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스님 소신(燒身) 12주기를 맞이하여
문수스님 추모법회가 5월 29일 성북동 약사암에서 열렸다. 법회참여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했다. 안양에서 성북동까지 거리도 멀고 정진산행이나 줌모임 등 빠짐없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쉬고 싶었다. 그러나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받고 마음을 바꾸었다.
차를 가져갔다.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피곤할 것 같았다. 법회가 끝나면 곧바로 귀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일요일에 이동할 때는 그다지 막히지 않는다. 차를 이용하여 편안하게 여유 있게 약사암에 도착했다. 도착하는 과정에서 성북동 집들을 보았다. 비탈길에 세워져 있는 집들을 보면 하나의 작은 성을 연상케 한다.
성북동 집의 특징은 축대 높이 집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담이 높게 되어 있고 육중한 대문이 있다. 또한 가파르고 구불구불 길이 많아서 곡예운전을 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살라고 말한다면 사양할 것이다. 한번 들어 가면 나오기 힘들게 되어 있다. 마치 감옥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약사암은 호주대사관저 바로 옆에 있다.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작은 성처럼 보이는 대사관저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대사관이 있는 동네에 절이 있을까? 아마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국 대사관저가 있기 전에부터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약사암에 일휴스님이 있다. 작년 11월 정평법회를 이곳에서 했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이다.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 72학번이라고 한다. 수학과를 다니다가 불교에 흥미를 느껴 전과했다고 한다.
문수스님 추모법회를 앞두고 장소가 문제되었다. 마땅히 행사를 치룰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생각해 낸 것은 일휴스님이 있는 절이다. 대불련 출신이기도 한 스님은 재가불교단체에서 행사하고자 할 때 어느 때나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일휴스님은 추모법회와는 별도로 공양물을 준비했다. 그것은 천도재 등 각종 재를 지낼 때 보는 각종 나물과 과일 등이 있는 상차림을 말한다. 스님은 왜 재를 지내려 하는 것일까? 아마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문수스님의 소신(燒身)과 관련 있다.
문수스님 추모제는 조계종에서도 지낸다. 또한 문수스님 추모제는 재가불교단체에서도 지낸다. 그러나 조계종과 재가단체가 함께 지내는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는 기성종단과 재가불교단체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종단개혁과 관련하여 갈등이 있다. 현재 기득권층 스님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재가불교단체에서는 불교 적폐와 관련된 청산을 요구한다. 이는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있었던 적폐청산운동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문수스님 추모제가 서로 달리 열리고 있다.
문수스님 추모제에 네 단체가 참여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와 신대승네트워크, 불교환경연대와 바른불교재가모임을 말한다. 모두 2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식순에 따라 헌화하고 다례를 했다. 그리고 문수스님이 소신한 의미에 대하여 각 단체 대표의 발언이 있었다.
문수스님의 소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현실참여로 본다. 왜 그런가? 세상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수스님을 알게 될 것은 불교계 신문사이트를 통해서 알았다. 문수스님이 소신했을 때인 2010년의 일이다. 그때 집과 사무실만 왕래하면 오로지 글만 쓰던 시기였다. 재가불교활동을 하기 이전의 일이다.
재가불교활동을 하게 된 것은 2015년의 일이다. 이전에는 블로그에 글만 썼다. 매일 하루 한 개 의무적으로 썼다. 그럼에도 문수스님의 소신 소식을 접하고 관심을 가졌다. 추모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추모제에도 참석했다. 이런 것도 어쩌면 사회참여에 해당될 것이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에 대하여 글로 남긴다. 문수스님 추모제도 인상에 남았다. 나홀로 참여하여 ‘나비의 날개짓과 태풍, 우중의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문화제를 보고’ (2010-07-18, https://blog.daum.net/bolee591/16154673 )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문수스님이 소신한지 두 달이 안되었을 때이다.
추모제는 우중에 열렸다. 비가 오는 날 서울광장에서 저녁에 열렸다. 종단 차원에서 열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봉은사 등 큰 절에서 불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명진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있을 때이다.
추모제 전과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여 블로그에 올렸다. 사진과 동영상도 곁들였다. 글에서 “이번 문수스님 추모문화제는 불교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2010-07-18)라고 써 놓았다. 특별무대가 설치되었고 시낭송과 노래 등 촛불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문수스님 추모제 때 불자들은 촛불을 들었다. 연등을 든 불자들과 스님들도 있었다. 이는 2008년 7.4시국법회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대강 반대로 분신한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2년만에 불자들이 촛불과 연등을 든 것이다.
