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 지식인들에게서 공감부족과 나약함과 교만을 보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19. 13:15

불교 지식인들에게서 공감부족과 나약함과 교만을 보는데

 

 

어느 스님이 올린 글에 쏘아 붙였다. 댓글에다가 교수들 잔치군요.”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몇 년 만에 열리는 불교평론 강연회를 말한다. 일곱명의 강연자는 물론 사회자도 교수출신들이다. 스님도 교수를 했었기 때문에 교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불교평론 강연주제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와 불교이다. 2022년 만해축전 일환으로 열린다고 한다. 포스트휴먼이라는 말은 아마도 코로나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는 강연자의 발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래 인간과 환경, 그리고 불교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826일 조계사 내에 있는 불교역사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한때 불교평론을 열심히 보던 때가 있었다. 블로그에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 2005년에 발견했었다. 주옥 같은 논문과 수필을 블로그에 보관해 두었다. 수많은 불교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지면에서나 볼 수 있었다. 불교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극히 일부 사람들만 불교개혁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땅에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최고 학부를 나와서 최상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유학파도 있다. 이들을 직접 본 적이 별로 없다. 지면에서 종종 본다. 강연회가 열리면 강연장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강연회가 열리면 교수들 잔치가 되는 것 같다. 매번 강연회가 열릴 때 마다 똑같은 이름을 본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져 보지만 매번 그 얼굴이라서 식상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실천력을 문제 삼는다.

 

흔히 말하기를 지식인들은 실천이 부족하다고 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숨어 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2019년 김동수열사 추모제 때 지선스님이 말한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지선스님에 따르면 광주민중항쟁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층민이었다고 했다. 가장 지위가 낮은 하층사람들 희생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지식인들은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선스님은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는 민중이라고 했다.

 

지식인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배운 만큼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강의를 했다면 앞에 나와서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 그런가? 직업이기 때문이다. 강연을 하면 지식인들의 무대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지식인들에게 실천력까지 겸비하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한가지만 잘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가에게 강연을 하라고 했을 때 사양하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연장이 교수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불교에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있다. 자리이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이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네 사람 가운데 최상이고 수승하고 가장 훌륭하고 훨씬 탁월하다.”(A4.95)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교수들이 강연에 참여하는 것은 자리이타행의 실현일 것이다.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본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강의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에게 발표장에서 강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더 높은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실천이다. 알고 있는 것을 강연장에서 말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약한 지식인이라든가 비겁한 지식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수련회가 있다. 교수 출신들은 거의 대부분 빠졌다. 아마도 바쁜 일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명만 참석했다. 대부분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이런 사태로 보았을 때 교수들은 실천력이 약한 것 같다.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것은 피하는 것 같다.

 

지식인들을 비판해 보았다. 그러나 모두 구업에 해당된다. 부처님은 이렇게 당부했다.

 

 

칭찬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칭찬해야 할 것을 알고 비난해야 할 것을 알고 나서, 칭찬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말고 오로지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하고,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고 나서,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비밀스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공개적으로 날카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M140)

 

 

칭찬도 하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 이는 그러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고통을 수반하고 상처를 수반하고 불안을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하는 것으로 잘못된 길이다.” (M140)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을 아름답게 예쁘게 해야 한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상대방을 비난한다면 똥과같이 말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무엇보다 걸리는 말은 공개적으로 날카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M140)라는 가르침이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무기가 될 수 있다. 글로서 상대방을 찌르는 것이다. 마치 입에 칼을 물고 찌르는 것과 같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며 찌르는 것이다. 이런 날카로운 글 역시 상대방을 찌르는 것인지 모른다.

 

이 땅에 지식인들이 있다. 불교지식인들도 있다. 교수라고 해서 불교지식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자리에서나 그들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생계형 학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요즘 내가 교수들 강연장에 잘 가지 않는 이유가 된다. 한국불교 지식인들에게서 공감부족과 나약함과 교만을 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2022-08-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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