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결제하는 날은 보시하는 날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31. 05:40
결제하는 날은 보시하는 날

7월도 끝자락이다. 마지막 날에 해야할 일이 있다. 결제하는 것이다. 돈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받을 돈은 빨리 받고 줄 돈은 천천히 주라는 말이 있다. 자금 결제하다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줘야할 돈을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날 결재하기 때문이다.

매달 말일에 결제한다. 매입계산서도 말일에 결제한다. 사무실 임대료와 아파트 관리비도 마지막날 낸다. 세금도 막판에 낸다. 부가세가 대표적이다.

부가가치세는 날자를 지켜야 한다. 하루만 늦어도 벌금 내야 한다. 날자에 따라 누진된다. 마치 고리대금업을 연상케 한다. 벌금폭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부가세철만 되면 긴장된다.

개인사업자는 일년에 두 번 부가세를 낸다. 매년 1월과 7월에 낸다. 마감은 25일이다. 25일을 넘기면 큰 일 난다. 벌금폭탄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세금은 매우 가혹한 것이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사업자에게 가장 무서운 곳은 세무서이다.

부가세를 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 하루 남겨놓고 냈다. 세금을 내고 났더니 입출금통장 잔고가 푹 꺼졌다.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더 마이너스가 되어 한도에 접근 했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일을 많이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부가세는 반기 성적표와도 같다. 매출에서 매입을 뺀 것에 대해 10프로 부과한 것이 부가세이다. 당연히 주어야 할 돈을 주는 것이다. 부가세를 보면 반기동안 얼마를 벌었는지 알 수 있다.

사업한지 15년 되었다. 개인사업자는 매년 5월이 되면 종합소득세를 내야 한다. 매년 1월과 7월에는 부가세를 내야 한다. 바탕이 되는 자료는 세금계산서이다.

일이 끝나면 세금계산서를 작성해야 한다. 국세청 신고용이다. 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한다. 옛날에는 경리가 하던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감 수주에서 부터 견적, 설계, 납품 등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처리한다.

커피 타서 마시는 것도 혼자 해야 하고 사무실 청소도 혼자 해야 한다. 혼자 일하다 보니 시킬 사람도 없고 도와 줄 사람도 없다. 문제가 발생해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컴퓨터 세팅도 혼자해야 하고 프린터 설치도 혼자 해야 한다. 만능엔테테이너처럼 만능이 되어야 한다.

요즘 연예인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개그이면 개그 등 만능연예인들이다. 일인사업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감 수주부터 계산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혼자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20년 했다. 월급생활자로 산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자신의 일만 하면 됐었다. 세금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자금담당도 따로 있었고 영업담당도 따로 있었다. 이와 같은 형태를 부분 노동자라고 한다.

부분노동자는 부속품과 같은 존재이다. 맡은 분야에서 기계적인 일만 수행할 뿐이다. 업무가 분업화 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기계장치와도 같다. 콘베이어벨트 앞에 앉아 있는 노동자를 보면 인간기계라 아니할 수 없다.

일인사업자는 농사 짓는 농부와도 같다. 처음 부터 끝까지 혼자 다하는 것이다. 기획단계에서 부터 영업, 수주, 설계, 납품, 계산서작성에 이르기까지 혼자 해야 한다. 또한 가내수공업자와 같다고도 볼 수 있다.

부속품 같은 인생을 산 적 있었다. 직장생활 했을 때를 말한다. 고정수입은 보장 되었지만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월급 받아 먹는 것 때문에 시간을 바친 것이다. 회사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다. 사용자 것이다. 그 시간 만큼은 노예처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오늘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초분을 다투어 일 했다. 벌써 몇일째인지 모른다. 일감이 겹치기로 들어 와서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설계 하는 도중에 전화가 오면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 일감 주는 사람이 늘 물어 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요즘 바쁩니까?"라는 말이다. 이럴때는 바빠도 바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바쁘다고 말하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분노동자는 회사일을 자기 일처럼 하기 힘들다. 시간 되면 손 놓고 나가야 한다. 나가서 자유를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밤에도 주말에도 휴가철에도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이 없는 이유도 있다.

일인사업자가 하는 일은 자신의 일이다. 자기 일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있다. 밤낮없이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하는 이유가 된다.

일인사업자의 일은 가내수공업같은 것이다. 소규모이기 때문에 일인다역이 되서 일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랑한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월급생활자로 살기 힘들 것 같다.

은퇴할 나이가 훨씬 지났다. 올해부터 국민연금 수혜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역이다. 일인사업자에는 정년이 없다.

오늘 7월 마지막날에 결재 했다. 돈이 나가기 때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한편 뿌듯하기도 하다. 비록 소액이지만 보시하기 때문이다.

보시하는 즐거움으로 산다. 보시할만한 곳을 선정해서 계좌이체 했을 때 상쾌하다. 임대료나 관리비는 아깝지만 보시금으로 나가는 금액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많이 가졌어도 인색한 자가 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산다면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보시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십억 집에 살아도 빚이 많다면 만원도 보시하기 힘들 것이다.

요즘 보시하는 재미로 산다. 매달 말일에 결제할 데 결제하고 보시하고 싶은 데 보시하면 된다. 소액이다. 능력에 맞게 형편에 맞게 보시한다. 수입이 많다면 금액도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보시하고자 했을 때 마땅히 보시하고 싶은 곳을 발견하기 힘들다.

보시의 대상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정법을 수호하는 곳이라면 일순위가 된다. 다음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곳이면 된다.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는 사람이나 단체라면 누구나 어디나 보시의 대상이 된다.

보시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몇달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소액을 자동이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시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매달 말일 결제할 때 보시도 함께 하면 훨씬 즐거워진다. 너무 늦게 안 것 같다. 이 모두가 통장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남는 것은 보시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많이 벌었어도 결국 다 사라지고 만다. 있을 때 보시해야 한다. 돈은 사라지고 없지만 보시공덕은 남아 있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어도 보시하지 않는다면 그는 가난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적게 가졌지만 능력껏 보시한다면 그는 부자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일곱 번째로 지혜의 재물이 있네.

여인이나 남자에게
이러한 재물이 있다면,
신들과 인간의 세계에서
그는 실로 대부호이고 정복될 수 없다네."(A7.7)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반드시 물질적 재물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신적 재물도 있다고 했다. 일곱 가지 정신적 재물 중의 하나가 보시의 재물이다.

보시도 재물이라고 했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정신적 재물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정신적 재물을 가진 자에 대하여 대부호와 같다고 했다. 부처님은 보시의 재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시의 재물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의 고귀한 제자는 마음속에 인색의 때를 제거하여 관대하게 주고 아낌없이 주고 기부를 즐기고 요구에 응하고 베풀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집에서 사는 것이다.”(A5.47)

먼저 인색의 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색한 자는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그가 천문학적 재산을 가졌더라도 자신과 아웃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그는 가난한 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결제하는 날은 보시하는 날이다. 이제 두 달 되었다. 보시 대상을 찾아서 계좌이체 했을 때 그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2022-07-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