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선택적 기사에 분노한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23. 10:41

선택적 기사에 분노한다면

오늘 점심 식사 때 일이다. 평소 자주 가는 지하 구내식당에 갔다. 하루종일 뉴스채널만 틀어 놓는 식당이다.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나 요즘 같은 때에는 꺼리게 된다.

식당을 들어 가려다 말았다. 뉴스에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대개 11시 대에 가면 뉴스를 볼 수 없다. 광고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뉴스채널인 것 같다. 나의 이런 행위는 지나친 것일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뉴스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TV는 물론 시사유튜브도 끊었다. KBS와 MBC등 공영방송에 한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5년 동안 계속될지 모르겠다.

뉴스에 대한 불신이 있다. 기자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그들은 뉴스를 취사선택한다. 수많은 뉴스 중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그런 뉴스 중에는 악의적인 것도 있다.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고 비틀어서 보도하는 것이다.

뉴스를 취사선택하여 보도하는 것은 기자의 고유권한일 것이다. 마치 검사가 수사할 것인지 말것인지, 기소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선택보도 측면에서 본다면 검사의 행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어떤 이는 뉴스를 보고 분개한다. 자신의 뜻과 정반대로 비틀어서 보도했을 때 속 상해 한다. 에스엔에스에서 불쾌한 느낌을 밝히기도 하는데 하소연하는 것 같다. 뉴스를 보고 분노 했다면 그들의 의도에 넘어간 것인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 기일날 구글에서 본 것이 있다. 그날 검색할 것이 있어서 스마트폰 구글사이트를 열었다. 딱 한줄에 기분이 잡쳤다. 실시간 한줄 뉴스 제목에 걸려 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이 봉하마을에서 "어깨춤 덩실"했다는 것이다. 의도가 보였다. 흠집내기 하려는 것이다. 이미지를 깍아 내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이틀을 뽑은 것이다.

우연히 포털에서 그가 웃는 모습의 사진을 잠깐 보았다. 전문가가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찍은 것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비록 0.5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자들이 이미지 세탁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회자 되는 말이 있다. 뉴스로 보도 된 것은 더 이상 호재가 아님을 말한다. 많은 뉴스 중에서 선택된 것이라면 의도가 실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미투자자들은 뉴스를 보고서 주식을 산다. 정치뉴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뉴스 중에 방송을 타는 것은 몇개 되지 않는다. 그것도 의도되고 조작된 것들이다. 대통령이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화하기 위해서 서민 코스프레하는 것이다. 하물며 여론 조작은 어떠할까?

TV나 신문에 난 뉴스는 의도되고 조작된 것이다. 같은 편은 미화하고 반대편은 깍아 내린다. 이런 뉴스에 열받을 필요가 없다. 안보면 그만이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

뉴스를 봐서 불선법이 생겨난다면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뉴스를 보고서 분노한다면 번뇌만 증장될 뿐이다. 이럴 경우 뉴스를 손절해야 한다. 뉴스를 보지 않고서도 사는데 지장없다.

번뇌가 생겨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일곱 가지 방법이 있다. 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의 경'(M2)에 따르면, 1)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2)단속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3)수용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4)인내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5)피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6)버림으로서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7)수행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이 중에서 5번째 피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그리고 적당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가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소로 가고, 사귀기에 적당하지 않은 악한 친구와 사귀면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이 나쁜 경우에 해당하거나 악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성찰하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자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장소, 그러한 악한 친구를 피한다. 수행승들이여, 피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피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M2)

피함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TV에서 그 사람을 보기 싫다면 뉴스를 보지 않으면 된다. 뉴스를 보아서 분노 등 번뇌가 일어난다면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뉴스를 보다가 분노해서 에스엔에스에 큰 글씨로 써 놓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정도 스트레스는 풀릴 것이다. 어떤 이는 링크를 걸어 놓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허공에 소리치는 것과 같고 허공에 주먹질 하는 것과 같다. 선택적 기사에 분노한다면 기자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과 같다.

기자는 기사 선택권이 있다. 선택적 기사에 분노한다면 기자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과 같다. 기자가 기사를 선택해서 보도하듯이 독자 역시 뉴스를 선택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TV 시청의 경우 선택권이 없다. 안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피함으로써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2022-02-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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