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을 암송하면 천신이 감응한다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암송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암송하면 전혀 다른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전과 이후가 확실히 다른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25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자가 넘는 긴 경이다.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는 마라(악마)에 맞서 싸우는 보살의 영웅적인 승리에 대한 기록이다. 경을 암송하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에 처한 것 같다.
암송은 경전을 보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암송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을 외워야 한다. 빠다나경의 경우 외우는데 66일 걸렸다. 이렇게 힘들게 외운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하루에 두 세차례 암송한다.
암송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머리속으로 암송하는 방식이 있고 소리내서 암송하는 방식이 있다. 사람들이 있거나 조용한 곳에 있을 때는 마음 속으로 암송한다. 그러나 행선을 하거나 걸어 갈 때는 소리내서 하는 것이 좋다.
흔히 암송할 때는 소리내서 하라고 한다.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듣고 암송하면 일종의 자아 도취에 빠져서 잡념이 치고 들어올 수 없다. 스님들이 목탁치며 암송할 때도 소리내서 암송한다. 될 수 있으면 큰 소리로 암송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주변여간상 나직히 작은 소리로 읊는다.
경을 암송하면 감응한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 예를 들어 천신이 알아들음을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천신도 그 경을 암송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문으로 암송하라고 말한다. 우리말 번역문 보다는 원문으로 암송해야 감응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빠알리 원문으로 암송한다.
천신이 감응한다는 이야기는 허구일까?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초기경전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그때 재가의 여자 신도인 벨루깐다끼야 난다마따가 날이 밝자 일어나 피안으로 가는 길을 암송하고 있었다. 그때 대왕 벳싸바나가 무언가 할 일이 있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대왕 벳싸바나는 재가의 여신도 난다마따가 피안으로 가는 길을 암송하는 것을 들었다. 들으면서 암송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서 있었다.”(A7.53).
피안으로 가는 길은 숫따니빠따 제5품에 살려 있다. 부처님 당시부터 암송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천신이 감응하는 장면이 있다. 사대왕천에서 북방을 담당하는 벳싸바나 대왕(多聞天王)이 들은 것이다.
벳싸바나 대왕은 난다마따의 암송을 듣고 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경의를 표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경을 암송하면 천신과 감응할 뿐만아니라 천신이 보호해줌을 말한다.
벳싸바나 대왕은 부처님에게 부처님의 담마를 수호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디가니까야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수행승들과 수행녀들과 재가의 남자신도들과 재가의 여자신도들이 수호되고 보호되고 해코지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존께서는 아따나띠야 보호주를 수용해 주십시오.”(D32)
이와 같은 벳싸바나의 간청에 부처님은 침묵으로 허락했다. 벳싸바나는 부처님의 담마를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된 것이다.
벳싸바나 대왕이 지키고자한 것은 야차 등 비인간의 해코지에 대한 것이다. 귀신이나 도깨비 등 인간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수행승이든, 수행녀이든, 재가 남자신도이든, 재가의 여신도이든 이 수호주 아따나띠야를 잘 익혀서 완전히 외우고 있는데, 만일 비인간, 곧 야차나 야차녀,… 사악한 마음으로, 수행승이나 수행녀나 재가 남자신도나 재가의 여신도가 가면 따라서 가고, …”(D32)
대왕이 말한 것은 아따나띠야 수호주를 말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한 담마는 모두 수호주가 된다. 실제로 테라와다 삼경이라 일컫는 라따나경, 멧따경, 망갈라경은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이와 같은 수호경은 예불할 때 뿐만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암송된다.
경을 암송할 때는 의미를 새기면서 해야 한다. 의미도 모르면서 빠른 속도로 내뱉는 것은 효과가 없음을 말한다. 천신과 감응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수호되지도 못할 것이다. 이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각주에서 "의취를 빠알리 문장에 틀리도록 완전히 충분히 알지 못하고 외우는 경우 보호주로서 효력이 없다. 완전히 충분히 알고 외우는 경우 보호주의 위력이 있다."(KPTS본 각주)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경을 암송할 때 어떤 이익을 바라고 외워서는 안된다. 소원성취를 위해서 외운다면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각주를 보면 "이득에 의해서 배우고 외우는 경우에도 의취는 성취되지 않는다. 욕망의 여윔(出離)의 측면에서 자애를 선구로 하면, 외우는 자의 의취가 성취된다."(KPTS본 각주)라고 했다.
오늘 새벽 빠다나경을 소리내서 암송했다. 빠알리 원문이지만 뜻을 새기면서 천천히 암송했다. 어쩌면 천신이 감응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사대왕천의 하루는 인간 200년에 해당된다. 사대왕천의 벳싸바나 대왕은 500천상년으로 인간으로 따지면 수명이 9백만년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언어로 암송했을 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경을 암송해 왔다. 그런 사람들이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천상의 수명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천상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천상의 존재가 과거 자신이 인간으로 있었을 때 암송했던 것을 누군가 암송하고 있다면 감응할 것이다. 그래서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다.
“가르침은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수호하고
잘 닦여진 가르침은 행복을 가져온다.
가르침이 잘 닦여지면, 공덕이 있다.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Thag.303)
"가르침과 가르침이 아닌 것은 양자가
동일한 과보를 갖지 않는다.
가르침이 아닌 것은 지옥으로 이끌게 하고
가르침은 하늘나라를 얻게 한다.” (Thag.304)
가르침은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보호한다고 했다. 법을 지키는 자를 법이 보호해 주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담마가 그렇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담마대로 산다면 벳싸바나 대왕이 지켜 주지 않아도 담마가 우리를 지켜 준다. 그래서 "담마는 담마를 따르는 자를 수호한다. (Dhammo have rakkhati dhammacāriṃ)"(Thag.303)라고 했을 것이다.
어떤 이익을 바라고 암송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태를 바꾸어 보기 위해 한 것이다. 그 결과 암송전과 암송후의 상태는 달라졌다. 아마 이런 것이 암송의 효과일 것이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고 새로운 힘이 생겨나는 것 같다. 기분이 우울 할 때, 몸이 찌뿌둥할 때 외우면 효과적이다. 애써 외운 것에 대한 과실을 따먹고 있다.
2022-04-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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