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正法)은 어떻게 수호되는가?
인도 서부지방에 어느 수행승이 있었다. 그는 중앙에 있는 중부지방으로 여행했다. 수행승은 어느 수행승들의 처소에 머물렀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중부지방 수행승들이 금과 은을 받는 것이었다.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은 금과 은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싸끼야의 아들을 따르는 수행승들에게 금과 은은 허용되지 않습니다.(S42.10)”라고 했다. 더 나아가 “나는 금과 은을 허용해도 좋을 어떤 이유나 구입해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S42.10)”라고 했다.
무소유와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수행승이 금과 은이 필요 있을까? 탁발에 의존하며 사는 수행승은 금과 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금과 은이 허용된다면 재산을 축적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탁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수행승에게 금과 은이 허용된다면 청정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과 열반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만약 누군가 금과 은을 허용할 수 있다면 그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도 허용할 수 있습니다.”(S42.10)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한 것이다. 눈이나 귀, 코, 혀 등으로 형상, 소리, 냄새, 맛, 접촉을 탐하는 삶을 산다면 청정한 삶은 요원한 것이다. 금과 은, 즉 돈을 추구했을 때 동시에 감각적 쾌락의 욕망도 함께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염불선으로 유명한 청화스님은 “승려가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공부 안합니다.”라고 했다.
원칙은 변방에서 잘 지켜진다
서부에 살던 수행승은 원칙대로 살았다. 법대로 산 것이다. 비구계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부지방 베쌀리에 와서 보니 수행승들이 금과 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서부수행승은 중부수행승들이 금과 은을 받는 것에 대하여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그리고 재가자들에게는 “벗들이여, 참모임에 일 까하빠나, 반 까하빠나, 사분지일 까하빠나, 일 마싸까를 보시 하지 마시오.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에게 금과 은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은 금과 은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은 이미 보석과 황금을 버렸고 금과 은을 떠났습니다.”(Vin.II.294)라고 말했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변방에서 원칙이 잘 지켜 짐을 말한다. 부처님의 계율도 그렇다. 계율이 만들어진 마가다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보다는 아반띠와 같은 서부지역에서 계율이 잘 지켜졌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유학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학의 발생지인 중국에서는 변화되어서 다른 형태로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박제품을 보는 것처럼 초창기 때 전승된 것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계율도 이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열 가지 허용에 대하여
서부지방에서 온 수행승은 실망했다. 계율의 발상지인 중부지방 수행승들은 계율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장에 따르면 이때가 부처님 사후 백년가량 되었을 때라고 한다.
율장소품 제12장에 있는 ‘칠백결집의 다발(七百健度)’이 있다. 율장에 따르면“세존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이후 일백년이 되었을 때, 베쌀리 시에서 밧지 족의 수행승들이 열 가지 사항을 제기했다.”(Vin.II.294)라고 했다. 열 가지(dasavatthuni)는 다음과 같다.
“1) 소금뿔 휴대와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2) 손가락 두 마디와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3) 마을 안과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4) 처소와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5) 승인과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6) 관례와 관련된 실천은 허용된다.
7) 젓지 않은 버터밀크는 허용된다.
8) 미발효술을 마시는 것은 허용된다.
9) 테두리 없는 좌구는 허용된다.
10) 금과 은은 허용된다.”(Vin.II.294)
중부지방 베쌀리에 사는 수행승들은 위와 같은 열 가지를 허용하고 있었다. 서부에서 온 수행승이 보기에는 계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의문을 품고 잘못을 밝히는 과정에 대한 것이 ‘칠백결집의 다발(sattasatikakkhandhaka)’이다. 한역으로 칠백건도(七百健度)라고 한다.
오늘날 율장은 누구나 볼 수 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는 율장을 완역했다. 율장은 대품, 소품, 비구계, 비구니계, 부수,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최근에는 이를 통합본으로 발간한 바도 있다.
율장을 보면 그 때 당시 시대상황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율장이 성립된 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율장이 중요할까? 그것은 정법과 관련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정법수호에 대한 것이다.
정법은 어떻게 수호될까? 이는 율장 소품에서 칠백다발의 결집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번역본을 보면 거의 30페이지에 달하는데 마치 중편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열 가지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잘못인지 밝혀 내고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 정법수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금과 은의 예가 대표적이다.
