은 자일수록 두려움이 클 것이다. 왜 그런가? 부와 지위가 오래 가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사자후는 겁단위로 오래 사는 천신일수록 두려움이 더 컸다. 천상에서 영원히 살 줄 알았는데 윤회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상황은 반전된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면 할수록 전율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영원한 존재는 아니지만 해탈과 열반으로 이끄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똥은 조금만 묻어도 악취가

 

게송에서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같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 선생은 욕망으로 설명했다. 특히 자본주의 욕망과 관련 지어서 설명했다. 자본주의 따른 욕망의 늪, 자본주의 수렁에 빠졌을 때 흙탕물에 더렵혀진 것으로 본 것이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지만 더럽혀지지 않는다. 부처님도 이 세상에 살았지만 더럽혀 지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 꽃의 경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가 물속에서 생겨나 물 속에서 자라 물위로 솟아올라 물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S22.94)라고 했다.

 

똥은 조금만 묻어도 악취가 난다. , , 치로 살아가는 중생의 세상은 마치 악취나는 오물장과도 같다. 오늘날 황금만능주의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와 같은 오물장과 같은 세상에 살아도 물들지 않는다고 했다.

 

연잎에는 물방울이 머물러 있지 않다. 깨달은 자가 번뇌에 물들 수 없다. 그래서 “마치 아름다운 흰 연꽃이 물에 오염되지 않듯이, 당신은 공덕과 죄악, 둘 다에 물들지 않습니다.”(Stn.547)라고 했다. 마음의 오염원을 소멸시킨 자는 어떤 더러운 곳에 있어도 오염되지 않음을 말한다.

 

고독한 수행자가 되어야

 

마지막으로 무소의 뿔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화폐를 예로 들었다. 옛날에는 신에 의지했으나 요즘에는 돈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가 신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무소는 혼자 다닌다. 더구나 외뿔이다. 수행자도 홀로 다닌다.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음을 말한다. 만약 그가 다른 것에 의지하고자 한다면 그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있다.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나 또는 이혼했을 때 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외로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말과 같다.

 

수행자는 외로움을 타서는 안된다. 수행자는 고독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의지해야 함을 말한다. 외로운 자는 타인을 의지처로 하지만 수행자는 자신의 내면을 의지처로 한다. 그래서 고독한 수행자라고 한다.

 

가장 고층경전으로 알려져 있는 숫따니빠따는 부처님이 청년시절 유행에 대한 것이 많다. 그런 부처님의 이미지는 고독한 수행자상이다. 이를 경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70)라고 했다.

 

가르침의 바다는 너무나 넓고도 깊어서

 

고미숙 선생의 강연을 다 쓸 수 없다. 비공개 동영상으로 한번 듣고 노트한 것을 한번 더 보았다. 그리고 글로서 정리해 보았다. 강연을 들으면 세 번 듣는 것과 같다. 마치 여행 갔을 때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하여 후기를 작성한 것과 같다.

여행후기를 작성하면 여행을 두 번 가는 것과 같다. 강연을 듣고 노트한 것을 보면 강연을 두 번 들은 것과 같다. 후기를 쓰면 세 번 듣는 것과 같다.

 

이번 고미숙선생의 청년붓다 8강의 오프닝테마 게송은 숫따니빠따 70번 게송으로 본다. 고미숙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대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걸림 없는 삶이고 대자유의 삶이다. 그래서일까 질의응답시간에 어떤 제도권 종교에도 구속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부처님의 지적 욕구가 매력적이어서 불교가 좋다고 했다. 그런 부처님에 대하여 모든 인류의 스승이라고 했다.

 

부처님 그분은 모든 사상과 종교를 아우르는 위대한 스승이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에 매료되어서 십년 이상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전재성선생의 금요니까야모임에 5년동안 참여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바다는 너무나 넓고도 깊어서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매일 니까야를 읽고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게송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고 있다. 이번 고미숙 선생의 8강으로 건질 것이 많을 것 같다.

 

 

2022-04-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