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똥 냄새 진동하는 고향마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21. 09:02

똥 냄새 진동하는 고향마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진다. 아무리 잘 지은 대궐같은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부서진다. 엔트로피 법칙 때문일까?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차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시골집도 그런 것 같다.

6
19일 함평에 있었다. 고향집에 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10년이 훨씬 넘었다. 백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빈 집이 되었다. 매년 6월 이맘 때가 되면 제사 지내러 사촌들이 모인다.

 


시골집은 일년에 한번 사용한다. 제사 지내는 날 외에는 빈집이다. 일년에 한번 올 때마다 변화가 있다. 십년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있다. 헛간이 완전히 무너졌다. 본체는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옛날 집이다. 할아버지가 해방 후에 지었다고 한다. 6.25때 용케 살아 남았다. 빨치산 토벌을 위해 소개되었는데 지붕에 물을 부어 놓아서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77년 된 집이다.

유년시절 큰 집에서 놀았다. 그때 마루며 기둥이 그대로 있다.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세월만 엄청나게 흘렀다. 그 때 그 집도 그대로 있고 마루도 그대로 있고 마당도 그대로 있다. 사람만 늙었다. 먼저 간 형제들도 있다.

 


산 자들이 다시 모였다. 부산에서 서울에서 광주에서 왔다. 사촌들끼리 제사 지내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그래서 사촌모임이라고 말한다.

조부모와 백부모 제사를 함께 지내고 있다. 이런 제사가 있기에 사촌들이 일년에 한번 모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조카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70대 노인들이 제사 지내는 꼴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을까?

 

중부 사촌형이 분개 했다. 백부모 자손들이 참여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어찌 보면 중부 자손이나 막내 자손은 객이라 볼 수 있다. 참석 의무는 없다. 일년에 한번 만나는 뜻 깊은 날이기 때문에 빠지지 않는다.

일이 꼬이게 된 것은 백부의 장형이 제사를 모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조카들도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장형은 제사를 모시지 않지만 참여는 한다. 참여 하되 절은 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누군가는 하게 되어 있다. 백부 막내 사촌형 내외가 제사를 떠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카들은 참석하지 않고 나이 든 노인들이 제사 지내는 이상한 모임이 되었다.

사촌모임 멤버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0여년 전에 처음 시작 되었는데 그 동안 두 명이 사망했다.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함께 있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명, 두 명 사라지다 보면 나 중에 남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다.

 


제사 음식 준비할 사람이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문하는 것이다. 마치 주문하여 배달시키듯이 제사음식을 주문하면 가져다 준다. 몇 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있다.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누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주도권은 중부 사촌형이 잡았다. 많이 배웠고 아는 것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경청 모드가 되었다.

중부 사촌형은 집안의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광주 서중을 수석으로 입학했다. 광주일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MBC에서 PD를 했다. 전원일기 등을 연출했다. 김대중 정부시절 PD국장까지 지냈다.

중부 사촌형은 내가 글 쓰는 것을 알고 있다. 페이스북 글을 종종 본다고 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마치 몰래하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형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 왔다. 망설였다. 숨고 싶었다. 유년시절부터 청소년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잘 알고 있는 형으로부터 친구 요청을 받았을 때 난감했다. 이럴 때 대략난감이라는 표현을 해야 할까? 일단 수락했다.

형은 종종 글을 본 것 같다. 잘 쓴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듣기에 좋았다. 형에게서 평가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형 앞에만 서면 작아 졌다. 형은 너무나 대단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형을 대하기가 어렵다.

형은 73학번이다. 내가 79학번이니 학년으로 6년 차이 난다. 형이 서울대를 다녔으니 나도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형 친구들을 알고 있다. 광주일고 동기 중에 이중표, 박경준 선생이 있다. 모두 불교학자들이다. 이번에 만났을 때 정화스님을 아는지 물어 나왔다. 고미숙 선생의 멘토와 같은 스님이다. 이중표 선생과 동기라는 말이 있어서 물어 본 것이다. 그런 친구가 있다고 했다.

형이 내 글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형은 시간 날 때 보겠다고 했으나 나를 배려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이에 보시지 말라고 했다. 형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럽고 창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도 볼지 모른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형은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 한방을 썼다. 형이 광주에서 서울로 유학 온 것이다. 형과 함께 1년 살았다. 형이 가져온 '대학신문'을 봤다. 4.19 특집 기사를 봤는데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상계도 봤다. 심심해서 읽어 본 것이다. 김지하 시집 황토도 열어 보았다. 이런 바탕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된 것일까?

 


고향마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소를 키우는 축사가 이곳저곳에 생겨 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소울음 소리와 소똥 냄새가 진동한다. 청정한 마을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에 형은 3D개념으로 설명 했다.

 


전라도는 오래 전부터 차별 받았다.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산업기반 시설이 대부분 영남에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입사원 연수시절 확인했다.

85
7 S그룹에 들어 갔다. 그때 당시 반도체 등 전자산업이 크게 활성화 되어서 전자공학과 출신들이 잘 팔렸다. 그 덕에 무난히 취직이 되었다.

신입사원 연수시절 지방사업장 견학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전국에 있는 지방사업장을 돌아 다닌 것이다. 수원에서부터 시작해서 구미, 대구, 울산, 양산, 창원, 거제까지 갔었다. 거의 대부분 영남권에 있는 사업장이다. 호남권에는 사업장이 없었다.

최근 함평 월야면에 큰 공단이 생겼다. 빛그린산단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것이다. 경천동지할 일이다. 고향 마을 가까이에 대규모 공단이 조성되었다. 이런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낙관하기는 이르다. 언제 발을 뺄지 모른다. 호남은 여전히 소외지역이다. 이에 대하여 형은 축산업으로 설명했다. 책에서 본 것을 말한 것이다. 똥 냄새 나는 축사가 이곳저곳에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3D업종이 들어 선 것과 같다고 했다. 이른바 혐오업종이 위쪽 지역부터 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말한다.

일년에 한번 가는 고향마을이다. 마을 주변은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소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십년 이내에 환경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이제는 공장식 돼지 축사까지 생겨났다. 이른바 돼지공장으로 수억원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더 이상 예전의 고향마을이 아니다. 언제나 고향마을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는 것도 반갑지 않다. 고향 마을이 옛날처럼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똥 냄새 진동하는 고향마을이다.


2022-06-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