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우중에 관곡지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1. 07:36

우중(雨中)에 관곡지에서


어떻게 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쁨에 가득 찬 것 같다. 카메라를 대기에 바쁘다.

어제 오전 관곡지에 갔었다. 일찍 출발했다. 낮에 폭염에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선할 때 갔다 오고자 했다. 도착하니 9시 이전이었다.

 


이른 오전에도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 시간에 사람들이 있었다. 너른 들판 연꽃단지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낮시간은 피하고 아침에 구경하고자 왔을 것이다.

 


연중행사라는 말이 있다. 일년에 한번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관곡지는 연중행사 하는 곳이다. 매년 일년에 한번은 꼭 와본다. 가까이 있는 이유도 있다. 안양에서 시흥까지는 30분 이내 거리에 있다.

이삼년전 이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관곡지 사진사에 따르면 연꽃을 보려거든 아침 일찍 오라고 했다. 정오 이전에 보라고 했다. 정오가 넘어가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무더위 때문일 것이다. 땡볕에는 사람도 쉬고 식물도 쉬는 것 같다.

 


연꽃단지에 가면 마음이 설렌다. 연꽃의 자태는 환상적이다. 사진으로만 연꽃을 보다가 처음 실물을 접했을 때 경이로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 했다.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연꽃은 꽃 중의 꽃이다.

연꽃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사람도 아름답다. 연꽃을 바라보는 사람도 아름다워 보인다. 연꽃의 아름다움에 환희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정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관곡지 연꽃은 활짝 피었다. 잎이 팽팽해 보인다. 사진사의 말이 틀림 없다. 연꽃을 보려거든 아침 일찍 와야 한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지 일이십분도 되지 않아 비가 오기 시작 했다. 바람도 불었다. 바람이 불자 연잎이 뒤집어 졌다. 연의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시흥 관곡지 다닌지 10년이 넘었다. 아마 2008년에 처음 온 것 같다. 이후 해마다 빠지지 않고 왔다. 일년에 딱 하루 오는 날이다. 올 때 마다 느낌을 기록해 두었다.

해마다 관곡지는 달랐다. 초창기 때는 스님들이 많이 보였다. 어느 해인가는 베트남 사람들도 보았다. 베트남 여인은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 입고 나왔다. 사람들의 사진 모델이 되기도 했다.

관곡지에서는 매년 연꽃축제가 열렸다. 공연도 열리고 먹거리 장터도 열렸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에는 일체 볼 수 없었다. 올해는 어떨까? 작년과 다르게 작은 장터가 열렸다.

 


관곡지에는 입장료가 없다. 별도로 주차장도 없다. 너른 들판에 산업용으로 연을 재배하고 있는데 한쪽에 관상용 연꽃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 온다.

사람 있는 곳에 장이 선다. 연꽃축제 현장에도 장이 선다. 주로 먹거리와 관련된 특산품을 판매한다. 장터에서 구경만 할 수 없다. 무어라도 하나 팔아 주고자 했다.

연으로 만든 강정을 샀다. 한봉지에 7천원이다. 비싸게 생각되었지만 한봉지 팔아 주었다. 다음으로 꿀을 샀다. 마트에서 파는 가격과 같다. 야생화벌꿀로 18,000원이다. 흔쾌히 팔아 주었다. 상추도 2천원 주고 샀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인색한 것 같다. 놀러 왔으면 팔아 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고급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지만 노점에서 팔아 주는 것은 인색한 것 같다.

노점에서 개떡을 샀다. 연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연개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쑥이 들어 갔기 때문에 연개쑥떡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 개에 6천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오전 10시경에 아점으로 연개쑥떡으로 먹었다. 크기가 손바닥만하고 꽤 두툼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났다. 한끼 식사로 충분한 것 같다. 웰빙 식사가 되었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특히 부처님을 상징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가
물속에서 생겨나
물 속에서 자라
물위로 솟아올라
물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S22.94)

부처님은 니중연화(泥中蓮花)와도 같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핀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진흙탕과 같은 세상에서 살았다. 연꽃이 물에 오염되지 않듯이 부처님은 세상속에 살았지만 세상사람들에게 오염되지 않고 살았다.

세상은 진흙탕과 같다. , , 치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탐, , 치로 살아 간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살아간다. 무탐, 무진, 무치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 , 치로 살면 세상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다. 반대로 무탐, 무진, 무치로 살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
수행승들이여,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 (S22.94)

부처님은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가다 보니 싸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으로 살아간다. 이를 감각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오욕락을 추구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눈과 귀, , , 신체로 형상, 소리, 냄새, , 감촉을 즐기는 것에 대하여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이러니 세상사람들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과 반대로 예기 했다. , , , 정에 대해서 무상, , 무아, 부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반대로 얘기 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받아 듵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이 나와 싸운다."(S22.94)라고 했을 것이다.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다. 단지 진리를 설했을 뿐이다. 부처님은 역류도(逆流道)를 설했다. 세상의 흐름에 거꾸로 가는 가르침을 말한다.

진리를 대하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에 대해서 얘기하면 크게 웃어버린다. 일부 사람들은 반신반의 한다. 아주 소수 사람들만이 진리로서 받아들인다. 역류도를 설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 크게 웃어버릴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과 불화일지 모른다.

세상사람들이 역류도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감각을 즐기는 자에게 감각을 즐기는 것이 결국 괴로움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세상사람들과 불화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라고 했다. 그리고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 (S22.94)라고 했다.

세상이 싫다고 하여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다. 부처님은 세상을 싫어하여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살지 않았다. 저자거리에서 늘 사람들과 함께 했다. 세상이라는 진흙밭에서 산 것이다. 마치 니중연화와 같다

니중연화로서 부처님은 오염되지 않았다. 중생과 함께 살지만 중생에게 물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관곡지에 온 사람들을 보니 표정이 넉넉한 것 같다. 장미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물에서 피는 연꽃은 땅 위에서 피는 꽃과 다르다. 더구나 자태가 매혹적이다. 홍련도 있고 백련도 있다. 놀랍게도 관곡지에는 홍련과 백련을 합해 놓은 것 같은 혼합종도 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다. 연꽃은 꽃과 열매가 함께 있다. 마치 도()와 과()를 보는 것 같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듯이 도를 닦으면 과가 따른다. 이렇게 본다면 연꽃은 도와 과의 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올해도 관곡지를 찾았다. 올해는 우중의 관곡지가 되었다. 여름에 비가 내리면 운치 있다. 우중에 본 연꽃은 부처님의 꽃이기도 하지만 도와 과의 꽃이기도 하다.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있기 때문에 도과(道果)꽃이다.

 

 

 

 

 


2022-08-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