네 가지 수행승의 오염
수행승이 금과 은을 받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부처님이 받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라면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처님 사후 백년이 되었을 때 차츰차츰 계율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계율의 발상지에서 진보적인 수행승들에 의해서 열 가지가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하여 율장에서는 수행승들의 타락이라고 했다. 율장에서는 해와 달의 오염으로 비유했다. 해와 달이 구름, 안개, 연무, 라후로 오염되면 빛을 잃는데 율장에서는 네 가지 수행승의 오염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수행승이나 성직자가 곡주나 과일주를 마시는 것과 삼가지 하지 못하는 것
2) 수행승이나 성직자가 성교를 일삼는 것과 삼가지 못하는 것
3) 수행승이나 성직자가 금과 은을 받는 것과 삼가지 못하는 것
4) 수행승이나 성직자가 잘못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삼가지 못하는 것
(Vin.II.295-296)
수행승의 네 가지 오염에서 금과 은을 받는 것이 있다. 금과 은을 허용하면 감각적 욕망도 허용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수행자의 타락이다. 감각적 욕망을 허용하면 성교도 허용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생활을 했을 때 정법은 수호되지 않는다.
권리정지조치 갈마를 해서 추방하고자
율장 소품에 실려 있는 칠백결집의 다발은 한마디로 정법수호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부처님의 권위에 의해서라도 계율이 지켜졌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누군가 계율을 자의적으로 또는 진보적으로 해석한다면 계율의 오염이 된다.
서부지방에서 계율대로 살던 수행승의 눈에 비친 중부지방 수행승들의 삶은 잘못되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자 중부지방 수행승들은 권리정지갈마를 행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금과 은을 받든 수행승은 싸끼야의 아들들이 아니라고 재가자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문제 되는 사람들은 있었던 것 같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의 꼬투리를 잡아서 추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금과 은을 받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자 권리정지조치 갈마를 해서 추방하고자 한 것이다.
비법(非法)이 득세 했을 때
서부수행승은 위기를 느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했는데 쫓겨 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서부수행승은 서부지역 수행승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어떻게 알렸는가? 다음과 같은 말로 알 수 있다.
“존자들이여, 오십시오. 이 쟁사에 참여합시다. 예전에 가르침이 아니었던 것이 번영하고 가르침이었던 것이 쇠퇴하고, 예전에 계율이 아니었던 것이 번영하고 계율이었던 것은 쇠퇴하고, 예전에 가르침이 아니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강해지고, 가르침이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약해지고, 예전에 계율이 아니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강해지고, 계율이었던 것을 설하는 자가 약해집니다.”(Vin.II.298)
우리 속담에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이 있다. 열 가지 계율을 지키지 않는 중부수행승들은 서부수행승을 추방하기 위해서 권리정지조치 갈마를 시행하고자 했으나 역공 당했다. 서부수행승이 이런 사실을 서부지역과 그 외 지역 승가에 알린 것이다. 그래서 이 쟁사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느 시대에서나 세력이 있어야 한다. 세력이 있어야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승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비법이 득세 했을 때 정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결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을 보면 장로수행승들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편을 얻으면, 이 쟁사에서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는가?”(Vin.II.299)라며 고민하게 된다.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을 보면 정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애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비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정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수행승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계율을 잘 지지고 계율에 대하여 잘 아는 장로수행승을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존자 레바따를 우리의 편으로 얻으면, 이 쟁사에서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Vin.II.299)라고 말한다.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수행승들은 결집했다. 무려 칠백명이나 모였다. 그들은 비법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이 쟁사에 참여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빠바 지역에서 60명의 수행승들이 참여했고, 아반띠 국에서는 80명의 수행승들이 참여했다. 그들에 대해서 율장에서는 “모두가 숲속의 거주자, 모두가 탁발걸식자, 모두가 분소의를 걸치는 자, 모두가 세벌 옷을 걸치는 자, 모두가 거룩한 님”(Vin.II.299)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아라한이었던 것이다.
