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30. 11:16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데

 

 

시간투자해서 먹고 살고 있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하루 24시간이 하루 24시간 이상이 될 수 없다.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 직업은 시간이 돈이고 시간이 곧 재산이다.

 

나는 왜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가? 일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감을 수주하여 일을 끝내면 대가를 받는데 일하는 전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투자해서 먹고 서는 직업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신적 노동만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제조업과는 다른 것이다.

 

 

제조업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큰 것 한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출이 한번 터지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이것이 제조업의 매력이다.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잘 팔려서 끊임없이 수주가 이어지면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한방을 노리는 것은 많다. 주식도 한방이 있다. 국가가 공인한 국민투기장이라고 볼 수 있는 주식시장에서 개미투자자들은 큰 것 한방 대박에 기대를 건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한종목에 올인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빚을 낸다.

 

한방 하면 로또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매주 로또를 사는 것은 큰 것 한방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일등이 여러 번 당첨된 매장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러나 좀처럼 한방은 터지지 않는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도 한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투기를 하여 커다란 불로소득을 올렸다면 대박난 것이다. 돈 놓고 돈먹기의 전형에 해당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한방도 없고 대박도 없다. 오로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 그렇다.

 

시간 투자해서 먹고 사는 사람은 시간이 돈이다. 누군가 나의 시간을 빼앗는다면 이는 돈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일감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수입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은 월급생활자와 크게 차별된다. 월급생활자는 때 되면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대박을 기대할 수 있디. 물건을 많이 들여와서 많이 팔면 대박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사는 시간을 투자해서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다.

 

여기 음식점이 있다. 시간을 투자해서 먹고 사는 대표적인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손님이 없으면 매출이 감소한다. 밥 그릇 숫자만큼만 매출이 일어난다. 이렇게 본다면 내가 하는 일이나 식당업이나 조금도 다름 없다. 농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흙은 정직하다고 말한다.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일정한 면적의 논에 작물을 심었을 때 수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내가 하는 일이나 농사짓는 것이나 비슷하다.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 직업은 매출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큰 것 한방이 없기 때문이다.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건덕지가 없다. 그래서 늘 일감 걱정을 한다.

 

일감이 없을 때가 있다. 일주일간은 버틸만하다. 이주가 가고 삼주가 되면 초조해진다. 그럴 때 왜 일이 없지?”라며 스스로 물어 보게 된다. 왜 그런가?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와 관비리, 그리고 각종 공과금은 무서운 것이다. 마치 밀물처럼 밀려 든다.

 

시간투자해서 먹고 사는 직업은 오로지 앞으로만 달리게 되어 있다. 일이 많아도 걱정이고 일이 없어도 걱정이다. 일감이 너무 많으면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감이 없는 때가 많다. 일감이 없으면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 걱정을 해야 한다.

 

오늘 830일이다. 말일이 하루 남았지만 임대료와 공과금 등을 결제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결제하는 것이다. 동시에 후원도 했다. 그래 보았자 만원에서 오만원까지 소액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 곳에 몰아 주었다. 지난달 보다 배로 올린 것이다.

 

매달 말일은 결제하는 날이다. 공과금 결제도 하지만 후원도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입출금통장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일인사업자는 무엇이든지 혼자 척척 해 내야 한다. 일도 혼자 해야 하지만 돈관리도 혼자 해야 한다. 돈 관리를 타인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까? 내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월급생활자 시절이 있었다. 월급이 통장으로 입금되기 때문에 내 돈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용돈을 타서 생활했다. 물론 카드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보시는 꿈도 꾸지 못했다.

 

월급생활자 생활을 20년 했다. 20년 세월 동안 월급을 받았지만 보시한 적이 없었다. 만원짜리 후원금액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개인사업, 일인사업하면서 입출금통장을 관리하다 보니 공과금을 내고 난 다음 후원금도 내게 되었다.

 

후원금은 많지 않다. 만원짜리가 많다. 오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원하는 곳은 많지 않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열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확대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후원을 잘할 수 있을까?

 

며칠전 머리맡에 있는 맛지마니까야에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을 읽었다. 언제 읽어도 감명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아난다여, 미래에 황색의 목을 하고 비도덕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모임을 위해 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 보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임에 주어진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M142)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을 읽어 보아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주석에서는 전체승가를 대변하는 비도덕적인 수행승에게 주어진 보시가 개인적인 측면에서 거룩한 님(阿羅漢)에게 주어진 것보다 공덕이 많다.”(Pps.V.64)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훌륭한 스님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승가에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큼을 말한다.

 

한국불교에서 승보는 스님들로 되어 있다. 이는 한글 삼귀의문에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불자들은 스님에게 보시하려 할 것이다. 스님을 승보로 보기 때문이다.

 

스님을 승보로 본다면 부처님과 동격이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은 분명히 삼보에 대하여 부처님(Buddha)과 가르침(Dhamma)과 승가(Sangha)라고 했기 때문이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는 모두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가가 삼귀의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상가에 대하여 거룩한 스님들이라고 하여 승보에 대하여 스님으로 보는 것이다. 스님이 부처님과 동격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맛지마니까야 142번 경에 따르면, 부도덕한 수행승이라도 승가를 대표한다면 보시공덕이 크다고 했다. 왜 그런가? 스님 개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에 보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보시를 승가에 적절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주자가 받는 자의 개인적인 성품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받는 자가 승가를 전체적으로 대표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Pps.V.64)라고 했다.

 

보시는 원칙적으로 승가에 해야 한다. 이는 부처님도 장려한 것이다. 부처님의 양모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손수 지은 가사를 부처님에게 보시하려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M142)라고 말했다.

 

보시는 승가에 해야 한다. 승가에 보시하면 결국 수행승에게 보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승보를 스님으로 보기 때문에 승가보다는 스님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 같다.

 

보시에는 최상의 보시가 있고 최악의 보시가 있다. 최상의 보시는 어떤 것인가? 이는 맛지마니까야 142번 경에서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최악의 보시는 어떤 것일까? 이는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나는 청정한 보시를 하고 있을까? 마치 밭 매듯이 수천, 수만 번 클릭해서 돈을 번다. 시간투자해서 먹고 산다. 그렇다 보니 한방이나 대박을 기대할 수 없다. 노력한 것만큼만 벌고, 시간 투자한 것만큼만 번다. 그러다 보니 보시금액은 많지 않다. 만원에서 오만원까지 소액이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백만원 이상 보시해 본적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백만원 이상 보시해 보고 싶다.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은 사람에게는 비스켓 값에 지나지 않지만 시간투자해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큰 돈이다.

 

매달 말일이 되면 공과금 결제와 함께 후원을 하고 보시를 한다. 자동이체 하는 것도 있지만 매달 말일에 직접 보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내가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끼고 돈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살점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아깝게 생각하지만 훌륭한 사람이나 훌륭한 단체에 후원하거나 보시할 때는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금액을 더 확대하고 싶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굉장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M42)

 

 

2022-08-30

담마다사 이병욱