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13. 07:48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른인가? 이런 질문을 헤본다. 나는 정말 어른일까? 나이를 먹었으니 어른이라 할 만하다.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어른일까? 자식을 낳았으니 어른이라 해야 할만 하다. 자식만 낳았다고 해서 어른일까? 손주를 봐야 어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직 손주가 없으니 나는 어른이 아닐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애를 낳아 봐야 어른이 된다."라고. 애를 낳봐야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이 있으니 어른임에 틀림 없다. 손주가 있다면 아마도 큰어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세속에서 어른의 개념이다.

큰스님이 있다. 어떻게 큰스님이 되었을까? 아마도 패밀리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좌가 여러명이고, 상좌의 상좌가 여러명일 때 자동적으로 큰 스님이 되는 것 같다.

큰어른이 되려면 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식도 많고 며느리, 사위, 손자가 많아 일가가 형성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큰어른이 된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그가 장로는 아니다.
단지 나이가 들었으나
헛되이 늙은이라 불리운다.”(Dhp.260)

머리가 희다고 해서 장로가 아니라고 했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그가 자식과 손주를 거느린 패밀리의 수장이라 하더라도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말한다. 나이만 헛되이 먹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가 희다. 반백을 넘어 백발로 진행중에 있다. 다행히 머리는 빠지지 않아 보기에는 좋다. 나이 들어 보여 어른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어른일까?

사회적 어른도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면 사회적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지위가 있어도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고위직에 앉아 있다 보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젊어도 "영감님"이 되는 것이다.

교단에 서도 어른이 된다.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교대를 갓 졸업한 이십대 초반의 초등학교 교사도 학부형에게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의사가 되면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은 패밀리를 향성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지위와 명성을 얻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속적 개념의 어른이다. 마치 머리만 희면 자동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한번도 어른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마음은 늘 청춘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기에 딱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반백에서 올백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늘 어린아이 같고 늘 청소년 같다. 대체 나의 나이는 몇 살일까?

“비록 젊고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행복한 청춘을 부여받은 인생의 초년생일지라도 때 맞춰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고, 가르침에 맞는 말을 하고, 계율에 맞는 말을 하고, 기억에 남는 말을 하고, 알맞은 말을 하고, 이유가 분명한 말을 하고, 한계가 있는 말을 하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한다면, 그를 두고 ‘슬기로운 장로’라고 한다.” (A4.22)

슬기로운 장로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나이와 무관하다. 말을 이치에 맞게 하면 슬기로운 장로라고 했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어니다. 머리가 칠흑같이 검어도 이치에 맞게 말하면 그가 어른인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는 데는 또하나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태어난 이래 여든 살, 아흔 살, 백 살의 노인이라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속에서 살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고뇌에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념에 삼켜지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한다면, 그를 어리석은 장로라고 합니다." (A2.37)

어른이 되기 위한 또하나의 조건은 감각적 욕망의 극복이다. 그가 머리는 희지만 여전히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산다면 결코 어른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가 많다고 하여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젊어도 지위가 없어도 어른이 될 수 있다. 감각적 욕망을 극복한 자라면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다.

"바라문이여, 검은 머리를 하고 꽃다운 청춘이고 초년의 젊음을 지니고 나이 어린 청년이라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속에서 살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고뇌에 불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념에 삼켜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를 슬기로운 장로라고 부릅니다.” (A2.37)

나이 어린 청년도 장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감각적 욕망을 극복한 자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일곱살 먹은 아이도 어른이 될 수 있다. 이는 테라가타에서 “생후 겨우 칠 년 만에 구족계를 나는 받았고,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하였으니 여법한 훌륭한 가르침이여!” (Thag.479)라는 게송으로 알 수 있다.

칠세아라한은 가능할까? 전생 개념이 도입되면 가능하다. 전생에서 수행자로 살았던 자가 이 세상에 태어 났을 때 빨리 깨우칠 수 있다. 그 한계를 칠세로 보는 것 같다. 칠세가 되면 사유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이 갖추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장로거 될 수 있다. 장로 라꾼다까 밧디야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한 장로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들은 보지 못했다고?” “세존이시여. 한 사미를 보았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사미가 아니라 장로이다.” “세존이시여, 지나치게 작았습니다.”이에 부처님은“수행승들이여,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고 장로의 자리에 앉았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는다. 진리를 꿰뚫고 많은 사람에 대하여 불살생을 확립하면, 그를 장로라 한다.”(DhpA.III.387-388)라고 말했다.

이치에 맞게 말하면 어른이 될 수 있다. 감각적 욕망을 극복한 자라면 큰어른이 될 수 있다. 진리를 꿰뚫은 자라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머리가 희다고 하여, 자손이 많다고 하여 장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로가 되려면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니까야를 보면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계행을 갖추고, 의무계율을 실천하고, 의무계율을 통한 제어를 수호하고, 행실과 행경을 원만히 하여, 작은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수용하여, 배운다.

둘째, 그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기억하고 배운 것을 모아서,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성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고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시키는 그 가르침을 자주 듣고, 기억하고, 언어로써 외우고, 정신으로 성찰하고, 바른 견해로 꿰뚫는다.

셋째, 그는 보다 높은 마음과 관계되고, 현세의 삶에 유익한 네 가지 선정을 원하는대로 성취하고 힘들이지 않고 성취하고 어렵지 않게 성취한다.

넷째, 그는 번뇌를 부수고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현세에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A4.22)

이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조건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손주를 보았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위가 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계, 정, 혜 삼학을 성취한 자가 진정한 어른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세수가 끝나면 거울을 들여다 볼 것이다. 머리가 희었기 때문에 어른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각적 욕망속에서 산다면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감각을 즐기는데 있어서 노소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2022-08-1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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