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하니 세상이 변했다
일터로 돌아왔다. 칠일만이다. 사무실에는 식물들이 반겨 주는 것 같다. 일주일 보지 않았을 뿐인데 잘 자란 것 간다. 여인초는 커다란 잎이 말아진 것이 펴진 것이 많다. 본격적으로 자라는 것 같다.
홍콩대엽야자는 새순이 삐죽 튀어나왔다. 조만 간에 커다란 잎이 될 것이다. 물만주어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조만간 천정을 칠지 모르겠다. 인도고무나무는 두껍고 넓고 윤택 있는 잎이 열대식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지 끝에는 빨간 침 같은 것이 있어서 잎으로 변한다. 그러니 무어니무어니해도 난초 꽃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백운이라는 이름의 난꽃이 절정을 맞았다. 세 갈래로 꽃대가 형성되어서 생전 처음 보는 화사한 꽃을 선보이고 있다. 난이 여섯 개이다 보니 줌모임 할 때 배경으로 그만이다. 의자 뒤에 책장 위에 있다. 경전과 난이 잘 어울려서 최상의 배경화면을 만든다.
오랜만에 자리에 앉았다. 그래보았자 칠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래 된 것 같다. 이렇게 갈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오미크론 확진 후 일주일 동안 집에 갇혀 있었는데 일터에 오니 살 것 같다. 사람은 확실히 자신의 자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비록 홀로 쓰는 공간이지만 앉아 있으니 제자리에 온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잘 먹어야 한다. 오미크론 확진되고 나서 밥맛을 잃어 버렸다. 불타는 목이 되었을 때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므로 보양이 되는 음식을 먹고자 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설렁탕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무실 근처에 한촌설렁탕집이 있다. 기운이 없을 때 종종 먹는 곳이다. 일감이 있을 때 힘을 내기 위하여 먹기도 한다. 오늘은 오미크론 격리 해제 기념으로 먹고자 했다. 가격은 칠천원이다. 싸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이번 오미크론 감염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평소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홀로 일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러나 어디서 왔는지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왔다.
먼저 아내가 확진 되었다. 다음날에 내가 확진 되었다. 어쩌면 둘 다 확진 된 것이 다행인지 모른다. 한사람만 확진 되었다면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태는 달랐다. 아내는 비교적 약하게 왔지만 나의 경우에는 세게 걸렸다. 그 결과 아내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격리기간 동안 맞지마니까야를 읽었다. 맛지마니까야 31번경을 보면 승가공동체에서 탁발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각주를 보면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되고 율장에서도 발견되는 유명한 문구라고 한다. 어떤 것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치우고 남은 음식을 넣는 통을 치우고 식당을 청소합니다. 그리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단지나 배설물 단지가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우면, 손짓으로 두 번 불러 손을 맞잡고 치웁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M31)
아누룻다 존자가 말한 것이다. 승가공동체에서는 역할 분담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탁발 같다 온 사람이 밥 먹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중에 오는 사람은 뒷정리를 한다. 이와 같은 역할분담은 승가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집안에서도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중에 오는 사람이 설거지 등 뒷정리를 하는 것이다. 동거인이라면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다툼이 일어날 수 없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임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맛지마니까야 31번경에서는 부부일심동체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비록 승가공동체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부부사이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가르침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에게 여럿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31)
아누룻다 존자는 승가공동체가 한마음임을 강조했다. 경에 따르면 아누룻다, 난디야, 낌발라 존자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모두 한마음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존재가 어떻게 한마음이 가능할까? 이는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고 있습니다.”(M31)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물과 기름은 혼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과 우유는 혼합된다. 승가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살 때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라면 한마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물과 우유의 관계가 될 때 한마음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이 가능 하려면 자신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M31)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전 글쓰기에서 ‘하인과 같은 남편’이 되겠다고 했다. 금요니까야모임에서 ‘일곱 종류의 아내의 경’(A7.63)을 합송하고 느낌을 적은 후기에서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그에서 어떤 이가 댓글을 달았는데 삼십년전쟁을 종식했다는 구절에서 ‘빵터졌다’고 했다.
부부사이가 물과 우유의 관계가 되기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자신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을 내 세웠을 때 물과 기름의 관계가 된다. 그래서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드라마 제목이 ‘사랑과 전쟁’인 이유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경전을 근거로 글쓰기를 하는 입장에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한다. 특히 아누룻다 존자가 말한 대목에서 감명받아서 실천해 보고자 했다. 먼저 집에 온 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자신이 변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년 가까이 되었다. 그 결과 서로 달라졌다. 예전의 긴장과 갈등관계가 아닌 것이다.
불교공부를 하면 무언가 향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글로서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 가장 먼저 가정에 적용해 보고자 했다. 그 결과 삼십년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하인과 같은 남편이 되고자 선언했다. 이는 과거 나자신 위주로 산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크다.
이번 오미크론 격리기간 중에 서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함께 살고 있지만 팔계를 준수하며 살고 있는 입장에서 좋은 친구로 지내고자 한다. 앞으로 좋은 수행도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내가 변하니 세상이 변한 것을 확인했다.
2022-04-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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