역사는 획실히 기록하는 자의 것 같다. 이번 문수스님 12주년 추모제 후기를 쓸 때 혹시 몰라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2010년 추모제에 참석했던 글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런 글을 남겼다.
“한 사람의 일으킨 생각으로 인하여 자연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비록 우중에 열린 추모제에서 외치는 함성이 그들의 귀에 미미하게 들렸을 지 몰라도 이미 나비의 날개짓은 시작되었다. 그 날개짓이 태풍으로 발전 되었을 때, 그들의 한생각으로 만들어진 모든 구조물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이병욱, 2010-07-18)
2010년 종단주관으로 열렸던 문수스님의 추모제에 크게 공감했다. 어느 단체에 소속된 것 없이 나홀로 참여하여 글을 남겼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때 당시 써 놓았던 글을 읽어 본다. 스님의 소신에 크게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 잊어버렸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현재 또다시 추모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재가불교단체 소속으로 참여한 것이다.
문수스님은 소신공양으로 가장 강력한 사회참여를 했다. 불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높게 평가하여 소신한 그해 7월에 대규모 촛불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후 이런 행사는 보지 못했다. 특히 정권과 유착된 스님들이 종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수스님의 소신은 헛된 것일까?
세상에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한국불교 1700년 역사에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소신한 스님은 거의 없다. 기억나는 것은 문수스님과 정원스님이다. 이 두 분 스님에 대하여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잊지 않고 추모법회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참여하는 것이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참여이다. 참여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정(友情)을 쌓아야 한다.
우정에는 나이와 지위와 관련이 없다. 남성과 여성의 구별도 없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뜻만 맞으면 어린아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와 지위를 초월해서 친구가 되었을 때 우정이 있게 된다. 우정이 있어야 모임이 오래 지속된다.
다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보시하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강력한 사회참여일지 모른다. 부처님이 보시공덕을 강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초심자에게 설법할 때 가장 먼저 보시에 대한 이야기부터 했다. 그 다음으로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 타락, 오염,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은 가장 쉬운 가르침부터 차제설법한 것이다.
불자들에게 보시공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 도처에서 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보시하는 것이야 말로 강력한 현실참여라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베풀고 나눌 것을 강조했다. 부처님은 ‘향유의 행복’이라고 하여 “나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완력으로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 정당한 원리로 얻어진 재물을 향유하며 공덕을 베푼다.”(A4.62)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소유의 행복일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삶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도 이익 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 되게 하는 삶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자리이타(自利利他)행이다.
자리이타행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이익 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 타인을 이익 되게 하는 삶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자신도 이익 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 되게 하는 삶이다. 바로 이런 것이 현실참여 아닐까?
현실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모임이나 단체에 가입하여 우정을 쌓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시를 하여 타인을 이익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먼저 자신의 공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공부가 되었으면 타인에게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재보시보다 법보시공덕이 훨씬 크다고 했다. 이런 법보시는 글을 써서 가르침을 알릴 수도 있고 책을 써서 알릴 수도 있다. 법문을 해서 알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재보시보다 법보시가 왜 수승할까?
가르침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보시를 하기 힘들 것이다. 한평생 인색하게 살다가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사구게 하나라도 가르쳐 주면 보시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보시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재보시는 법보시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재보시보다 법보시가 더 수승한 것으로 본다.
문수스님 추모제가 끝났다. 일휴스님은 추모행사와 관련없이 스스로 재를 지내 주었다. 자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스님은 참석자들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 참석자는 남아서 절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었다.
재를 지내고 남은 음식으로 저녁밥을 먹었다. 스님과 한상에서 먹었다. 모두 여섯 명이 스님과 함께 식사했다. 조현덕, 사기순, 노광희, 박태동, 이지범 선생을 말한다.
밥을 먹으면서 법담도 이어졌다. 주로 노광희 선생이 수행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런데 일휴스님은 학승이라는 사실이다. 방안에 책으로 가득하다. 서장을 설명하는 책도 출간했다.
일휴스님은 함께 밥을 먹은 사람들에게 음식도 챙겨 주었다. 재를 지내고 남은 전과 과일을 나누어 준 것이다. 나에게도 과일을 잔뜩 안겨주었다. 차를 몰고 가는 귀가 길에 내내 뿌듯했다.
2022-05-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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