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내가 술 마시지 않는 이유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1. 08:52

내가 술 마시지 않는 이유는


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마셨으나 요즘은 마시지 않는다. 살다 보니 이런 변화도 있다.

술은 필요악이다. 없으면 좋지만 사회생활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빠질 수 없다. 그날만은 예외로 한다. 문제는 혼자 마시는 것이다.

혼밥이 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말한다. 혼밥이 있으면 혼술도 없지 않을 수 없다. 혼자 밥은 먹을 수 있어도 혼자 술 마시는 것은 청승맞아 보인다.

술은 함께 마셔야 맛이 난다. 여럿이서 유쾌하게 마시는 술자리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웃고 떠들다 보면 날 샐 것이다. 술집 문을 나섰을 때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술은 즐거워도 마시고 슬퍼도 마신다. 애주가는 갖가지 이유로 일주일 내내 마시다시피 한다. 술 상대가 없으면 혼자 마실 것이다.

술은 강한 중독성을 특징으로 한다. 중독이 되면 자신의 의지로 끊을 수 없다.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었을 때 술의 노예가 된다. 결국 술에 의해서 심신이 망가질 것이다.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술 권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말하면 싱거울 것이다. 거하게 한상 차려 놓고 호기롭게 술을 마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누군가 술이나 한잔 할까?”라고 말하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불교에는 불음주계가 있다. 무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술 마시지 말라는 계는 불교에만 있는 것 같다. 기독교의 십계명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계 중의 하나인 불음주계가 불교에 있다는 것은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다. 청정한 삶에는 장점이지만 포교에는 단점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은 왜 술 마시지 말라고 했을까? 계사에 따르면 술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음주로 인하여 살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음주계를 어기면 오계를 어기는 계기가 됨을 말한다.

불음주계를 수행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술이 들어 가면 취하게 되어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취한 상태에서 좌선을 할 수 없다. 취한 상태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다. 취한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 없다. 집중을 요구하는 상태에서 술은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로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술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욕망으로 마시고 분노로 마시고 어리석음으로 마셨을 때 불선업이 된다. 오계를 어기는 요인이 되고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득보다 해가 더 많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좋을 것이다. 어디까지 적당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수년전 조계종단에서 불음주계 캠페인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취하지 않게 마시기였다. 마시긴 마시되 취하지 않게 마시자는 것이다. 취하지 않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상 음주를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처님의 여러 가르침 중에 우정의 가르침이 있다. 선우의 가르침도 있지만 악우에 대한 것도 있다. 악우의 조건 중의 하나는 음주와 관련되어 있다.

악우의 조건은 무엇일까? 경에서는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친구, 말만 앞세우는 친구,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 나쁜 짓거리에 동료가 되어주는 자.”(D31) 라고 했다. 여기서 나쁜 짓거리에 동료가 되어주는 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①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② 때가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③ 흥행거리를 찾아다닐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④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미칠 때에 동료가 되어줍니다.”(D31)


나쁜 짓거리 첫 번째가 음주임을 알 수 있다. 술 마시기 위해 거리를 배회할 때 노름에 빠질 수 있다. 술은 온갖 악행의 근원이 됨을 말한다.

술은 술을 부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술은 도박을 부르고 여자를 부른다.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는 오계로 금하는 것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다. 이래가지고서는 재산을 모을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디가자누여, 이와 같이 갖춘 재산에 네 가지 손실의 출구가 있습니다. 여자에 탐닉하는 것, 술에 취하는 것, 도박에 빠지는 것, 악한 벗을 사귀고 악한 친구를 사귀고 악한 동료를 사귀는 것입니다. 디가자누여, 커다란 호수에 네 입수구가 있고 네 배수구가 있는데, 사람이 입수구를 닫고 배수구를 열어 놓았고, 하늘이 소나기를 내린다면, 디가자누여, 그 커다란 호수는 반드시 낮아지고 높아지지 않습니다. 디가자누여, 이와 같이 갖춘 재산에 네 가지 손실의 출구가 입구가 있습니다.”(A8.54)


그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여자에 탐닉하고, 술에 취하고, 도박에 빠지고, 악우를 사귄다면 밑 빠진 독이 될 것이다. 들어오는 것은 적고 나가는 것은 많을 때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술은 여색과 도박과 함께 패가망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숫따니빠따 파멸의 경’(Sn1.6)에서는 여색에 미치고 술에 중독되고, 도박에 빠져있어 버는 것 마다 없애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Stn.106)라고 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술로 인한 폐해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십계명에는 불음주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개신교에만 있는 계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오계 중의 하나로 못 박아 놓았다.

불교에서 불음주계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기독교 십계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십계명을 보면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 등의 열 가지가 있다. 모두 하지 말라.”로 끝난다. 어기면 큰 일 나는 것이다. 어기면 죄를 짓는 것이 되어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지키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면 지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오계는 하지말라는 정언명령이 아니라 삼가는 것이다. 불음주계는 술 마시지 말라.”는 정언명령이 아니라,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가 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 번역이다.

본래 계는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오계 역시 지키기 어렵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계를 어기는 삶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술 마시지 말라고 했을 때 이는 술을 삼가는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술을 단번에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음주계를 어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계가 파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파계자로 살 수 없다. 계를 복구해 놓아야 한다. 지키지 못할 계라 하여 지키지 않은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법회에 참석하여 새로 받아 지녀야 한다. 이것이 학습계율이다.

어기면 참회하고 받아 지니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계가 완성될 것이다. 모든 불교계율이 그렇다. 수백가지에 달하는 구족계도 보름마다 포살법회 때 다시 받아 지닌다. 계는 단계적으로 일생에 걸쳐서 완성된다.

지금 계를 어겼다고 하여 자책할 필요가 없다. 지키지도 못할 계라 하여 아예 지키지 않는다면 정언명령의 계와 같다. 불교에서 계는 트레이닝, 즉 훈련으로 완성되는 계이다. 그래서 오계를 식카빠다(sikkhapada), 즉 학습계율이라고 한다. 오계에서 공통적으로 식카빠당 사마디야미라 하여,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로 말미가 끝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담금주가 있어도 마실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입에 조금 댈 것이다. 취하게 마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취하게 마셨다면 욕망으로 마신 것이기 때문에 불선업이 된다. 계가 파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법회에 참석하여 복원시켜 놓아야 한다.

테라와다불교 법회에서는 반드시 오계를 한다. 법회에 참석할 때 마다 오계를 받아 지니기 때문에 늘 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대승불교 법회에서는 오계를 볼 수 없다. 삼귀의는 하지만 오계하는 곳은 드문 것 같다. 누군가 피치 못해 불음주계를 어겼을 때 법회에서 오계가 없다면 파계 상태로 있게 된다. 그래서 조계종단에서는 취하지 않게 마시기 캠페인한 것일까?

계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을 수호하는 것도 되지만 동시에 타인도 수호하는 것이 된다. 만일 인간세상에 오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누군가 술 마시자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술친구는 악우라 하여 거절해야 할까? 누군가 술 마시자고 하면 나갈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다. 설령 그가 횡설수설하며 내 시간을 빼앗는다고 할지라도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해 줄 것이다. 그도 언젠가 술을 그만둘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그 대신 차나 한잔 하자고 말 할 수 있다. 술은 하면 할수록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차는 하면 할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나에게 술은 집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매순간 사띠해야 하는데 취한 상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2021-08-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