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흥미진진한 율장 여행을 떠나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8. 15:41

흥미진진한 율장 여행을 떠나며

오늘부터 대장정에 들어간다. 율장 읽기 대장정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맛지마니까야 읽기 할 때처럼 머리맡에 놓고 읽을 작정이다.

맛지마니까야를 다 읽었다. 그때도 선언하고 읽었다. 거의 육개월 걸렸다. 이렇게 선언하면서 읽는 것은 결정바라밀에 해당될 것이다.

경전읽기는 대륙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도보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횡단하는 것이다.

대륙을 자전거나 오토바이, 자동차 등 탈 것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은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다. 대륙 도보 횡단은 일종의 구도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옛날 구법승들이 인도로 갔듯이 걸어서 가는 것이다.

세계여행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은퇴한 사람들이 여생을 여행으로 보내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여행지에서 죽어도 좋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진정한 여행가라고 볼 수 있다.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자전거 여행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오토바이 여행하는 사람이나 자동차 여행하는 사람도 여행지에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전거 여행가, 진정한 오토바이 여행가, 자동차 여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행지에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즐기는 여행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비행기나 크루즈 여행과 같은 것이다.

옛날 구법승들은 목숨을 걸었다. 실제로 구법여행 도중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여행기를 보면 죽음의 막하연적(莫賀延磧)을 건넜다. 옥문관에서 하미에 이르는 400키로 거리의 고비사막을 말한다. 그때 이정표로 삼았던 것은 사막을 건너다 죽은 자의 해골이었다.

현장 스님은 구법여행 할 때 81난을 겪었다. 81난은 후대 서유기의 모티브가 된다.

초기경전, 즉 니까야를 모두 갖추었다. 사부니까야를 포함하여 쿳다까니까야(소부경전) 일부도 갖추었다. 빠알리 삼장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거의 다 갖추었다.

경전을 사 놓고 읽지 않으면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십권이나 되는 니까야를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읽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자만이다. 그동안 경솔했다. 경전을 읽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경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보아야 한다.

종종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저 불교학자는 경전을 다 읽어 봤을까?"라는 의문이다. 방대한 초기경전을 당연히 읽었을 줄로 믿는다. 저 스님을 보면 역시 "저 스님은 사부니까야를 포함한 쿳다까니까야 일부 경전을 다 읽어 보았을까?"라는 의문이다. 당연히 다 읽어야 할 것이다.

불교학자와 스님이 경전을 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쓴 글이나 말로 파악할 수 있다. 글이라면 부분적으로 본 것을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말이다. 대화 하다 보면 드러난다. 토론하다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이제까지 경전을 부분적으로 읽었다. 무려 십년 이상 이렇게 읽었다. 방대한 경전을 처음부터 소설읽듯이 읽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최근 이런 태도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 봄에 안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맛지마니까야 읽기였다.

맛지마니까야 읽기를 선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머리맡에 두고서 잠자기 전에도 읽었고 잠에서 깨어서도 읽었다. 방에서 등과 머리를 벽에 댄 채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읽었다.

경전을 읽을 때는 형광메모리 펜 두 개를 준비했다. 노랑색과 분홍색이다. 새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노랑색 칠을 해 두었다.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은 것은 분홍색 칠을 해 두었다. 나중에 그 부분만 보면 된다.

오늘부터 율장 읽기에 돌입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발간된 것을 교재로 한다. 모두 3,582페이지에 달한다. 그것도 2단 칼럼에 폰트 사이즈도 작은 것이다. 마치 바이블처럼 인조가죽 케이스로 되어 있다.

율장(Vinaya)은 모두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대품, 소품, 비구계, 비구니계, 부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부기를 교정한 바 있다. 부기가 완역 되었을 때 교정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KPTS에서 발간된 율장은 통합본이다. 이전에는 개별로 발간된 것이었다. 개정판에서는 대품, 소품, 비구계, 비구니계를 통합하고 여기에 새로 번역된 부기를 합쳤다. 그래서 한권으로 된 율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율장의 양을 보면 니까야(경장) 못지 않게 방대하다. 율장에는 니까야에 없는 내용도 있다. 이는 “어리석은 자여, 오히려 맹독을 지닌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 넣지 말라.” (Vin.III.21)라는 가르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문구는 경장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율장에는 니까야와 중복되는 내용도 많다. 율장 대품에 실려 있는 부처님의 정각에 대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경장과 중복되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다. 그래서일까 율장 대품에 실려 있는 게송을 보면 '경서와 논서를 잃어 버려도 율서만 있으면 정법이 오래 유지된다'라고 했다.

율장에는 계율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부처님 설법에 대한 것도 많다. 경장에 있는 중요한 가르침은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경장만 있고 율장이 없다면 가르침은 오래 유지 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경장은 없고 율장만 있다면 교법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승가공동체가 있는 한 부처님의 교법은 유지된다. 반면 경장만 있고 율장이 없다면 불교는 쇠퇴할 것이다. 삼보에서 승보가 없는 불교, 승가공동체가 없는 불교는 소멸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출재가를 막론하고 율장은 경장과 함께 항상 지녀야 하고 또한 배워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율장 여행을 떠난다. 가르침의 대륙을 도보여행 하듯이 구법여행 떠나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여행지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구법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율장에는 나까야(경장)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내용도 많다. 학자도 아닌, 스님도 아닌 재가불자가 율장여행 떠난다.

2022-10-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