권위 있는 장로수행승을 필요로 하는 승가
승가에는 권위 있는 장로수행승을 필요로 한다. 쟁사가 발생 했을 때 물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법랍이 높은 장로수행승의 한마디는 사실상 재판관이나 다름 없다. 어느 면으로 본다면 정법을 수호하고 있는 장로수행승의 권위에 의해서 승가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 사후 백년에 벌어진 십사문제도 그랬다.
율장에 따르면 십사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행승들은 결집했다.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어른이 되는 장로수행승을 모셔야 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140세 되는 장로수행승이 있었다. 쌉바까민이라는 장로수행승을 말한다.
율장에 따르면 쌉바까민은 쟁사가 일어 났을 때 법랍이 120세였다고 한다. 주석에 따르면 장로는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직전에 베쌀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장로는 20세 때 아난다 존자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십사문제가 발생된 것은 부처님 사후 백년이 되었을 때이다. 그런데 율장에 따르면 놀랍게도 부처님 당시에 태어난 수행승이 있었다는 것이다. 법랍이 120년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로의 세속 나이는 140세가 된다. 이와 같은 계산법으로 따지면 십사문제가 발생한 것은 부처님 사후 140년이 된다.
부처님의 정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날수록 정법은 오염되고 변질 된다. 부처님 사후 백년까지는 잘 지켜 졌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에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이 120세가 되었다면 백년 동안은 정법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부처님 당시의 계율이 살아 있는 장로를 통해서 성성히 살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장로에게 물어 보았을 것이다. 장로의 한마디에 비법은 설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이 모두 사망했을 때 정법은 오염되기 시작했다. 대략 부처님 사후 백년으로 보고 있다. 이때쯤 되면 부처님 당시를 기억하는 수행승들도 사라졌을 것이다.
가르침과 계율은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었을 때 어느 수행승에게서 계율을 자의적으로 또는 진보적으로 해석했을 때 십사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에서는 140세가 되는 장로수행승이 있었다는 것이다.
십사문제로 인한 결집이 열렸다. 무려 칠백명이나 되는 수행승들이 모였다. 그들 대부분은 장로들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아라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어른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고 더구나 아난다 존자에게 구족계를 받은 140세의 쌉바까민 장로를 말한다. 이 정도가 되면 승가 최고의 어른으로서 권위를 가질 만 한다.
단사위원평결로
어느 모임이든지 의견대립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여당과 야당을 보면 알 수 있다. 평행선을 달리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승가의 갈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각측에서 네 명을 대표를 뽑았다. 이에 대하여 율장에서는 ‘단사(斷事)위원평결(ubbāhikā)’이라고 했다. 오늘날 위원회 같은 것이다.
단사위원은 동수로 구성되었다. 율장에서는 이렇게 단사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가 쟁사를 결정할 때, 끝없는 논쟁이 일어났는데, 하나의 논쟁도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참모임에 옳은 일이라면, 참모임은 이 쟁사를 단사위원평결로써 해결하고자 네 명의 동쪽에서 온 수행승들과 네 명의 빠바시에서 온 수행승들을 선정하겠습니다. 이것이 제안입니다.” (Vin.II.299)
마치 오늘날 민주주의를 보는 것 같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을 때 동수를 선정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동쪽에서 온 사람들은 베쌀리 수행승들의 십사에 대하여 동조하는 수행승들을 말한다. 빠바시에서 온 사람들은 십사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고 보는 수행승들을 말한다.
위원회는 동수로 구성되었다. 다음 단계는 사안 하나하나를 따져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금과 은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갈마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금과 은은 허용됩니까?”
“벗이여, 허용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금지되었습니까?”
“라자가하 시에서 입니다. 쑷따비방가에 있습니다.”
“무엇을 범했습니까?”
“금과 은의 수용에 대한 속죄죄입니다.”(Vin.II.307)
동수로 구성되어 있는 단사위원회에서 의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이가 가장 많고 법랍이 가장 많은 140세의 쌉바까민 장로가 선정되었다. 장로는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금과 은은 허용되지 않았다. 금과 은을 가지면 율장 쑷따비방가 상실죄법 제18조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회의 진행자는 “이 사항은 삿된 원리이고 삿된 계율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떠난 것입니다.”(Vin.II.307)라고 했다.
