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소극적 공리주의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29. 14:03
소극적 공리주의

소극적 공리주의자가 있다. 사전적 정의가 있겠지만 조금도 남에게 폐 끼치 않으려는 사람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주로 지식인들에게서 본다.

그사람은 좀처럼 공감하지 않는다. 그사람은 하루에도 몇차례 글을 올리는데 그때 마다 '좋아요' 또는 '최고에요'를 눌러 준다. 여기에 더하여 긍정적 댓글을 달아 준다. 그럼에도 그사람은 요지 부동이다.

현실공간에도 친구가 있지만 가상공간에도 친구가 있다. 현실공간의 친구는 진짜 친구이고 온라인에서의 친구는 가짜 친구일까? 그 사람은 좀처럼 공감해 주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 공감해 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 설령 견해를 달리한다고 해도 잘 쓴 글에는 공감해 준다. 설령 그렇고 그런 글이라 하더라도 자비의 마음으로 공감해준다.
이것이 사람 사는 맛 일 것이다.

그사람은 왜 공감하지 않는 것일까? 따져 묻고 싶다. 그사람이 공감하지 않는 것은 성격으로 본다. 삶의 과정에서 형성된 성향일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착하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소극적 공리주의로 본다.

한때 신조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한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자 모든 것이 소극적으로 되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착하게 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만 살면 잘 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소극적 공리주의가 만연하면 어떻게 될까? 옆에서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소극적 공리주의자들은 자신의 일만 잘 하면 될 줄 안다. 민주주의가 위기이건 말건, 자원이 고갈되건 말건, 환경이 악화되건 말건, 기후 온난화 위기가 있건 말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거울신경세포가 마비된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칭찬해 주는 글임에도 공감할 줄 모른다면 그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해야 한다. 분노할 때는 함께 분노해야 한다. 타인의 성공과 번영에 대해서 기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애, 연민, 기쁨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공감 아이콘 누른다. 읽었으면 짤막한 코멘트를 달아준다.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면 반드시 공감해 준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넷상에도 예의가 있고 예절이 있다. 어떤 이는 대단히 예의 바르다. 이는 공감과 댓글로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만나서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 선물이라도 해 주고 싶다.

넷상에서는 거의 대부분 소극적 공리주의자들 같다. 더구마 자신이 올린 글에 달린 댓글에 답글은 커녕 공감조차 않는다면 소시오패스가 아닌지 의심해 본다. 많이 배운 자들, 지식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오늘 점심 때 한식 부페식당에서 식사 했다. 한끼 6천원짜리 식사이다. 밥을 다 먹고 나갈 때 큰 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역시 큰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응답해 주었다.

2022-08-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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