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부 일심이체(一心二體)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5. 07:55

부부 일심이체(一心二體)

 

 

오늘 아침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 했다. 노년의 부부가 손잡고 걷는 장면을 본 것이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부축이라도 하듯이 손을 잡고 있었다. 팔십대 가량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일터로 향했다. 무더운 여름철에 농부는 새벽에 나가 일을 한다는데 도시의 사업자도 일을 하기 위해서 사무실로 향했다. 아침 6시에 나갔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에 나가라는 말이 있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일터로 달려 간다.

 

일터는 아파트에서 이십여분 거리에 있다. 도중에 안양천을 건너고 철로가 지나가는 굴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안양7동 덕천마을에 있는 메가트리아를 말한다. 거의 5천세대 가까이 된다.

 

메가트리아는 재개발된 것이다. 십년전에는 주택과 저층아파트, 빌라, 시장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 깨끗이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타워형 고층아파트가 건설되었다.

 

안양7동 덕천마을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십년이상 매일 이 자리를 지나가기 때문에 변화를 알고 있다. 일터로 가려면 아파트단지를 우회해서 가야 하지만 관통해서 가면 시간이 단축된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를 가로 질러 간다.

 

메가트리아는 대단지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것 같다. 도시 속에 도시가 있는 것 같다. 단지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단지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단지 내 공원에서 보내는 것 같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절까지 만들어 놓았다.

 

 

오늘 아침 메가트리아를 가로질러 가다가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했다. 두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었다. 순간포착한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뒤쫓아 갔다.

 

노부부는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을 빨리 하여 뒷모습을 찍었다. 이런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비난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면 면책될지 모른다.

 

 

요즘 홀로 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홀로 사는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노년에는 둘이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노부부는 아름다워 보인다.

 

노부부를 보면서 또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면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을 말한다.

 

저 할아버지도 한때는 허리가 꼿꼿하고 강건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십년주기의 인생이 설명되어 있다.

 

1) 유아적 십년(0-10)
여리고 불안정한 아이

2)
유희적 십년(11-20)
그는 많은 유희를 즐긴다.

3)
미모적 십년(21-30)
그에게 미모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4)
체력적 십년(31-40)
힘과 기력이 크게 생겨난다.

5)
지혜적 십년(41-50)
그에게 지혜가 잘 확립되는데,
선천적으로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도 이 시기에 지혜가 조금이나마 생긴다.

6)
퇴행적 십년(51-60)
그에게 유희, 미모, 체력, 지혜가 퇴행한다.

7)
경사적 십년(61-70)
그에게 신체가 앞으로 기울어진다.

8)
타배(駝背)적 십년(71-80)
그에게 신체가 쟁기처럼 굽어버린다.

9)
노망적 십년(81-90)
그는 몽매하게 되어 하는 것마다 망각한다.

10)
와상적 십년(91-100)
백세를 먹은 자는 대부분 누워서 지낸다. (Vism.20.51)

 

 

 

인생십년주기를 보면 나는 7번 사항에 해당된다. 신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꼿꼿하다. 아마 농사일 등과 같은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십년주기에서 비극적 시기는 9번항과 10번항이다. 팔십대가 되면 그는 몽매하게 되어 하는 것마다 망각한다.”라고 했다. 노망든 것을 말한다. 요즘 말로 치매에 해당된다. 나이가 구십대가 되면 대부분 누워 지낸다고 했다.

 

최근 연령별 생존지수가 발표된 바 있다. 80이 되면 생존자가 많지 않다고 한다. 70세 생존확률은 86%이고, 80세 생존확률은 30%로 확 떨어진다. 90세 생존확률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기대수명대로 사는 것이 보장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수명은 알 수 없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70, 80, 90세까지 사는 것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누구나 바라는 노년의 삶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최근 글쓰기에서 삼십년전쟁을 끝낸 바 있다고 썼다.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싸움은 끝났다. 나의 마음을 바꾸니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를 들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여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치우고 남은 음식을 넣는 통을 치우고 식당을 청소합니다. 그리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 단지나 배설물 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M128)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운다는 말이 있다. 집안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식이다.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치우지 않을 것이다. 집안 일도 그렇다.

 

맞벌이를 하면 먼저 집에 온 사람이 식사준비를 해야 한다. 나중에 온 사람은 뒷정리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승가에서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을 보면 먼저 탁발 다녀온 수행승이 자리를 펴는 등 식사준비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중에 온 수행승은 뒷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보고서 집안에서 실천해 보고자 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비정규직이었는데 도중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직장에서 끝나고 집에 오면 늦다. 저녁을 준비하는 것도 힘이 들 것이다. 이런 때 먼저 오는 사람이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러기를 삼년 한 것 같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다툼이 없어진 것이다. 팔팔년 이후 전쟁을 끝낸 것이다.

 

요즘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있어서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다. 위부분과 관련하여 글을 읽다가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을 향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핵심은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는 것이다. 세 명의 수행승이 있는데 모두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했을 때 한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라는 말이 있다. 한마음한몸이라는 말이다. 한마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동체는 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경에서는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라고 했다. 수행승이 세 명 있다면 일심삼체(一心三體)가 될 것이다.

 

승가를 화합승가라고 한다. 모임은 화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싸우기 위한 모임은 없다. 화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식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재성선생의 금요니까야모임이 있다. 몇 달 전에 합송한 경이 있다. 그것은 일곱종류의 아내에 대한 경’(A7.63)이다. 일곱 종류의 아내는 살인자와 같은 아내, 도둑과 같은 아내, 지배자와 같은 아내, 어머니와 같은 아내, 누이와 같은 아내, 친구와 같은 아내, 하인과 같은 아내를 말한다.

 

가장 이상적인 아내는 어떤 아내일까? 당연히 친구와 같은 아내가 해당된다. 마치 친구를 보듯 반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에서 수자따는 하녀와 같은 아내가 되고자 했다.

 

수자따는 왜 하녀와 같은 아내가 되고자 했을까? 이에 대하여 토론이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수자타의 잘못을 들 수 있다. 수자타가 시부모나 남편이나 하인들에게까지 안하무인격으로 행위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성하기 위해서 하인과 같은 아내가 되고자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는 어떤 남편일까? 니까야모임 후기를 작성하면서 말미에 하인과 같은 남편이 되고자 했다. 왜 이런 선언을 한 것인가? 과거에 잘못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뜻대로 하고자 한 것이 크다. 그러다 보니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맛지마니까야를 읽고서 새삼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부부 일심이체(一心二體)에 대한 것이다. 이는 경에서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부화합을 이루려면 먼저 나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 서로가 이렇게 하면 한마음이 될 수 있다. 몸은 다르지만 마음만은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메가트리아에서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몰래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아마 노부부는 사진에서처럼 집에서도 아름답게 살 것 같다. 그것은 한마음이다. 서로 나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이 되고자 했을 때 다툼이 일어날 수 없다.

 

2022-08-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