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오월의 끝자락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5. 31. 11:27

오월의 끝자락에서

 

 

오월도 끝자락이다. 매월 말일이 되면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결재하는 것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날 한꺼번에 돈을 지불한다. 사무실 임대료와 아파트 관리비 같은 것이다.

 

마지막 날이 되면 또 하나 해야 할 것이 있다. 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국세청에 신고하는 세금계산서를 말한다. 이것을 해야 일이 완료된다.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려 놓고 눈에 점을 찍는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일감을 수주 받으면 견적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견적에 대한 네고가 있으면 네고를 해 주면 된다. 보통 10%하는 것이 업계 관례이다. 그러나 설계비를 네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계하는 것은 물건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설계비용을 네고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정사항이 발생했을 때 무상으로 해주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설계비용을 깍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는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견적에서부터 시작하여 설계, 제작과정 등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명세표와 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모든 단계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자주 실수를 하게 되면 신뢰가 추락된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계산에 밝지 않다. 계산서를 작성할 때는 늘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실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켠다. 그럼에도 실수했을 때는 업체 담당들 볼 면목이 없다. 특히 나이 들어 일했을 때가 그렇다. 그렇다면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 룰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단계적 과정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일도 한꺼번에 할 수 없다. 조금씩 조금씩 룰 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깨달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바라문은 자 고따마여, 가르침과 계율에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을 설하는 것이 가능합니까?(M107)라고 물었다. 이렇게 물은 것은 세상의 원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바라문은 활쏘기에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다고 말한다. 회계사인 바라문에게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이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바라문의 질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했다.

 

“바라문이여, 가르침과 계율에도 단계적인 배움, 단계적인 실천, 단계적인 발전을 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현명한 조련사가 성질이 좋은 우량한 말을 얻어서 먼저 고삐에 능숙해지도록 하고 길들이는 것과 같이, 여래가 길들일 사람을 얻으면 먼저 이와 같이 ‘오라. 수행승이여, 그대는 모름지기 계행을 지키고 계율의 조항에 따라 자제하라. 행동과 처신을 바로 하라. 사소한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수행규범을 받아 배우라.’라고 길들입니다.”(M107)

 

부처님은 조련사가 말을 길들이듯이 제자를 길들인다고 했다. 가장 첫번째 단계는 계율을 지키게 길들이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두번째로 감각의 문을 수호하는 단계와 세번째로 식사하는데 분량을 아는 단계, 그리고 네번째로 깨어있음에 전념하는 단계로 설명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말했다. 계율, 감관수호, 음식절제, 깨어있음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가 단계적으로 길들여졌을 때 수행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멀리 떨어진 수행처에서 수행하라고 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단계적으로 가르침을 설명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목적이 있다. 목적이 있어서 단계적 과정을 밟는다. 활쏘기 하는 사람은 과녁에 명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 자는 무엇을 목적으로 할까? 그것은 명백하다. 이는 바라문이 “존자 고따마의 제자들이 존자 고따마로부터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으면, 그들이 모두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합니까, 또는 그 일부만 성취합니까?(M107)라고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반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열반을 지향한다고 해서 모두 열반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따라가면 열반의 길로 갈 것이지만 다른 길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엉뚱한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내가 안내자로서 있는데, 나의 제자들이 나에게서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어떠한 이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고 또는 어떤 이들은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M107)

 

부처님은 안내자라고 했다. 제자들이 열반의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부처님이 기복의 대상이 아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길을 잘 갈수 있도록 가이드로서 가르침을 설한 것이다. 그 길로 가고 못가는 것은 가는 사람에 따라 달려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단계적이다. 그리고 점진적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오늘 못했으면 내일 하면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상당히 진척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매일 꾸준히 조금씩 읽다 보면 진도가 나간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것과 같다.

 

오늘 말일이 되어서 계산서를 작성했다. 계산서를 11장 작성했다. 수주에서 납품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국세청에 신고용 전자계선서를 작성함으로 인하여 종료된 것이다. 마치 농부가 들판에서 벼를 수확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진짜 종료는 따로 있다. 통장에 입금되어야 완결된다. 그럼에도 월말에 계산서를 처리했을 때 홀가분하다.

 

나이 들어서도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일을 손에 잡고 있으면 세상 근심걱정이 없다. 그렇다고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개인사업자가 매달 5월이 되면 납부하는 종합소득세가 있다. 이번에 내는 세액은 십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활을 유지하고 보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사업을 하는 것은 생계유지의 수단도 되지만 자기실현 수단도 된다. 가능하면 보시를 많이 하고자 한다. 수입이 많다면 보시금액도 많아질 것이다. 이 나이에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쭐해기도 한다. 나이 들어도 일을 하고 있는 한 나는 여전히 현역이다.

 

2022-05-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