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는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6. 05:35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는다면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다. 오늘 같은 경우를 말한다. 재활용품가게에서 난을 주었다.

오늘 오후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시장 가는 날은 설레이는 날이다.

시장에서 딱히 살 것은 없다. 아이쇼핑하다 보면 걸리는 것이 있다. 대개 싼 맛에 산다. 그러나 오늘은 시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결판이 났다. 아름다운가게에서 난을 본 것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재활용품매장이다. 중앙시장 가기 전에 있어서 한번 들러 보는 곳이다.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 보지만 살 것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난이 있었던 것이다!

난을 치고 있다. 사무실에는 여섯 개가 있고 집에는 한개가 있다. 그럼에도 배가 고프다. 난을 보면 사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했다. 재활용품가게에 난이 잔뜩 있었던 것이다.

 


난화분이 20개가량 있었다. 시흥시 의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눈을 의심하게 했다. 청자에 있는 황룡관은 2만원이다. 그 외 것은 만원이다. 파격적인 가격이다. 거저 가져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자황룡관 가격을 알고 있다. 작년 장흥에 사는 도반님이 사무실에 왔었는데 그때 난을 사 주었다. 꽃집에 함께 가서 사 준 것이다. 8만원 주었다. 그런데 2만원이라니!

최근 황룡관 난 화분을 만든 바 있다. 난을 인터넷으로 구매 했다. 택배비 포함해서 24천원 들었다. 난 화분은 8천원 들었다. 난석도 수천원 했다. 합하면 4만원 가량 되었다.

난화분 하나 만드는데 재료비만 4만원 들었다. 판매가가 8만원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가게에서는 만원과 2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만원짜리 하나를 샀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다 하나 더 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가게에 다시 들어가서 2만원짜리 황룡관을 샀다. 난 잎에 금색 테두리가 있어서 황룡관이라고 한다. 난 중에서도 가장 품위 있게 보인다.

 


난 두개를 3만원에 샀다. 거져 얻은 것이나 다름 없다. 시세 보다 사분의 일 가격에 산 것이다. 가벼운 흥분이 일어났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는데 딱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 같다.

난 두개를 아파트 거실에 가져다 놓았다. 이로서 집에는 난이 세개가 되었다. 거실에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있지만 난이 가장 돋보인다.

 


나는 왜 난에 집착할까? 그것은 소유욕과 관련이 있다. 난화분을 늘리는 것도 소유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유욕은 한계가 없는 것 같다. 난이 여러 개가 있음에도 싼 것이 나왔을 때 기어이 사고만다.

소유를 하면 근심과 걱정도 소유하게 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에서도 확인된다. 그래서일까 법정스님은 난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다고 한다. 난도 이럴진대 다른 것은 어떠할까?

소유하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주식이나 부동산이 그런 것 같다.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괴로움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주식을 소유하는 순간 마음 한켠에 근심과 걱정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늘 주가지수의 등락에 가 있을 것이다.

부동산을 구입하면 근심도 구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동산을 구입하고 난 다음에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근심하고 걱정할 것이다. 이를 소유에 의한 괴로움이라고 볼 수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사는 순간 번뇌도 소유하게 된다. 이런 소유는 즐기지도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등락에 일희일비 하지만 결국 괴로움만 남는다. 소유의 괴로움이다.

자식도 소유의 개념으로 본다면 괴로움이다. 자식을 얻는 것이 기쁨이 될 수도 있지만 소유로 여기면 근심하고 걱정하게 된다.

"
지금 이 수행자에게는 없네.
한 아들이나 두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거느린 과부가 없으니
이 수행자는 행복하네."(S7.10)

바라문이 부처님을 보고 게송으로 읊은 것이다. 재물과 자식 등 많은 것들을 소유한 바라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부처님이 부러웠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소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유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출가수행자로서 삶이다. 어느 정도일까?

"
마치 날개를 가진 새가 어디로 날든지 날개를 유일한 짐으로 하늘을 날 듯, 이와 같이 수행승은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족하게 걸치고, 식사는 배를 유지하는 것으로 족하게 하고, 어디에 가든지 이것들만 가지고 갑니다."(M27)

이것이 무소유의 삶이다.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족하고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 없으니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행승에 대하여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82)라고 했다.

소유를 하되 집착하지 않는다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주식을 사놓고 등락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소유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식을 사는 순간 번뇌도 소유하게 된다. 욕망이라는 번뇌를 말한다. 돈을 벌어 보겠다고 애써 보지만 손실만 날 뿐이다. 그에따라 괴로움도 더할 것이다. 돈 주고 괴로움을 사는 것과 같다. 이럴 때는 주식을 손절해야 한다.

주식을 하지 않는다. 주식을 손절한지 15년 되었다. 주식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요즘 뉴스를 보지 않듯이 주식채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 하나만 버려도 삶이 이렇게 편할수가 없다. 무소유에서 오는 행복이다.

 


난도 소유의 괴로움을 유발할까? 난이 시들면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주식과 비교되지 않는다. 주식은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지만 난은 키우는 재미가 있다. 소유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소유로 인한 즐거움이 더 크다. 소유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2022-08-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