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해마중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14. 10:52

해마중


유년시절 어느 때 기억이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으나 물놀이 갔었다. 바닥이 세멘트로 되어 있는 풀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물놀이 했던 기억을 훗날 소년 시절에 떠 올렸다. 그때 떠 오른 단어가 '물마중'이었다.

물마중이라는 단어가 있을까? 인터넷 검색해 보니 사전에 그런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물마중이라는 말이 어떻게 소년의 마음에 떠 올랐을까? 단어도 생소한 것이다. 물마중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다. 유년시절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물마중 간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유년시절 함평 시골에서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는 풀장 또는 연못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하고 어머니 친구와 어머니 친구의 여자 아이와 네 명이서 물마중 간 것이다.

어머니는 한복차림이었다. 뜨거운 여름날이어서 양산도 쓰고 있었다. 같은 또래의 여자 아이에게도 작은 양산이 있었던 것 같다.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는 연못같은 풀장에서 네 명이서 물을 맞으며 물놀이 했다. 이를 '물마중 간다'라고 했다.

믈마중은 생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전생의 기억인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물어 보려 했으나 물어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 났다. 밖은 캄캄하다.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았다. 한번 깨니 잠이 오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시간 낭비일 것 같아서 일어났다. 가볍게 경행 했다. 경행이 행선이 되도록 했다.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암송을 해야 한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속으로 암송하는 방법이 있고 소리내서 하는 방법이 있다. 중간을 취했다. 마음속으로 소리 내서 암송했다. 암송을 마치고 나니 날이 밝아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 난 것이다.

동쪽을 보았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어 하늘만 보이는 것 같다. 시계를 보니 5 21분이다. 잘 하면 새벽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터로 가야 한다. 오피스텔 꼭대기 층에서 해를 보고 싶었다.

 

샤워를 후다닥 했다. 하루 해를 그냥 맞이할 수 없어서 몸을 씻는 행위부터 한 것이다. 그리고 차를 몰았다. 오피스텔 꼭대기층 18층에 도착했을 때 5 38분이었다. 그러나 붉은 새벽놀은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약간 붉은 기운만 보였다.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상태가 되고자 노력한다. 새벽 노을, 새벽놀도 그랬다. 3주 전에 본 개벽과 같은 붉은 새벽놀을 기대하며 달려 가 보았지만 두 번 다시 보여 주지 않았다.

지금시각 6 8분 마침내 해가 떠 올랐다. 구름에서 얼굴을 내비친 것이다. 도시 마천루 숲에서 보는 태양이다. 구름에 가려져 보일락말락한 태양이다. 지금 18층 꼭대기에서 해맞이하고 있다. 이를 해마중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해마중한 기억이 있다. 농촌에 살았을 때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이 시정에 모였다. 그것도 새벽에 모였다. 사전에 약속했었는지 알 수 없다.

시정에서 아이들은 해맞이 했다. 들 저편 동쪽언덕에서 해가 솟았을 때 정면으로 바라 보았다. 너무 눈부셔서 세상이 컬러풀하게 보였다. 무지개같은 커다란 원이 여러개 겹쳐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계속 해를 바라 보았다. 이후 두 번 다시 해맞이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해마중 했던 것이다.

유년시절 물마중 했었다. 그러나 물마중이라는 말은 없다.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물마중이라는 말이 어떻게 갑자기 튀어 나올 수 있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해마중은 있을까? 해마중이라는 말은 사전에 있다. 해맞이의 북한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해맞이는 해를 보는 행위를 말한다. 정초 새해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해맞이 한다. 그런데 해맞이라는 말보다 해마중이라는 말이 더 다가 온다. 왜 그럴까? 유년시절 물마중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맞이라는 말보다는 해마중이라는 말이 더 좋다. 해마중이 있으면 달마중도 있을 것이다. 달맞이 보다는 달마중이 더 좋을 것 같다.

 


누군가 기다릴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올 때 마중나간다고 말한다. 마중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해와 달과 같은 사물에는 맞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해를 마중나갔다. 하루 해를 손님처럼 마중나간 것이다. 오늘 해마중했다.


2022-08-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