문답을 보면 어떻게 정법이 수호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가르침과 계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 때 당부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 때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뒤에 내가 가르치고 제정한 가르침과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123)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후불식에 대하여
베쌀리의 진보적인 수행승들은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든지 백년이 넘었을 때 계율을 어겼다. 이른바 십사, 열 가지 계율에 대한 것이다. 이중에는 오후불식에 대한 것도 있다.
오늘날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수행승들은 정오가 지나면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율장에서는 “손가락 두 마디”와 관련된 실천이라고 말한다. 손가락 두 마디의 해그림자가 지나면 식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은 오후에 식사하고 있다. 아마도 중부지방의 베쌀리 수행승의 견해를 따르는 것 같다.
오후불식에 대한 것은 이미 판결 난 것이나 다름 없다. 부처님 사후 백년이 넘었을 때 오후불식을 어기는 것에 대하여 칠백결집의 다발에서는 오후에 식사하는 것에 대하여 속죄죄를 범한 것이라고 했다. 오후에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사항은 삿된 원리이고 삿된 계율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떠난 것입니다.”(Vin.II.307)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헌법은 최상위법이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넘어설 수 없다. 율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불교전통에서 청규가 있다고는 하지만 율장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 없다. 부처님이 오후에 식사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는 지켜져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탁발은 금지되어 있다. 조계종에서는 승가의 위의를 손상한다고 하여 공식적으로 금지한 바 있다. 그렇다면 율장정신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오후불식일 것이다.
정법(正法)이란 무엇인가?
정법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는 부처가 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에 무수한 부처가 출현했다는 것은 정법이 언젠가 변질되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 재세시에 정법이 가장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정법이란 무엇인가? 이는 율장에 명백히 정의 되어 있다.
“Smp.225에 따르면, 정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교법상의 정법(pariyattisaddhamma): 삼장의 모든 부처님 말씀, 2) 행도상의 정법(paṭipattisaddhamma): 열세 가지 두타행, 열네 가지 의무, 여든 두 가지 대의무, 계행-삼매-통찰, 3) 증득상의 정법(adhigamanasaddhamma): 네 가지 고귀한 길(四向)과 네 가지 경지(四果)와 열반을 뜻한다.”(율장 부기 7장)
정법은 크게 교법, 행도, 증득으로 나눌 수 있다. 삼장과 삼학 수행으로 도와 과를 이룬 성자들이 출현했을 때 정법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삼장은 교학에 대한 것으로 율장, 경장, 논장을 말한다. 삼학은 수행에 대한 것으로 37조도품을 말한다. 삼학은 계-정-혜 삼학에 대한 것으로 팔정도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팔정도가 없으면 정법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장도 있고 삼학도 있지만 사향사과와 열반을 증득하는 자가 나오지 않으면 정법시대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빠알리삼장이 전승되어 왔고, 팔정도 수행이 있고, 팔정도 수행으로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다면 정법시대인 것이다.
갈마를 하는 목적은
정법은 부처님의 제자가 살아 있을 때까지도 잘 유지되었을 것이다. 가르침과 계율에 대하여 의문이 생기면 부처님 직제자들에게 물어 보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직제자마저 사라졌다면 어떻게 될까?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에서 보는 것처럼 십사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십사문제는 서부의 한 수행승에 의해서 문제가 제기 되었다. 비법을 저지른 수행승들이 그를 권리정지조치갈마로 쫓아 내고자 했으나 오히려 역공 당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청정한 수행승들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칠백명의 수행승들이 열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였다. 논의가 무성할 뿐 결론이 나지 않자 양측 네 명으로 구성된 여덟 명의 단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에서 가장 연장자가 사회를 보았다. 열 가지에 대하여 묻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비법이 들어났다.
열 가지는 부처님 가르침과 계율에 어긋난 것이었다. 마치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오후에 식사하는 것, 금과 은을 가지는 것 등 열 가지는 모두 비법으로 간주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정법이 수호되었다.
정법은 수호되어야 한다. 갈마를 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비구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가르침과 계율을 어기는 수행승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정법을 수호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율장소품 칠백결집의 다발(七百健度)는 정법수호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역사적으로 제2차 결집이라고 한다.
2022-08-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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